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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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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르 드 네르발 『실비/산책과 추억』

by 답설재 2012. 11. 7.

제라르 드 네르발 『실비/산책과 추억』

이준섭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실비』 『산책과 추억』 두 편이 실려 있는 책입니다. 지은이의 일생에 대한 소개가 인상 깊었습니다.

 

프랑스 남부 출신의 한 남자가, 북부로부터 와서 발루아 지방에 정착한 가문의 처녀와 결혼해서 이듬해 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 아이를 발루아 지방의 어느 유모에게 맡기고 나폴레옹을 따라 전장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 아이는 1808년 5월 22일 파리의 생마르탱 가 96번지에서 태어났고, 자라서 1855년 2월 26일 새벽 파리의 으슥한 골목에서 목매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죽은 후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20세기 초가 되자 그의 작품 속에서 놀라운 것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150)

 

그의 작품에는 18세기 유럽의 내면을 흐르던 온갖 기원의 신비주의가, 괴테의 《파우스트》와 실러의 《군도》, 호프만의 《악마의 정수》,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가, 하이네의 《아타 트롤》과 같은 독일의 낭만주의가, 보들레르와 파르나스 시파와 상징주의의 싹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축소판이, 초현실주의자들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자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구자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던 초현실의 세계가 또한 있었다.

 

 

 

 

인생의 아침에 마음을 홀려 방황하게 했던 몽상들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나는 이 몽상들을 굳이 순서도 없이 써보려고 했는데, 진정한 많은 분들은 나를 이해해 주실 것이다. 환상들은 마치 과일 껍질처럼 하나하나 떨어져나간다. 그리고 과일, 그것은 경험이다. 그 맛은 쓰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을 단련시켜 주는 자극적인 그 무엇을 갖고 있다. 이 낡은 표현을 용서해 주시기를. 루소는 자연의 경관이 모든 것을 위로해 준다고 말했다. 나는 파리 북부의 안개 속에 묻혀 있는 클라랑 숲을 이따금 다시 찾는다. 이 모든 것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 (75)

 

제라르 드 네르발은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을 그린 『실비』의 마지막 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실비'라는 제목은 '가는 비'라는 뜻이 아니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 Sylvie입니다. 그래도 '실비'라고 소리내지 않고 불러볼 때 저절로 떠오르는 그 이미지는 변함이 없겠지만……

 

 

 

 

지금이 1900년대의 그 언제쯤, 아직도 연서(戀書)를 수기로 써서 보내는 그런 시절이라면, 이 소설을 찾는 이가 더 많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편지의 첫머리를 어떻게 시작할까, 그렇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고민하거나, 어디 글을 잘 쓰는 친구에게 통사정을 할 필요없이 여기서 따오면 그만일 것 같은 부분이 수두룩합니다.

 

등불도 창백해져서 떨고 있는 새벽녘 우수에 젖어 아직도 감미로운 그런 시간에 나는 루아지의 무도회장에 들어섰다. 보리수나무들이 아래쪽은 침침하고 꼭대기는 푸르스름한 색조를 띠고 있었다. 흥을 돋우는 전원의 피리 소리는 그치고, 꾀꼬리의 떨리는 노랫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42)

 

"실비, 당신과 같은 눈빛과 순결한 얼굴을 갖고 있는 여자는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소.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당신은 고대의 님프란 말이오. 게다가 이 고장의 숲은 로마의 전원과 같이 아름답지요. 그곳에는 장엄한 화강암도, 테르니 폭포와 같은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도 있소. 그러나 여기서 내가 아쉬워했던 것을 그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소."(44)

 

 

 

 

'나'는 여배우 오렐리아, 꿈결에 본 것 같은 여인 아드리엔, 그리고 어린 시절에 살았던 마을의 요정 같은 처녀 실비라는 여인을 찾아다닙니다. 그들 셋을 모두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나에게 여인이란 이런 존재였습니다.

 

1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달리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그녀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마법의 거울을 흩뜨려놓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기껏해야 여배우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그녀에 관한 몇 가지 풍문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나는 그 점에 대해 엘리드(펠로폰네소스 서해안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공주나 트라브존(13~15세기에 번영했던 흑해 연안 터키의 도시)의 여왕에 관해 떠돌 수 있는 소문만큼이나 별 아는 바가 없었다. 마치 당시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때를 살아봐야 하는 것처럼, 18세기 마지막 몇 해를 살았던 나의 아저씨들 중 한 분이 일찍이 나에게 여배우들은 여자가 아니며, 자연이 잊고 그 여자들에게 심장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고 가르쳐주셨다.(4~5)

 

그러나 그 여배우는 우리가 읽어보는 글에서는 흔히 그렇듯 다음과 같은 여인입니다.

 

그 다음에 있었던 대화에서, 나는 '무명인'으로 보낸 두 편의 편지 당사자로서 내 정체를 밝혔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미쳤군요! 하지만 나를 만나러 오세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분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지요."

오, 여자여! 너는 사랑을 찾고 있구나. 그런데 도대체 나는?

그 이후 여러 날, 나는 아마도 그녀가 받아보았을 어느 편지보다도 다정하고 아름다운 편지를 써보냈다. 나는 그녀로부터 지극히 이성적인 답장을 받았다. 한순간 마음이 움직였는지, 그녀는 나를 가까이 불러서 보다 오래된 관계를 끊기가 어렵다는 고백을 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이라면, 나는 단 한 사람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71)

 

'나'의 여인 여배우 오렐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갔고, 그러므로 사랑도 늦은 것이 되어 버렸다지만, 사랑이란 정말로 그런 것일까요?

