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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49

제라르 드 네르발 『실비/산책과 추억』 제라르 드 네르발 『실비/산책과 추억』 이준섭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Ⅰ 『실비』 『산책과 추억』 두 편이 실려 있는 책입니다. 지은이의 일생에 대한 소개가 인상 깊었습니다. 프랑스 남부 출신의 한 남자가, 북부로부터 와서 발루아 지방에 정착한 가문의 처녀와 결혼해서 이듬해 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 아이를 발루아 지방의 어느 유모에게 맡기고 나폴레옹을 따라 전장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 아이는 1808년 5월 22일 파리의 생마르탱 가 96번지에서 태어났고, 자라서 1855년 2월 26일 새벽 파리의 으슥한 골목에서 목매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죽은 후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20세기 초가 되자 그의 작품 속에서 놀라운 것들이 발견되기 시작했.. 2012. 11. 7.
책들의 유혹 책들의 유혹 '아…… 어떻게 하나?……' 여기가 지금 어딘지나 아는지…… Ⅰ 서점에 들어서면, 그게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건지 아니면 무슨 헤어나지 못할 최면술에나 걸리는 건지, 금방 다른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한 가지 일에 골똘하게 됩니다. '아,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렇게.. 2012. 9. 2.
정재승 『과학 콘서트』 정재승 『과학 콘서트』 동아시아 2007(개정판 29쇄) ♬ 토크쇼의 방청객들은 왜 모두 여자일까? 저자는 이렇게 전재합니다. "토크쇼에서 방청객이 하는 일은 시트콤의 '녹음된 웃음소리'처럼 초대 손님이 어설픈 농담을 하거나 썰렁한 개그를 할 떄에도 웃어주는 일이다. 그들은 PD나 FD의 수신호에 맞춰 웃음과 박수, 때로는 비명과 야유를 적재적소에 내질러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물론 그들은 그 대가로 약간의 돈을 받는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방송국 PD들에 따르면, 여성 방청객들이 남성 방청객들과 함께 앉아 있으면 웃음소리가 60% 정도밖에 안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토크쇼 방청객석은 모두 여성들로 채운다." ♬ 이 책은 그런 지식을 공짜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웃음에 대한 과학적인 연.. 2012. 8. 10.
이지영「23/맬랑콜리」-나는 왜 사는가 시골로 거처를 옮긴 동기생이 올라와 점심을 함께하며 "요즘은 의술이 좋아서 시골에서도 오래 산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삼촌 문병을 갔는데, 칠십대인 그 삼촌이 자리에 누워서 '큰일은 자신이 앓아 누운 것이 아니라 요양원에서 호스로 식사를 하는 구십 대의 아버지가 문제'라는 거야. 앞으로 언제 죽을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거지." 전기가 흐르도록 전선을 이어주는 것처럼 병원에서는 아픈 곳을 찾아내어 그곳을 확실하게 고쳐주니까 노인들이 자리에 누워서도 얼마든지 목숨을 연장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친구와 나는, 무턱대고 오래 사는 것의 무의미함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나나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그 얘기들을 되돌아보면 .. 2012. 8. 6.
장소현 『불꽃 같은 사람·사랑의 조형시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불꽃 같은 사람·사랑의 조형시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장소현, 열화당 2000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시화전(詩畵展)이라는 걸 해봤습니다. 순전히 남과 어우러지는 것이 좋아서 그런 일들을 벌이며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작품 제작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크게 복사해 붙이고 그 귀퉁이에 글을 써넣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 詩는…… 어떻게 했나 하면…… 흉내만 낸 거지요. 詩는 무슨……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시적(詩的)'이니까 구경꾼들이 그 그림을 바라보면 더 좋을 것이므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진관 주인이 참 하릴없는 학생을 바라보면서 "이 그림을 확대 촬영해서 무엇에 쓰려는지" 자꾸 물었습니다. 45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시.. 2012. 7. 31.
W.G. 제발트 『이민자들』Ⅱ - 교사 파울 W.G. 제발트 소설 『이민자들』 이재영 옮김, 창비 2008 - 파울 베라이터 : 어떤 눈으로도 헤칠 수 없는 안개무리가 있다 - Ⅰ 소설 『이민자들』의 네 이야기 중에서 둘째 편은 파울 베라이터라는 아름다운, 독일인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다. 아이들에게는 '모범적인 형처럼, 그들의 일원처럼' 느껴지던 그 선생님이 1983년 12월 어느 날, 막 일흔네 번째 생일을 지내고, 말하자면 그냥 살아도 곧 세상을 떠나게 될 적지 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의 억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파울 베라이터는 이런 선생님이었다. 파울의 전임자는 엄하기로 악명이 높던 호르마이어 선생님이었는데, 금지된 짓을 하다가 그에게 적발된 학생들은 몇 시간 동안 모난 장작 위에 무릎 꿇고 .. 2012. 7. 22.
