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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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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重煥 『택리지(擇里志)』 어떤 곳으로 이사 가야 할까?

by 답설재 2012. 3. 6.

李重煥 著 『擇里志』

李翼成 譯, 乙酉文化社, 1981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 「총론(總論)」에서 이렇게 한탄했다(271).

 

사화(士禍)가 여러 번이나 일어났다. 명망이 없으면 버림을 당하고, 명망이 있으면 꺼림을 받으며, 꺼리면 반드시 죽인 다음에 그만두니, 참으로 벼슬하기도 어려운 나라이다.

 

아아, 사대부가 때를 만나지 못하면, 갈 곳은 산림(山林)뿐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그렇지되 못하다. …(중략)…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고자 하면, 칼·톱·솥·가마 따위로 정적(政敵)을 서로 죽이려는 당쟁(黨爭)이 시끄럽게 그치지 않고, 초야(草野)에 물러나 살고자 하면, 만첩 푸른 산과 천겹 푸른 물이 없는 것은 아니건마는 쉽게 가지도 못한다.

 

또 맨 끝에선 이렇게 썼다.

 

이 치우친 논의가 처음에는 사대부 사이에 생겼던 것이나, 끝판의 폐단은 사람을 서로 용납될 곳이 없게 한다. 옛말에, 『불이 나무에서 생겼으나, 불이 일어나면 반드시 나무를 이긴다』 하였다. 그러므로 동쪽에도 살 수 없고, 서쪽에도 살 수 없으며, 남쪽에도 살 수 없고, 북쪽에도 또 살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살 곳이 없다. 살 곳이 없으면 동·서·남·북이 없고, 동·서·남·북이 없으면 곧 사물(事物)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하나의 태극도(太極圖)이다. 이렇다면 사대부도 없고, 농공상도 없으며, 또 살 만한 곳도 없을 것이니, 이것을 땅이 아닌 땅이라 하는 것이다. 이에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의 기(記)를 짓는다.

 

 

 

이곳에 이사 와서 새삼 이 책이 생각났다. '여기도 아니라면 이제 어디로 가나? ………… 내게 어디로 또 이사갈 힘이 남기나 했나?'

 

텔레비전을 보면 귀농(歸農), 그림 같은 전원주택 이야기를 잘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와서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기도 어렵다.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산기슭의 이 아파트에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다. 아파트 뒷편은 깊고 아름다운 군립공원에 이어진다. 저녁에 돌아와 앉아 있으면 아무도 없는 세상처럼 조용하다. 사람 그림자도 없는 곳에 혼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모였다 하면 날을 세운다. 뭔지 모르게 날카롭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모르는 체한다. 그게 싫어서 아이들에게라도 웃으며 먼저 인사한다. "안녕?" "새 구두 샀네?" "……" 어색하게 웃기만 한다. 늙은이도 얼마든지 무서울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했을까?

 

 

 

이 책은 말하자면 살 만한 곳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안내서였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서(序)

사민총론(四民總論)

팔도총론(八道總論)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   기

복거총론(卜居總論)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

총 론(總論)

발 문(跋文)

 

 

 

사민총론(四民總論)의 마지막 부분. 우리가 살 만한 곳을 찾는 이유.

 

사대부라는 명호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옛 성인의 법을 준수(遵守)하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사)이거나 농·공·상이거나 막론하고 사대부의 행실을 한결같이 닦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마는 이것은 예도로써 아니하면 안 되고, 예도는 부(富)하지 않으면 성립(成立)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가정(家庭)을 차리고 직업을 마련하여 사례(四禮)로서, 위로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 처자(妻子)를 거느려, 문호(門戶)를 유지(維持)할 계책(計策)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므로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만든다. 그러나 시세(時勢)에 이로움과 불리(不利)함이 있고, 지역에 좋고 나쁨이 있으며, 인사(人事)에도 벼슬길에 나아감과 물러나는 시기의 다름이 있는 것이다.

