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름다움을 추방해 왔지만,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무기를 들었다. 이것이 첫 번째 차이이나, 여기에는 어떤 내력이 있다. 그리스 사상은 언제나 한계의 개념 뒤에서 은신처를 구했다. 그리스 사상은, 신적인 것이든 이성적인 것이든 그 어떤 것도 극단으로 이끌고 가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 사상이 신적인 것도 이성적인 것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상은, 그늘과 빛을 조화시켜 가면서 모든 것을 고려에 넣었다. 반면에 우리 유럽은 완전성을 추구하다가 탈이 난 불균형의 자식이다. 유럽은, 자신이 찬양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부정하듯, 아름다움을 부정한다. 그리고 온갖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유럽은 단 한 가지만을 찬양하는데, 그것은 미래의 이성(理性)의 지배이다. 유럽은 미쳐서 영원한 한계를 확장시키고, 그러면 바로 그 순간에 에리니에스(세 자매로 이루어진 복수의 여신들. 뱀인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서 악한 짓을 한 사람을 혼내 주었다-역주)가 유럽을 덮쳐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복수가 아니라 응보(應報)의 여신인 네메시스도 지켜본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은 네메시스에 의해서 가차없이 형벌을 받는다.
- 알베르 까뮈, 철학 에세이 「헬레네의 추방」 중에서
(알베르 까뮈, 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1993, 부록).
굳이 제목을 붙여 보라면, 저 옛날 중학교 때 교실이 떠나가라 외쳐 부르던 그 노래 구절 「목련꽃 그늘 아래서 / 베르테르의 ……」
...............................................
사진 출처 : 블로그 『강변 이야기』의 「어느 별에서의 하루」(2011.4.19)
'책 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현 글·김경희 그림 《귀신백과사전》 (0) | 2011.07.03 |
---|---|
이성의 처참한 비극 (0) | 2011.07.01 |
번역(飜譯) (0) | 2011.06.22 |
작자 미상 『仁顯王后傳』 Ⅲ (0) | 2011.06.20 |
열상고전연구회 편 『韓國의 序跋』 (0) | 2011.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