슈테판 츠바이크 『이별여행』 슈테판 츠바이크 『이별여행』 배정희·남기철 옮김, 이숲, 2011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로랑 세크직, 현대문학, 2011)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주인공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이야기다. 세계 3대 전기작가 중 한 명이라는 말도 있다. 표지부터 좀 재미있다. 웃기는구나 싶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찍은 사진일 것 같진 않고, 2011년 그러니까 지난해에 유럽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라고 했으니 제작 중인 그 영화의 선전물인가 싶기도 하지만 추측일 뿐이다. 이 표지 때문에 남들 보는 데서 읽기가 좀 난처했다. 남녀 간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이보다는 좀 품위 있는, 혹은 차라리 더 선정적인 사진을 구했더라면 싶었다. 저게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원…… ♣ 루트비히는 굴욕적인 가난으로 얼룩졌던 어.. 2012. 7. 13.
W.G. 제발트 『이민자들』 Ⅰ W.G. 제발트 『이민자들』 이재영 옮김, 창비, 2008 -헨리 쎌윈 박사 :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 『이민자들』은 네 편의 단편을 엮은 책입니다. 「헨리 쎌윈 박사 :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 「파울 베라이터 : 어떤 눈으로도 헤칠 수 없는 안개무리가 있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 내 밀밭은 눈물의 수확이었을 뿐」 「막스 페르버 : 날이 어둑해지면 그들이 와서 삶을 찾는다」. 그 중 세 편이 유대인들이 독일인들로부터 받은 박해에 대한 기록 형식의 소설입니다. W.G. 제발트가 이 소설을 기록 형식으로 쓴 것은, 독자들에게 이건 진실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기록보다 더 기록적인 소설이 되어서 읽는 내내 '이건 사실은 다.. 2012. 7. 8.
테네시 윌리암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네시 윌리암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김소임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2010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원작(희곡)입니다. 영화를 본 적이 없는데도 장면 전환이 영화를 보는 것 같고, 긴박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빈민가, 자유분방하고 서정적입니다. 바나나, 커피 향과 함께 창고 건물들 너머 강물에서는 훈기를 느낄 수 있고, 길모퉁이 술집에서 흑인 악사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옵니다.  미군 특무상사 출신의 외판원 스탠리와 남부 귀족 출신 스텔라 부부는,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행복합니다.   5월초, 어둠이 깃드는 초저녁, 연락도 없이 찾아온 스텔라의 언니 블랑시가 그 평온한 가정에 물결을 일으킵니다.  블랑시는 사.. 2012. 6. 11.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2011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부분은 비독서의 방식들로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UB, Unknown Book),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SB, Skimmed Book),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HB, Heard Book),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FB, Forgotten Book)에 대한 설명입니다. 다음은 책을 읽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입니다. 그러한 경우를 '사교 생활에서' '선생 앞에서' '작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로 나누어 예시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처 요령을 설명합니다. '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 2012. 6. 4.
로랑 세크직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로랑 세크직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이세진 옮김, 현대문학, 2011 KBS TV에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의 지상전에서 일본군이 한인 강제징용자들을 최전선에 세우고 자폭을 강요했다는 전 일본군 방위대장의 증언이 공개됐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당시 방위대장 이하 씨는 지난 1990년과 1992년에 "조선인들이 등에 폭탄을 짊어지게 하고, 도망치면 죽이겠다고 해서 모두가 (미군) 전차에 몸을 부딪쳐 숨졌다." "진짜로 싸운 건(일본군이 아니라) 오키나와 주민과 조선인들이었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종전 67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한 한인 희생자 수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이하 씨의 인터뷰는 그나마 거의 유일한 증언이라고 합니다.1 이러다가 언젠가.. 2012. 5. 29.
버트런드 러셀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버트런드 러셀이 쓴 『런던통신』은 그가 1931~1935년에 '런던통신'이라는 신문에 실은 글을 모은 책입니다. 그 번역본에는 재미있는 글, 위트에 넘치는 글, 읽은 내용을 잘 기억만 한다면 어디 가서 유식한 척할 수 있는 글들이 수두룩하여 일일이 세어봤더니 135편이나 되었습니다. 가령 이런 것들입니다. '질투에 관하여' '섹스와 행복' '관광객의 미스터리' '노인을 위한 나라' '마음만 먹는다면' '립스틱을 발라도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경험에서 배워야 하는 것' '돈을 향한 희망, 돈에 의한 공포'…… 그 중에는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라는 글도 있습니다. 러셀은 이 글에서 밝히기를, 지겨운 사람이 되는 갖가지 방법들과 그것을 피하는 방법들을 정리해 일곱 권으로 된 학술.. 2012.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