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작자 미상 『仁顯王后傳』 Ⅲ

by 답설재 2011. 6. 20.

李相寶 敎註 『仁顯王后傳』

을유문화사 1971

 

 

 

 

 

 

 

인현성모민씨덕행록

 

화설(話說)1, 조선국 숙종대왕 계비(繼妃)2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의 본은 여흥(驪興)이시니, 행병조판서(行兵曹判書)3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둔촌(屯村)4의 여(女)시요, 영의정 송동춘 선생(宋同春先生)5의 외손이시라.

 

모부인(母夫人) 송씨6기이(奇異)하신 신몽(神夢)을 꾸시고 정미(丁未)7 사월 이십 삼일 탄생하오시니, 집 위에 서기(瑞氣) 일어나고 산실에 향취옹실(香臭擁室)하여 오래 되도록 없어지지 않으니 부모 지기(知機)8하심이 있어 가중(家中)에 말을 내지 못하시게 하시더라.

 

잠깐 장성(長成)하시매 정정탁월(亭亭卓越)하사 화월(花月)이 부끄리는 듯하시고, 용안이 황홀찬란(惶惚燦爛)하사 백일(白日)이 빛을 잃으니 고금(古今)에 비할 곳이 없으시며, 여공재정(女功才程)이 민첩신이(敏捷神異)하사 일백신령(一百神靈)이 가르치는 듯하시나 안색(顔色)에 나타내시지 아니하시고, 유정유일(惟精惟一)하시고 숙연(肅然)하사 회포(懷抱)를 남이 알지 못하며, 무심무려(無心無慮)한 듯이 흡연(洽然)하신 성덕(聖德)이 유화천연(柔和天然)하사 덕행예절(德行禮節)이며, 효의특출(孝義特出)하사 유한정전(幽閒貞專)하시고, 단일성장(端一誠粧)하시고 너른 도량(度量)이 어위하시고 백행(百行)이 구비하시니, 종일단좌(終日端坐)하시매 화풍경운(和風景雲)이 옥체(玉體)에 둘렸으니 단엄침중(端嚴沈重)하사 사람이 우러러보지 못하며, 맑고 좋으신 골격(骨骼)과 향기로시기 가을 물결과 높은 하늘 같으시고, 높고 곧은 절개는 금옥(金玉)과 송백(松栢) 같으시고, 어려서부터 희학(戱謔)과 사치를 좋아 않으시고, 단순(丹脣)이 적적(寂寂)하시니 무색(無色)한 의대(衣대) 가운데 기이한 자태 비상(非常)하시며 정대(正大)하사 일백 가지로 빼어나시고, 문필(文筆)이 유여(裕餘)하사 만고역대(萬古歷代)를 무불통지(無不通知)하시나, 가만한 가운데나 붓을 들어 문장(文章)을 쓰지 않으시니 부모와 삼촌 형재 사랑 과중(過重)하사 하시고, 원근친척(遠近親戚)이 놀라고 탄복하여 지내니, 아시(兒時) 적부터 공경치 않을 이 없어 꽃다운 이름이 세상에 가득하더라.

 

상시(常時) 세수물에 붉은 무지개 찬란하니 민공(閔公)이 반드시 귀히 될 줄 짐작하고 심중에 염(念)하여 범사교훈(凡事敎訓)함을 간절히 하시니, 그 중부(仲夫) 노봉(老峯) 민 선생 승학대도(承學大道)와 엄정(嚴正)한 성(誠)으로 후(后)를 사랑하시기를 모든 자질중(子姪中)에 더하시되 매양 가라사대,

『물이 극히 맑으면 귀신(鬼神)이 꺼리나니 차아(此兒)가 과히 현미(賢美)한즉 수한(壽限)이 길지 못할까 근심하노라.』

하시더라.

…(후략)…

 

 

느긋하게, 운율을 맞춰 읽으면 읽는 맛이 더합니다. 이래서 책을 읽는구나 싶어 집니다.

주인공을 눈앞에 보는 듯하고, 그리하여 무례라고 한가로운 마음이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그래 봤자 그리 큰 욕심은 아닙니다. 그냥 먼 빛으로나마 잠깐만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다 싶은 것입니다.

 

이 책이 잃어버렸다고 애석해하던 바로 그 책입니다.

며칠 전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그 산골짜기 비탈길의 「'숲속의 헌책방' 새한서점」에서 찾아왔습니다. 교수요목기부터 제5차 교육과정기까지의 교과서를 구하려고 간 길이었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됩니까?"

그렇게 물어 놓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걸 느끼며 사장님(이선명, 국민독서문화진흥회 단양군 지부장! '나도 그런 것 한번 해봤으면……) 표정을 살피는데, 좀 미안하다는 듯 3천 원이라고 했습니다. 얼른 5천 원짜리를 내밀었고 잔돈 2천 원을 받았는데, 돌아오면서 자신의 옹졸함을 뉘우쳤습니다. 아직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후회할 일들을 만들어가며 지내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1971년에 나온 초판이고, 그때 가격이 380원인 걸 확인하면서 그 가격의 8배 가까이 준 걸 위로 삼았습니다. 어쭙잖은 위로인 줄은 압니다.

 

가는 길에 제천의 「금왕」이라는 식당에서 올뱅이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올뱅이 혹은 올갱이란 다슬기입니다. 맛집을 소개하는 멋진 블로거라면 그 올뱅이 해장국 사진을 실었을 것입니다. 전화 번호 043-645-9100.

 

가는 데 네 시간, 오는 데 세 시간이 걸려 '골병'이 들었습니다. 치아가 솟아올라 치통이 심합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정신까지 혼미해지지만 『인현왕후전』을 읽으며 마음을 달랩니다.

 

 

 

..........................................................................................

1. 고대소설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쓰던 말.
2. 임금의 후비(後妃), 인경왕후(仁敬王后)가 돌아가시자 인현왕후가 후비로 왕비가 됨.
3. 「행」은 관계(官階)가 관직(官職)보다 높은 경우 벼슬 이름 위에 붙여 일컫던 말이니, 부원군으로서 병조판서의 벼슬을 지냄을 뜻함.
4. 민유중(閔維重:1630~1687)의 호.

5.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호.
6. 송준길의 따님으로 민유중의 아내가 된 이.
7. 현종(현종) 8년(1667).
8. 기미(機微)를 알아차림.

 

 

'책 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움의 추방  (0) 2011.06.29
번역(飜譯)  (0) 2011.06.22
열상고전연구회 편 『韓國의 序跋』  (0) 2011.06.18
작자 미상『인현왕후전』Ⅱ  (0) 2011.06.14
작자 미상 『인현왕후전』Ⅰ  (0) 2011.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