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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49

영혼과 영원 나는, 초인간적인 행복은 없다는 것과 일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영원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이 얼마 안 되면서도 본질적인 부속물들, 이 상대적인 진실들은 나를 감동시키는 유일한 것들이다. 다른 것들, 즉, 인 진실들에 관해서는, 나는 그러한 것들을 이해할 만한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이 짐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천사들의 행복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이 하늘이 나보다 더 오래 영속될 것임을 알 뿐이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도 지속될 것 말고 그 무엇을 영원이라 부르겠는가? - 알베르 까뮈, 「알지에에서 보낸 여름」(철학 에세이) 중에서(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1993, 부록 197~198쪽).   블로그 『강변 이야기』(2012.2... 2012. 5. 1.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 홍길표 옮김, 문학동네 2009 Ⅰ 묘한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바로 그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야콥 폰 군텐이라는 귀족 출신 소년이 하인을 양성하는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들어가 생활하다가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원장 벤야멘타와 함께 사막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다. 재미? 그렇게 보면 매우 재미있고 뭐 이런가 하면 영 애매하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애매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가령,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 거기서부터 희한한 학교가 아닌가? 물을 수도 없고 물어봤자 대답을 들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 세상 학교들이 이런 학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는 건 아닌지, 게름직하기도 하다.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 2012. 4. 19.
프란츠 카프카 『가장(家長)의 근심』 희한한 일이다. 카프카의 여러 장편(掌編) 소설 중에 「가장(家長)의 근심」이라는 것이 있어 그걸 읽다가 '오드라덱'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고, '오드라덱이 도대체 뭔가?' 싶어 하다가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여러 네티즌의 언급들도 오드라덱에 관해서는 카프카의 그 소설 일부 혹은 전체를 인용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어떤 블로거는 블로그의 이름을 '오드라덱'이라고 짓고 있지만, 그 블로그를 들여다봐도 정작 오드라덱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것 자체가 바로 오드라덱의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면 나 또한 오드라덱의 한 가지라는 뜻이니 그게 무슨 설명이 되겠는가?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 2012. 4. 10.
프란츠 카프카 『황제의 전갈』 황제의 전갈 : 알베르 까뮈가 말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상징' 카프카 / 황제의 전갈 황제가──그랬다는 것이다──그대에게, 일 개인에게, 비천한 신하, 황제의 태양 앞에서 가장 머나먼 곳으로 피한 보잘것없는 그림자에게, 바로 그런 그대에게 황제가 임종의 자리에서 한 가지 전갈을 보냈다. 황제는 사자(使者)를 침대 곁에 꿇어앉히고 전갈을 그의 귓속에 속삭여주었는데 그 일이 그에게는 워낙 중요해서 다시금 자기 귀에다 전갈을 되풀이하게끔 했다. 그는 머리를 끄덕여 했던 말의 착오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임종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장애가 되는 벽들을 허물고 넓고도 높은 만곡형 노천계단 위에 제국(帝國)의 강자들이 서열별로 서 있다──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황제는 사자를 떠나보냈다. 사자는 즉시 .. 2012. 4. 3.
교육의 힘 : 카뮈의 스승 알베르 카뮈의 연보에서는 그의 스승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 1918년(5세) • 벨꾸르의 공립학교에 입학. 루이 제르멩(Louis Germain) 선생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그의 추천으로 장학생 선발 시험에 응시, 합격함.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후에 《스웨덴 연설》을 제르멩 선생에게 바침). □ 1932년(19세) • 문과(文科) 고등반에서 학업 계속. • 철학교수 쟝 그르니에(Jean Grenier)를 만나 두터운 친분을 가짐. (후에 《표리》와 《반항인》을 그에게 헌정함). 연보에 따라서는 다른 언급을 더 찾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이런 제자를 가졌더라면……'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 있으면 좋을 건 당연하지만 무얼 근.. 2012. 4. 1.
위베르 리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 위베르 리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 강미란 옮김, 열림원 2011 "이제 곧 밤이 되겠구나. 태양이 졌으니 말이다. 하늘에 별이 보이기 시작했어. 저 별의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단다. 저기 보이는 별들 중에 어떤 건 광년으로 십여 년 거리, 또 어떤 건 백여 년 거리, 또 어떤 별은 천여 년 거리에 있단다. 예를 들어 북극성을 볼까? 우리에게 북쪽이 어딘지 가르쳐주는 그 별은 430광년의 거리에 있단다. 오늘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북극성의 빛은 1580년경에 출발했다는 말이 되지." 할아버지가 동방박사라고 부르는 세 개의 별이 있잖아요. 오리온 자리에 있는, 그 별들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어요?" "우리 눈에 보이기까지 약 천4백 년을 여행했지. 그러니까 로마제국.. 2012. 3. 29.