 

 

 

 

현실적으로는 '나'라는 사람도 참 오묘합니다. 사랑에 대한 관점이 이렇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하려 했던가? 내 마음을 재정리하려고 했다. 내가 한 편의 소설을 써서라도 동시에 두 갈래의 사랑을 품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도저히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다. 실비는 내 잘못으로 나를 떠나갔다. 그러나 하루 동안 그녀를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추스르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제 그녀를 미소 짓는 여신상으로 '지혜'의 신전에 모셔두기로 했다. 그녀의 시선은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붙들어 멈추게 했다. 나는 오렐리 곁에서 한순간 반짝이다 이내 사라져버리고 마는 많은 속된 연인들과 잠시나마 경쟁을 해볼까도 했지만, 그녀 앞에 나서서 내 정체를 드러내겠다는 생각을 완강하게 물리쳤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여자가 심장을 갖고 있는지, 언젠가 보게 되리라.'(69)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여자가 심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까?' '사랑은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일까?'

'한 편의 소설을 써서 "내 사랑은 저 여인을 향한 것도 간곡하고 진실한 것이지만, 당신을 향한 것도 진실이고 지극한 것"이라고 호소하면, 곧이 들을 여자가 도대체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있다 하더라도 바보가 아니라면 그래도 나는 당신이 좋다고 할 여자가 있을까?'

다른 생각도 많이 했지만 얼른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만두겠습니다.

어쨌든 한 여인을 만나면 다른 여인도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나'라는 인물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여배우 오렐리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선언을 듣게 됩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군요! 당신은 '여배우인 내가 그 수녀(아드리엔)와 동일 인물입니다'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고 있군요. 당신은 하나의 드라마를 찾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그런데 대단원이 빗나갔습니다. 자, 이제 난 당신을 더 이상 믿지 않겠어요!"

그 말은 번개와 같았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느껴왔던 이 이상한 열광, 이 꿈, 이 눈물, 이 절망, 그리고 이 애정… 이것이 도대체 사랑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사랑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73~74)

 

 

 

 

물론 '나'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그런 진정성을 가진 '나'를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더 예시할 필요도 없겠지만, 어릴 때부터 지켜본 실비에게도 이렇게 대했습니다.

 

생S… 승원의 건물 벽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물에 젖은 풀밭이 가로놓여 있고, 거기엔 여러 줄기의 개울이 굽이굽이 흘러가고 있다. 내가 말했다. "그 수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 그 수녀와 당신의 인연은 끈질기기도 하군요. 그런데… 그런데… 이야기가 잘못 돌아갔어요."

실비는 그녀에 관해서 더 이상 한마디도 하려 들지 않았다.

여자들은 이러저러한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입술 위를 지나간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 것일까? 여자들이 그토록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면, 또 흔히 남자를 선택하는 것을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사랑의 코미디를 아주 멋지게 연출하는 남자들이 있으니 말이다! 어떤 여자들은 일부러 속아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나를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시절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랑은 범할 수가 없는 그 무엇인 것이다. 실비는, 내가 커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으니 나에게 누이와 같았다. 나는 유혹할 수 없었다. 전혀 다른 어떤 생각이 내 마음을 스쳐갔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쯤 내가 극장에 있다면… 오렐리(이것은 그 여배우의 이름이었다)는 오늘 저녁 어떤 역을 하기로 되어 있을까? 물론 새로운 드라마의 공주 역이겠지…(후략)…'(61~62)

 

그리하여 이젠 실비조차 떠나가게 됩니다.

 

나는 대답하려 했고, 그녀의 발치에 엎드려 빌려고 했다. 나는 내 아저씨의 집을 사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려 했다.(63)

 

 

 

 

번역에 대한 아쉬움은 어느 책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없으면서도 이런 부분에서 등장인물들은 실제로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자꾸 생각하며 읽기를 멈춘 곳들이 있었습니다.

 

"오! 난 더 이상 레이스를 만들지 않아요. 이 지방에선 더 이상 그걸 요구하지 않거든요. 상티에서조차 공장이 문을 닫았지요."

"그럼 당신은 무얼 하오?" 그녀는 방 한구석으로 가서 기다란 집게 같은 쇠로 만든 도구 하나를 찾아왔다.

"그게 뭐요?"

"이건 사람들이 기계라 부르는 것이에요. 장갑을 짜기 위해 장갑의 외피를 고정시켜 주는 것이지요."

"아! 실비, 당신은 장갑을 제조하는 여공이로군?"(54~55)

 

'나'의 어투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얼 하오?" "여공이로군?"

 

읽고 또 읽어서 인물들의 생각을 유추해 내는 맛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번역'이라는 일(혹은 창작)의 어려움과 한계를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쓸데없는 짓(해설)을 했을 것입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들 그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 '나'라는 인물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우리처럼 숨기거나 어쩌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다 썼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실비』는 그런 소설입니다. '시 같구나' 하며 읽었습니다.

 

실제로 제1장에 이미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피난처란 시인의 상아탑밖에 없었다. 거기서 우리는 군중을 멀리하기 위해 언제나 더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의 스승들이 인도해 주는 그 높은 지점에서 우리는 드디어 고독의 맑은 대기를 마시고 전설 속의 황금 잔에 망각을 마시며 시와 사랑에 취하는 것이었다. 사랑, 오호라, 그 형태는 막연하고, 빛깔은 푸른 장미 빛이며 추상적 환영과 같은 것! 현실의 여인은, 가까이에서 보면, 우리의 순진성을 거역하는 것이었다. 여인은 여왕이나 여신처럼 보여야만 하고, 그래서 특히 가까이 접근하지 말아야 했다.(7)

 

"그게 무슨 상관이람. 저 사람이든 또는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 한 사람이 있어야 했겠지. 그런데 저자는 선택받을 만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 자네는?"

"나 말이야? 내가 쫓는 건 이미지일 뿐이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