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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정재승 『과학 콘서트』

by 답설재 2012. 8. 10.

정재승 『과학 콘서트』

동아시아 2007(개정판 29쇄)

 

 

 

 

 

 

 

  토크쇼의 방청객들은 왜 모두 여자일까?

  저자는 이렇게 전재합니다. "토크쇼에서 방청객이 하는 일은 시트콤의 '녹음된 웃음소리'처럼 초대 손님이 어설픈 농담을 하거나 썰렁한 개그를 할 떄에도 웃어주는 일이다. 그들은 PD나 FD의 수신호에 맞춰 웃음과 박수, 때로는 비명과 야유를 적재적소에 내질러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물론 그들은 그 대가로 약간의 돈을 받는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방송국 PD들에 따르면, 여성 방청객들이 남성 방청객들과 함께 앉아 있으면 웃음소리가 60% 정도밖에 안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토크쇼 방청객석은 모두 여성들로 채운다."

 

 

 

 

  이 책은 그런 지식을 공짜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웃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결과들을 이것저것 소개한 후에 제목으로 제시된 매력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밝힙니다.

  이런 지식들입니다(주요 부분 요약).

 

  TV  시트콤에서 재미있을 만한 장면에 '녹음된 웃음소리(laugh track)'를 삽입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녹음된 웃음소리를 최초로 사용한 시트콤은 1950년 9월 9일 저녁 7시에 방송됐던 <행크 맥쿤 쇼(The Hank McCune Show)>(행크 맥쿤이라는 얼빠진 악동의 포복절도 대소동을 다룬 시트콤)로 알려져 있다.

  이 시트콤은 방청객 없이 녹화로 진행되었는데, 분위기가 썰렁할까봐 '녹음된 웃음소리'를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타인이 웃으면 따라 웃게 되는 것은 우리의 뇌에 웃음소리에만 반응하는 웃음 감지 영역(laughter detector)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청각 신호를 담당하는 뇌 영역 어딘가에 이러한 부분이 있으며, 다른 사람이 하품할 때 덩달아 하품하게 되는 것도 시각 영역 어딘가에 '하품하는 모습'에만 반응하는 뇌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은 '믿거나 말거나'이다.

 

  미국 로체스터 의대 신경방사선과 딘 시바타Dean K. Shibata 교수 연구팀은 2000년 11월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방사선협회 연례 학회에서 기능형 핵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뇌의 어떤 부분이 웃음에 관여하는지 촬영했다고 발표했다. 웃을 때 오른쪽 이마 뒤쪽에 있는 뇌의 '전두엽 하단'이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뇌출혈 등으로 이 영역이 손상된 사람들은 유머를 이해하고 웃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또 우울증 환자들은 전두엽 하단이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릴랜드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및 신경과학과 로버트 프로빈Robert R. Provine(1943~ ) 교수는 《웃음: 그에 관한 과학적 탐구(Laughter: A scientific investigation)》(2000)이라는 책에서 웃음은 그저 유머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사회적 신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때문에 웃는 경우는 10~20%에 불과하며, 대부분 '그동안 어디 있었니?' 혹은 '만나서 반가워요'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가장 많이 웃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함께 영화를 볼 때 무려 30배나 더 많은 웃음이 터져 나왔으며, 남성과 여성이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1.3배 더 많이 웃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성과 대화할 때 남성은 여성을 웃기려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여성이 더 많이 웃게 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밴더빌트 대학교 심리학과 조-앤 바코로프스키Jo-Anne Bachorowski 교수는 다양한 웃음소리를 들려주고 사귀고 싶은 사람의 스타일을 물은 결과, 노래를 하는 듯한 높은 톤의 여성 웃음소리는 모든 사람에게 큰 호감을 주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이 웃음소리를 통해 자신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려고 노력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는 또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맥 라이언이 레스토랑에서 거짓으로 오르가슴을 흉내내는 장면을 보여주었을 때, 여성들은 남자, 특히 전혀 알지 못하는 남성들과 함께 볼 때 더 크게 웃었고, 남자들은 남자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크게 웃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여성들은 자신의 웃음이 방안의 어색함이나 긴장감을 깨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남성들은 크게 웃거나 소리치는 것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 앞에서는 자제하지만, 남성들끼리는 결속력을 강화해 주기 때문에 더 크게 웃는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러면 여성 방청객들이 남성 방청객들과 함께 있으면 웃음소리가 작아지는 이유는? 바코로프스키의 실험과 다른 이유는? 그것은 방청객들의 웃음이 자연스런 진짜 웃음이 아니라 맥 라이언의 오르가슴처럼 가짜 웃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필 내가 선택한 차선이 다른 차선보다 느릴까?