카프카와 샤갈의 만남(상상) 카프카와 샤갈이 잠시 만나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서?" 하면 이 사무실 건물 1층 커피숍입니다. 카프카의 장편(掌編) 소설 「회랑 관람석에서」를 읽다가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카프카는 1883~1924, 체코 , 샤갈은 1887~1985, 러시아 태생입니다. 카프카는 자신이 샤갈보다 4년이나 먼저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형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할 텐데, 그러면 카프카보다 61년이나 더 살게 되는 샤갈은 뭐라고 할지…… 당신들을 초청한 내가 저녁 식사값과 커피값을 낼 테니까 다른 얘기나 하자고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카프카의 「회랑 관람석에서」는 소설이긴 하지만 헤아려 보니까 딱 네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저 관람석 손님은, .. 2012. 3. 23.
프란츠 카프카 『변신』 Ⅱ 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   만약, 내일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자신이 한 마리 벌레가 되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프란츠 카프카는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소설에는 아무리 뜯어봐도 전혀 비논리적이거나 허황된 설명을 한 부분이 없습니다.외판원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물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이 한 마리 벌레, 거대한 새우1처럼 등은 껍질로 되어 있고 수많은 발이 돋아난 그런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 싶다면, 전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지난번에 좀 인용했으므로 이번에는 여동생 그레테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십시오. 누.. 2012. 3. 18.
프란츠 카프카 『변신』 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角質)로 나뉘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찌된 셈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그의 방, 다만 지나치게 비좁다 싶을 뿐 제대로 된 사람이 사는 방이 낯익은 네 벽에 둘러싸여 조용히 거기 있었다. 『변신』의 처음 부분이다. 외판원 '잠.. 2012. 3. 15.
李重煥 『택리지(擇里志)』Ⅱ 李重煥 『擇里志』 李翼成 譯, 乙酉文化社, 1981 - 그러면 어디에서 살아야 하나 - Ⅰ 이중환의 『택리지』는 우리나라 곳곳의 지리(地理)와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 등에 대한 박물지(博物誌) 혹은 살 만한 곳을 찾을 수 있는 '매뉴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자신의 분통 터지는 내면을 밝힌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인심이 고약해진 이유에 대해 사색당쟁(四色黨爭)을 들고, 그 진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습니다. 2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거쳐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봉직하였으나, 영조(英祖) 원년(1725)에 형을 네 차례나 받고 이후 '동서로 유리(流離)하면서 비참하게 지냈으므로' 그러한 심정으로 살만한 곳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책의 발문(.. 2012. 3. 8.
李重煥 『택리지(擇里志)』 어떤 곳으로 이사 가야 할까? 李重煥 著 『擇里志』李翼成 譯, 乙酉文化社, 1981       Ⅰ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 「총론(總論)」에서 이렇게 한탄했다(271). 사화(士禍)가 여러 번이나 일어났다. 명망이 없으면 버림을 당하고, 명망이 있으면 꺼림을 받으며, 꺼리면 반드시 죽인 다음에 그만두니, 참으로 벼슬하기도 어려운 나라이다. 아아, 사대부가 때를 만나지 못하면, 갈 곳은 산림(山林)뿐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 …(중략)…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고자 하면, 칼·톱·솥·가마 따위로 정적(政敵)을 서로 죽이려는 당쟁(黨爭)이 시끄럽게 그치지 않고, 초야(草野)에 물러나 살고자 하면, 만첩 푸른 산과 천겹 푸른 물이 없는 것은 아니건마는 쉽게 가지도 못한다. 또 맨 끝에선 이렇게 썼다... 2012. 3. 6.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Ⅲ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Ⅲ 정영란 옮김, 민음사 2011 신부님에 대해 세 번째 얘기를 씁니다. 자꾸 쓸 수도 없고, 그래서 이 얘기를 쓰고 그만 쓴다고 생각하니까 섭섭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신부님께서 너무나 멋진 분이기 때문이며, 돌아가셨다는데도 현존하는 인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아무렇게나'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사실은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은 많았습니다. 우리의 국방이 어려울 때는 '내가 만약 군인이 되었다면 같은 대안(代案)을 내었을 텐데……' 싶었고, 정치가 엉망인 걸 보면 '아, 정말 치사하게…… 그래, 바로 정치가가 되어야 했어.' 싶었고, 사회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걸 보면 판검사가 되지 못한 게 한스러웠고, 돈이 최고인 걸 실감하는 날.. 2012.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