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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구드룬 파우제방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by 답설재 2011. 9. 13.

구드룬 파우제방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신홍민 옮김, 웅진주니어 2006

 

 

 

 

 

 

 

「외손자 선중이 Ⅹ」라는 글에서 "어떻게든 녀석이 사람들과 좀 더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를 기원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녀석이 많이 싸운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이들과 노는 데는 일등이고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수가 틀리면 한번 붙어보자는 식의 칼날을 세우는 데도 뛰어난 녀석이 아닌가 싶을 뿐입니다.

 

그렇게 쓴 추석 연휴 직전에 이 책을 선물로 우송했습니다.  제목도 그럴듯하지만 엮은이의 글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잘 지내니?  학교 생활도 재미있고,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니?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집에 와서 놀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지. 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뛰어놀고 싶지. 혼자서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지.  그런데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하고도 가끔 싸워.  어른들은 싸우지 말라고 하지만 친구들과 놀다 보면 싸우는 일도 생겨. 그래도 너희들은 금방 다시 친하게 지내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늘 부딪히는 일이 많은 거야.  싸우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지낸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좀 어렵게 말하면, 평화롭게 지내는 걸 말해.  여기에 실린 짧은 이야기들은 모두 평화에 관한 글이야.  …(후략)…

 

 

'싸우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지낸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건 평화롭게 지내는 걸 말한다.'  좋은 이야기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여덟 가지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순간 사진

  ○ 기가 막힌 생각

  ○ 디륵은 인도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지?

  ○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 언제 다시 말을 타실 거죠, 게르트루디스 수녀님?

  ○ 자샤와 엘리자베트 할머니

  ○ 왜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탐정극을 못 보았나

  ○ 국경을 없애자

 

 

엮은이가 소개한 대로 '평화에 관한 글'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이야기한 글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투지 말고 살자' '싸우지 말고 지내자'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내용도 좋겠지만,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하는 이유를 배우는 것도 그만큼 중요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약한 것, 작은 것,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에 대한 배려가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독일 병사가 적군인 러시아 병사를 만나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람 소리가 어찌나 윙윙거리는지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야.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었어. 눈송이가 얼음 바늘로 날카롭게 변해서 얼굴을 후려치고,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드는데 얼음장 같았어.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숲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어. 이 미터 앞도 채 안 보였거든. 그래서 나도 길을 잃고 만 거야. 먹을 걸 가져오려고 마을로 가려다가 그렇게 됐어."

…(중략)…

"저 같으면 해가 어느 쪽에 있는지 찾아봤을 거예요."

패터가 말했습니다.

"그랬으면 쉽게 길을 찾았겠지. 그런데 해가 안 보였어. 온 세상이 눈 천지였거든. 게다가 눈은 허리까지 차올라서 앞으로 나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 총까지 메고 있었으니까 더 힘들었지. 몸은 점점 얼어붙고, 힘이 다 빠져나가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숲 한가운데서 얼어 죽을 것 같았어. 한 시간도 넘게 헤매고 다녔는데 나무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런데 갑자기 누가 나타났어.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어. 순간 굉장히 놀랐지. 하지만 사람이 나타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런데 그 사람이 손짓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그 사람하고 나는 서로 비틀거리면서 다가가서 껴안았어. 그 사람도 지쳐서 헉헉대고 있었어. 우리는 아주 좋아했지. 처음에는 둘이 서로 꽉 붙들고 있었어. 그러다가 조금 지나 그 사람이 어느 쪽을 가리키면서 뭔가 얘기하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야. 러시아 말이었거든. 그때서야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적이라는 걸 알았지."

"그 사람이 총을 쏘았어요?"

패터가 흥분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그 사람도 내가 독일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어. 우리는 너무 당황해서 그냥 거기 서서 서로 쳐다보기만 했어."

"손들었! 그랬어야죠!"

…(후략)…

 

 

 

「왜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탐정극을 못 보았나」 중에서

 

 

녀석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는 거지 제가 괴롭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저는 다만 거짓과 엉터리와 무질서가 싫고 약속을 지키라는 것뿐이었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참을 줄 안다'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너그럽게 대해 주고 이해해 주고 양보하면서도 내 마음이 전혀 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이 나이가 되도록 그걸 잘 실천하지 못해서 늘 속이 상하고 있고 아주 가끔 제정신일 때는 지금 이 글을 쓸 때처럼 생각하게 되지만 녀석의 외조모나 어미에 따르면 유독 '나쁜 것'만 저를 닮았다는 녀석만은 그걸 잘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함께 보낸 책 『뚱딴지 독도 탐방대』 : 이 책을 고르며장차 일본인들이 우리 독도에 대해 끽소리 못하도록 해버리는 인물이 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심이 너무 많은 것일까요?

 

 

 

 

곤충과 생태계, 멋진 삽화와 사진,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연상하게 하는 설명이 녀석을 신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