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Ⅲ
정영란 옮김, 민음사 2011
신부님에 대해 세 번째 얘기를 씁니다. 자꾸 쓸 수도 없고, 그래서 이 얘기를 쓰고 그만 쓴다고 생각하니까 섭섭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신부님께서 너무나 멋진 분이기 때문이며, 돌아가셨다는데도 현존하는 인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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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사실은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은 많았습니다. 우리의 국방이 어려울 때는 '내가 만약 군인이 되었다면 <손자병법> 같은 대안(代案)을 내었을 텐데……' 싶었고, 정치가 엉망인 걸 보면 '아, 정말 치사하게…… 그래, 바로 정치가가 되어야 했어.' 싶었고, 사회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걸 보면 판검사가 되지 못한 게 한스러웠고, 돈이 최고인 걸 실감하는 날은 사업가가 되지 못한 게 그만큼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런 것 말고도 되고 싶은 것은 아직 헤아릴 수 없습니다. 가령, 자신의 몸이 허약한 걸 어찌할 수 없다고 느낄 때나 몸이 아픈 딱한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 만사를 제쳐두고 의사가 되어야 했다고 후회했습니다. '내가 의사라면 어떻게든 고쳐 놓을 텐데……' '내가 의사라면 돈을 떠나서 어떤 연구를 하든 저 불행한 사람을 일어서게 하고 말 텐데……'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러다가 다른 일을 만나면 그것도 하고 싶었으나 정작 제대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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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어릴 때 주변 인물의 가르침으로, 혹은 어떤 책을 읽고, 그 가르침이나 책의 내용이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그래, 이렇게 살았어야 했어. 이게 진정한 삶이지……' 하고 가슴저린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거의 다 그런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이제 와서 '그래, 지금이라도 내 삶의 지침을 마련해줄 사람을 찾아나서자!'고 한다면, 저는 돈키호테나 다름없을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그래, 늦었지만 어디 지금이라도 내 삶의 나침반이 될 책을 찾아보자!' 그것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책을 만난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그린 신부님의 모습 말입니다. 그 신부님이 소설 속의 인물이라는 게 저로서는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그 신부님을 만난 것은 지금이라도 다행스러운 일이고 어쩌면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유감스런 일이 또 있긴 합니다. 신부님은 종교인이고 저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따지고보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저만 마음으로 그 간격을 받아들이면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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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글이지만 이미 두 번에 걸쳐 소개했으므로 사전처럼 찾아보고 싶은 '의미(키 워드)'들을 발견된 대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 적어 놓을 걸 그랬습니다. 다음에 다시 읽을 때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부탁(89)
가난(93, 287~288), 그리고 가르침(~296)
세속적인 신부님 블랑제르몽 수석신부(101)
신부님의 행색(115)
교회의 부패(120)
순수함(129)
우리 신부님, 앙브리쿠르 본당 신부님에 대한 인물평(132)
스승 토르시 본당 신부님의 슬픔(132)
* 신부님의 문학적 표현(201)
혐오와 권태, 멸망(204)
아픔(206)
* 가장 긴 일기(206~253)
침착, 겸손(209)
아이들의 고통(212), 부모의 무너짐(214)
강자와 부자(224,228)
비참함(230)
백작부인의 깨달음과 죽음(240~241)
성당지기 아르센이 본 신부님의 모습(273)
성소(聖召)에 대한 깨달음(281)
노스승(282)
슬픔(316)
올리비에(백작부인의 조카)에게 눈물로써 사제의 모습을 보이다(342~344)
인간의 교만에 관한 끝없는 탐구, 반성(345) : 작가에게 부칠 수 있는 찬사
대화 : 샹탈 양과의 대화(349) : 종교에 비해 교육은 무엇인가? 왜 이 부분에서 교육을 생각해야 하는가?
행복한 마지막 아침(362)
죽음(380, 384~386)
눈물(381)
목소리(396)
아이들(397)
행복(399)
용서(403)
죽음의 시선(404)
*詩(404中~406上)
임종(405)
이건 뭐냐 하면, 가령 '슬픔'이 뭔지 알고 싶을 때는 316쪽에서 신부님을 만나보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에 대해서는 399쪽을 펴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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