  내 차선은 차들이 별로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는데, 옆 차선 차들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차선을 무리하게 바꾸고나면 이번에는 상황이 뒤바뀌어 원래의 그 차선이 더 빠릅니다. 기가 막힌 이 현상에 대한 해답이 1999년 9월 영국의 과학주간지 《네이처》에 실렸답니다.

 

  캐나다 토론토 의대 도널드 레델메이어Donald A Redelmeier 교수와 미국 스탠포드 대학 통계학과 로버트 티브시라니Robert John Tibshirani 교수는 차량의 흐름을 촬영해서 두 차선의 평균속도를 측정한 다음 더 느린 차선의 필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는데도 전체 응답자의 70%가 그 옆 차선이 더 빠르다고 응답했고, 65%는 가능하면 그 옆 차선으로 바꾸겠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리적인 요인과 물리적인 원인으로 나누어 그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먼저, 대부분의 운전자는 자기가 옆 차를 추월하는 경우보다는 추월당하는 경우 더 강한 심리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시야가 주로 전방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추월한 차는 금방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자기를 추월한 차는 긴 시간 동안 시야에 남아 있어 그런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물리적으로는, 내 차선이 잘 빠지는 구간에서는 차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 구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지만, 내 차선이 잘 빠지지 않는 구간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기 때문에 운전자는 늘 내 차선이 더 느리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똑 같은 상황인데도 '내 차선이 더 느리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더 빠르다'고 느끼는 시간보다 길게 되며, 이것이 차선을 바꾸고 후회하게 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교통의 물리학'에 대한 지식들이 위의 '웃음'에 관한 지식들처럼 많이 제시되어 있지만 그것을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토크쇼 방청객들은 왜 모두 여자일까?

  복잡한 도로에서는 차선을 바꾸지 마라.

 

  이 책에는 사회 현상에 관한 이런 지식 스무 가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다(케빈 베이컨 게임)

  일상 생활 속의 법칙, 과학으로 증명하다(머피의 법칙)

  O.J. 심슨 살인 사건의 교훈(어리석은 통계학)

  토크쇼 방청객들은 왜 모두 여자일까?(웃음의 사회학)

  과학이라는 이름의 상식, 혹은 거짓말(아인슈타인의 뇌)

 

  캔버스에서 카오스를 발견한 현대 미술가(잭슨 플록)

  서태지의 머리에는 프랙탈이 산다(아프리카 문화)

  바하에서 비틀즈까지, 히트한 음악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프랙탈 음악)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지프의 법칙)

  심장 박동, 그 규칙적인 리듬의 레퀴엠(심장의 생리학)

 

  상술로 설계된 복잡한 미로--백화점(자본주의의 심리학)

  물리학자들, 기존의 경제학을 뒤엎다(복잡성 경제학)

  주식 시장에 뛰어든 나사의 로켓 물리학자들(금융 공학)

  복잡한 도로에선 차선을 바꾸지 마라(교통의 물리학)

  모래 더미에서 발견한 과학(브라질 땅콩 효과)

 

  영국의 레스토랑은 너무 시끄러워(소음의 심리학)

  소음이 있어야 소리가 들린다(소음 공명)

  뇌파로 조종되는 가제트 형사 만들기(사이보그 공학)

  산타클로스가 하루 만에 돌기엔 너무 거대한 지구(크리스마스 물리학)

  반딧불이 콘서트에서 발견한 과학(박수의 물리학)

 

 

 

 

  이 책은 초판이 언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개정판이 2003년에 나왔고, 2007년 8월에 그 개정판 29쇄가 나왔다니까 지금은 또 얼마나 팔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동아시아 미학』이라는 책을 봤는데, 그 책도 이 출판사 '동아시아'에서 낸 책입니다.

  이 글은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가 멋진 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건 잘 모르겠고 참 재미있게 읽었으므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기이한 것은 읽고나면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왜 토크쇼 방청객은 모두 여성이라고 했지?'

 

  '유행'하는 책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읽지 않아도 읽을 사람 많은 책, 그렇지 않아도 잘 팔리는 책을 사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