 

 

 

「복거총론(卜居總論)」은 지리(地理)1, 생리(生利)2, 인심(人心), 산수(山水)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그 앞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대저 살 터를 잡는 데에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다음 생리(生利)가 좋아야 하며, 다음 인심(人心)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 그런데 지리는 비록 좋아도 생리가 모자라면 오래 살 곳이 못되고, 생리는 비록 좋더라도 지리가 나쁘면 또한 오래 살 곳이 못된다. 지리와 생리가 함께 좋으나 인심이 착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있게 되고, 가까운 곳에 소풍(逍風)할 만한 산수가 없으면 정서(情緖)를 화창하게 하지 못한다.

 

「지리편」에선 다음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까닭에 장차 집을 지어서 자손 대대로 전할 계획을 하려고 하면 지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여섯 가지(水口·들 형세·산 모양·흙 빛깔·물길·조산朝山3·조수朝水)가 긴요한 것이다.

 

「생리편」에서 찾은 내용.

 

공자(孔子)의 가르침에도, 부(富)하게 된 다음에 가르친다 하시었다. 어찌 옷을 헐벗고 밥을 빌어먹게 되어, 조선의 제사(祭祀)를 받들지 못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도 돌보지 못하며, 처자의 윤리(倫理)도 모르는 자에게, 가만히 앉아서 도덕과 인의(仁義)를 말하라 하였겠는가.

 

그러므로 땅이 기름진 곳이 제일이고 배와 수레와 사람과 물자가 모여 들어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바꿀 수 있는 곳이 그 다음이다.

 

「인심편」에서는 붕당(朋黨)의 연원과 내력, 그 폐해를 낱낱이 밝히고 한탄하였다. 예를 들면

 

대개 사대부가 사는 곳은 인심이 고약하지 않은 곳이 없다. 당파를 만들어서, 일없는 자를 거두어들이고, 권세를 부려서 영세민(零細民)을 침노하기도 한다. 이미 자신의 행실을 단속하지 못하면서, 또 남이 자기를 논의함을 미워하고, 한 지방의 패권(覇權)을 잡기를 좋아한다. 딴 당파와는 같은 시골에 함께 살지 못하며, 동리와 골목에는 서로 나무라고 헐뜯어서 뭐가 뭔지 측량할 수 없다.

 

오히려 사대부가 없는 곳을 가려서, 문을 닫고 교제(交際)를 끊고 홀로 자신을 착하게 하면, 비록 농·공·상이 되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에 있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와 같으면 인심의 좋고 좋지 못함도 또한 논할 것이 못된다.

 

마지막으로 「산수편」. 이중환이 「복거총론」에서 이야기한 네 가지의 요소 중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인심'이 아닌가 싶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 부분은 '산수(山水). 「복거총론」에 의하면 만약 인심이 고약해서 어느 곳도 가릴 수 없다면 산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의 산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곳곳이 살펴서 기록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대저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것이다. 살고 있는 곳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이 촌[野]스러워진다. 그러나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한 곳이 많다. 사람이 이미 자라처럼 모래 속에 살지 못하고, 지렁이처럼 흙을 먹지 못하는데, 한갓 산수만 취해서 삶을 영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름진 땅과 넓은 들에, 지세가 아름다운 곳을 가려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 그리고 十리 밖, 혹은 반나절 길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 매양 생각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장만해 둔다면 이것은 자손 대대로 이어나갈 만한 방법이다. 옛날에 주부자(朱夫子)4가 무이산의 산수를 좋아하며 냇물 굽이와 봉우리 꼭대기마다에 글을 지어서 빛나게 꾸미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다 살 집은 두지 않았다. 그는 일찌기, 『봄 동안에 저곳에 가면 붉은 꽃과 푸른 잎이 서로 비치어서, 또한 제대로 나쁘지 않다』 하였다. 후세(後世)의 사람으로서 산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을 본으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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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地理) : 땅, 산, 강, 바다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익.

2. 생리(生利) : 그 땅에서 생산되는 이익.

3. 조산(朝山) : 앞에 멀리 있는 높은 산.

4. 주부자(朱夫子) : 주는 성, 이름은 희(熹). 송나라 사람, 부자는 학문과 도덕이 높은 사람을 존경하는 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