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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프란츠 카프카 『변신』 Ⅱ

by 답설재 2012. 3. 18.

 

 

 

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

 

 

 

만약, 내일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자신이 한 마리 벌레가 되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프란츠 카프카는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소설에는 아무리 뜯어봐도 전혀 비논리적이거나 허황된 설명을 한 부분이 없습니다.

외판원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물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이 한 마리 벌레, 거대한 새우1처럼 등은 껍질로 되어 있고 수많은 발이 돋아난 그런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 싶다면, 전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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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좀 인용했으므로 이번에는 여동생 그레테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십시오.

 

누이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부터가 그는 끔찍했다. 들어오자마자 누이는 한시도 허비하지 않고, 출입문들을 닫았다. 누구에게도 그레고르의 방을 보지 않아도 되게 해주려고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곧장 창문으로 달려가 질식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창문을 급한 손길로 홱 열어젖히고는 또한 실제로 추운 날에도 잠깐 창가에 머물러 깊이 숨을 쉬었다. 이렇게 뛰어다니고 소란을 부림으로써 누이는 날마다 두 번씩 그를 놀라게 했으니, 그럴 때마다 그레고르는 장의자 밑에서 벌벌 떨었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서 나는 역겨운 냄새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에는 그레고르를 그렇게 따르고 존경하던 누이도 이젠 어쩔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벌레가 되기 전까지는 늙은 부모와 여동생을 책임지고 살아온 그가, 벌레로 변해서는 온갖 수모와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됩니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생긴 상처가 썩어들어갔고, 여동생은 차츰 그가 즐겨 먹을 수 있는, 좀 상해서 냄새가 나는 치즈 따위는 주지도 않았으므로, 먹을 수 없는, 인간들이나 좋아하는 음식물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 그는, 드디어 숨을 거두고 맙니다. 너무나 고독했으므로 살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아무도 슬퍼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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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고 나서는 셋이 다 함께 집을 떠났다. 벌써 여러 달 전부터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하여 전차를 타고 교외로 향했다. 그들 모두가 탄 칸은 따뜻한 햇볕이 속속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좌석에 편안히 뒤로 기대고, 장래의 전망에 대해 논의했는데 좀더 자세히 관망해 보니 장래가 어디까지나 암담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은 서로 전혀 상세히 물어보지 않았던 세 사람의 직장이 썩 괜찮았으며 특히 앞으로는 상당히 희망적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서 가장 큰 상황의 개선은 물론 집을 한번 바꿈으로써 쉽게 이루어질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이제 좀더 작고 값싼, 그러나 위치가 낫고 전반적으로 보다 실용적인 집을 갖고자 했다. 마치 지금 집은 그레고르가 찾아냈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들이 그렇게 환담하고 있는 동안 잠자 씨와 잠자 부인은 점차 생기를 띠어가는 딸을 보고 거의 동시에 딸이, 이즈음 들어 워낙 고달프다보니 두 뺨이 창백해지기는 했건만, 아름답고 풍염한 소녀로 꽃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수가 적어지며 또 거의 무의식적으로 눈초리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내외는 이제 딸을 위해 착실한 남자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러 딸이 제일 먼저 일어서며 그녀의 젊은 몸을 쭉 뻗었을 때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확증처럼 비쳤다.

 

보십시오. 벌레로 변신하여 두어 달 고생을 하다가 가버린 아들 그레고르를 추억하기는커녕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적이고, 살아볼 만하고, 그리하여 행복한 곳입니까? 서로 좋을 때는 누구나 다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다만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죽었다는 사실만 빼면. 그도 한때 저 사람들과 함께 행복했던, 더구나 저 궁핍하지만 단란한 가정의 아들이었다는 사실만 빼면.

좀 낯선 표현일지 모르지만, 우리도 어느 순간 벌레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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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그레고르 잠자는 외로워서 죽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벌레로 변해버린 그것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고독해서 죽었습니다.

하기야 우리의 몸이 지금 이 상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어디가 탈이 나서 냄새가 풀풀 나고, 그리하여 대소변도 다 받아 내야 하고, 말도 하지 못하게 되고, 그 어려움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면 굳이 저 『변신』의 벌레와 어떤 점이 다를까? 그런 생각도 좀 해보게 됩니다. 그게 솔직한 토로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 또한 고독 속에서 죽어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날도 세상은 이처럼 따뜻하고 아늑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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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 들어온 늙은 과부 가정부는 그를 쇠똥구리라고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