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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실비/산책과 추억』Ⅱ

by 답설재 2012. 11. 12.

제라르 드 네르발 『실비/산책과 추억』

이준섭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얇은 책이지만 두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산책과 추억』은 「몽마르트 언덕」「생제르맹 성관」「노래하는 모임」「젊은 시절의 작품」「초년기」「엘루아즈」「북방 여행」「샹티」 등 여덟 편의 '추억'(혹은 마음의 '산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워낙 아름다워서 한 편 한 편이 시와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습니다.

 

돌아가신 나의 조부모들에 대한 기억은 서글프게도 여러 아가씨들에 대한 생각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 여인들에 대한 사랑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그 여인들에 대한 경멸이 떄로는 나를 풍자적이고 몽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109. 「노래하는 모임」 중에서)

 

어느 날 나의 아버지를 찾아온 한 아름다운 부인이 나에게 간단한 심부름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불행히도 그녀의 부탁을 성급히 들어주었다. 내가 테라스로 되돌아왔을 때, 나의 멧비둘기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너무 슬픈 나머지 내 심장의 피가 온통 피부로 몰려 나오는 자홍색 열로 거의 죽을 뻔했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친구인 한 선장이 아메리카로부터 가져다준 어린 거미원숭이를 동무로 줌으로써 날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귀여운 동물이 내 놀이와 공부를 함께한 친구가 되어주었다.(119, 「초년기」 중에서)

 

내가 살던 기숙사 주변에는 수놓는 젊은 여인들이 살고 있었다. '식민지 태생의 여인'이라 불리는 그중 한 명은 내가 처음 쓰기 시작한 연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녀의 단호한 눈, 그리스풍의 옆모습이 주는 침착하고도 차분한 인상은 내가 받고 있던 엄격한 교육을 잊게 해주는 것이었다. 바로 그녀를 위해서 나는 호라티우스의 <틴다리스에게>라는 서정시와 바이런의 가곡을 운문으로 번역했다. 내가 번역한 바이런의 가곡 후렴구는 다음과 같다.

 

  아테네의 아가씨여 말해주오.

  나의 마음을 빼앗은 연유가 무엇이오!

 

  이따금 나는 동틀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나의 시구들을 낭송하면서 ***로 가는 길을 달려갔다. 그러나 그 잔인한 여인은 나의 방황하는 사랑과 탄식을 비웃는 것이었다.(123, 「엘루아즈」의 첫머리에서)

 

 

여기 언덕 위에 있는 생뢰 마을에 두 개의 탑이 있다. 우아즈 강에 면해 있는 이 마을의 일부를 철로가 갈라놓고 있다. 장엄한 사암의 높은 언덕을 끼고 샹티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마침내 숲의 끝에 다다르게 된다. 마을의 마지막 몇 채의 집 가장자리에 면해 있는 초원에는 노네트 강이 반짝이며 흐른다. 노네트! 내가 가재를 잡던 친근한 작은 시냇물. 숲 저편으로는 노네트의 자매 격인 테브 강이 흐르고 있다. 나는 귀여운 셀레니 앞에서 겁쟁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하다가 그 강에서 거의 익사할 뻔했지!

셀레니는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날 유혹하는 물의 요정처럼 내 꿈속에 자주 나타나곤 했다. 그녀가 야생의 셀러리와 수련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풀밭의 향기에 미치도록 취해서, 양쪽 뺨에 보조개를 보이며 앳된 웃음을 웃을 때면, 마치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물의 요정의 진주 같은 이가 드러나 보였다.(134, 「샹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