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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교육의 힘 : 카뮈의 스승

by 답설재 2012. 4. 1.

 

 

 

알베르 카뮈의 연보에서는 그의 스승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 1918년(5세)

• 벨꾸르의 공립학교에 입학. 루이 제르멩(Louis Germain) 선생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그의 추천으로 장학생 선발 시험에 응시, 합격함.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후에 《스웨덴 연설》을 제르멩 선생에게 바침).

□ 1932년(19세)

• 문과(文科) 고등반에서 학업 계속.

• 철학교수 쟝 그르니에(Jean Grenier)를 만나 두터운 친분을 가짐. (후에 《표리》와 《반항인》을 그에게 헌정함).

 

연보에 따라서는 다른 언급을 더 찾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자를 가졌더라면……'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 있으면 좋을 건 당연하지만 무얼 근거로 그런 욕심을 갖겠습니까.

다만, 책을 볼 때마다 "루이 제르멩(Louis Germain) 선생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라는 부분에서 '각별한 총애'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총애(寵愛)'라는 단어의 사전적 해석이 '유난히 귀여워하고 사랑함'이고, '총애하다'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남달리 귀엽게 여겨 사랑하다'이므로, 총애는 결국 오늘날 학교에서 금기시하는 편애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라면 저의 경우 교사 생활을 하는 내내 편애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니, 저도 인간이므로 편애를 하긴 했겠지만 그걸 표나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사람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은 그런 교사를 함께 멸시하며 그런 교사의 대열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관련 있는 일이 있을 때마다 반성하고 다짐을 새롭게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 알베르 카뮈의 연보를 보면서,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고 달라질 일은 하나도 없지만, 때로는 특정한 아이를 골라 '각별한 총애'를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편애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까짓걸 애썼다고 표시가 나길 바라나?'

'표시가 나진 않지만 그 아이들 마음속엔 무언가가 남아 있을 것 아닌가?'

'딴엔 애쓴다고 했지만 결국 편애를 했기 때문에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렇게 평가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카뮈가 루이 제르멩 선생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년간 카뮈를 연구했다는, 조제 렌지니라는 학자는 『카뮈의 마지막 날들』이라는 책에서, 루이 제르멩 선생에 대한 까뮈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어머니의 침묵이 줄거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에는 불분명해 보이는 운명에 맞선 카뮈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상황들이 소개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았을 때 어머니 다음으로 생각났던 제르맹 선생님께 자신이 어떤 신세를 졌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선생님이 가르쳤던 것, 교육적으로 요구했던 것, 분명 그의 절대자유주의적 경향에 영향을 미쳤을 본보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 기억에 그는 "빈민가 공장에 버려질 뻔했던 조그만 아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학교에 와서 선생님을 만나 온전하게 발음되지 않는 빈약한 어휘로, "선생님, 졸업반 시험 명단에 알베르 넣어셨어요. 하지만 우리 공부할 돈 없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가 알베르 일하기 원해요."라고 말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장학금을 받아 학업에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어머니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걸 알아차린 선생님은 할머니가 돈주머니를 틀어쥐고 집안을 굳건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알베르의 할머니를 설득하러 저녁때 집에 들르겠다고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설명했다.

그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베르는 알고 있었다. 거실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선생님과 할머니가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었다. 할머니는 "우리집은 가난해요. 졸업장만 따면 읽고 셈하고 생활하는 데 충분하다구요. 그러면 통공장에서 견습생으로 일할 수 있고, 필경 반장이 될 제 삼촌이랑 같이 인부가 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만 줄창 해댔다. 선생님은 물러서지 않았다. 할머니 역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언성이 전점 높아졌다. 그러자 갑자기 알베르의 어머니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더니 "그 애 학교 갈 거예요!"라고 냅다 소리질렀다. 할머니는 고개를 떨구었다.

 

 

 

루이 제르멩의 총애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부유하게 지내면서 공부도 잘하는, 두뇌가 특출하여 가르치는 대로 척척 다 알아듣는 아이들은, 그냥 둬도 다 잘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교육하고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쉽고, (혹은)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말없는(자신이 없는, 주눅이 든, 따분한, 다른 일을 하고 싶은, 훨씬 더 많은 ……) 아이들은 다시 말이 없게 되고,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그래서 교육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 말없는 아이들을 찾아서 '각별한 총애'를 하게 되면 우리 교육이 다 잘 될 것입니다. 지금 무슨 대책을 마련하고 엄벌에 처하는 그런 일들도 훨씬 수월해지고 간단해질 것입니다. 학교만이라도 '천국(天國)'처럼 될 것입니다.

 

 

 

다시 보고 싶은 부분을 더 옮겨둡니다. 아프리카, 그것도 옛 알제리의 시골구석에 있는 학교에서는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지는구나, 싶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저 위 대문의 바로 앞부분입니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자주 그랬던 것처럼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 게 좋았다. 숙제가 끝나고 사전에 실려 있는 단어들을 무작위로 찾아볼 수 있었던 때처럼……. 생소한 단어의 뜻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일 없이 다른 식으로 표현하곤 했는데, 그런 표현은 그에게 또다른 탈출구였다. 소리 없는 기호들 사이로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은 그에 의해 의미보다는 소리를 더 많이 부여받은 허구의 세계에서만 형태와 색과 활기를 띠었다. 문장을 설명할 순간이 되면 그 단어들은 하나같이 더없는 충직한 적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사뭇 다르고 싶은 심정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경탄을 자아내기 위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특이한 설명을 해보이려고 애쓰곤 했다. 때로는 담임 선생님이 황당해하시며 왼쪽 눈썹을 찡그리곤 했는데 그건 전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학생들은 그가 익살스럽다고 생각했고 똑똑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베르는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낸 적이 없었다. 그가 단어를 바위에 비유했을 때 어쩌면 선생님만은 이해했을 지도 모른다. 친절한 제르멩 선생님은 그의 이런 사소한 동사놀이가 단지 식구들 모두 깊이 파묻혀 있던 기괴한 침묵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고 계셨을까?(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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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까뮈/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259~260.
** 조제 렌지니/문소영 옮김, 까뮈의 마지막 날들(뮤진트리,2010). 8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