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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장소현 『불꽃 같은 사람·사랑의 조형시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by 답설재 2012. 7. 31.

「불꽃 같은 사람·사랑의 조형시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장소현, 열화당 2000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시화전(詩畵展)이라는 걸 해봤습니다. 순전히 남과 어우러지는 것이 좋아서 그런 일들을 벌이며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작품 제작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크게 복사해 붙이고 그 귀퉁이에 글을 써넣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 詩는…… 어떻게 했나 하면…… 흉내만 낸 거지요. 詩는 무슨……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시적(詩的)'이니까 구경꾼들이 그 그림을 바라보면 더 좋을 것이므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진관 주인이 참 하릴없는 학생을 바라보면서 "이 그림을 확대 촬영해서 무엇에 쓰려는지" 자꾸 물었습니다.

45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모딜리아니는 시인이다. 그림으로 시를 쓴 시인.

그의 작품을 대하면 시가 떠오르고,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축축하게 젖은, 그리고 어쩐지 쓸쓸한 사랑의 시, 그러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존경과 믿음을 절절하게 담은 생명의 노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호수처럼 깊고 푸르른 초점 없는 눈, 그 깊은 곳에 진하게 스며 있는 '사람 사랑'의 열정…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운명의 슬픔, 근원적 외로움의 시…(8)

 

모딜리아니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신비롭고 치열하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들을 그저 감미롭고 관능적인 것으로 보는 것 같은데, 알고보면 그의 작품에는 짙은 슬픔과 아픔이 깔려 있고, 그의 제작 태도는 매우 진지하고 엄숙하다(12).

 

 

 

 

새로운 세기를 맞아 출렁거리던 시대적 상황, 파리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다양하고 새로운 예술적 혁신의 소용돌이, 마치 한편의 짜릿한 연극 같은 외롭고 격렬한 보헤미안의 삶, 운명적인 가난, 술과 마약으로 얼룩진 방탕한 생활,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한 자존심과 무서울 정도로 치열한 제작 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이 갈등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 불꽃처럼 뜨겁고 애틋한 사랑, 친구들과의 끈끈한 우정, 타협을 모르는 예술가적 정열……(9).

 

위의 사진은, 그렇게 살다가 36년도 못 채우고 간 모딜리아니의 모습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기는 하지만 함께 살라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내저을 그런 삶.

 

 

 

<폴 알렉상드르> 1909, 캔버스에 유채, 100×81cm, 개인 소장.

 

<샤임 수틴> 1916, 캔버스에 유채, 92×60cm, 내셔널갤러리. 워싱턴.

 

 

이 책에는 98매의 도판이 실려 있습니다. 대부분 초상화입니다. 그의 초상화는 한 점 한 점이 각각 어떤 사연을 지니고 있을 것 같아서 자꾸 들여다보게 합니다. 초상화에 대한 해설 중에서 한 군데를 가려 봤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들을 "표현주의나 입체파의 지나친 인체 파괴에 대한 반작용이며, 신이 창조한 형태로 복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 말대로 모딜리아니는 작품을 통해 끈질기게 인간 사랑의 생각을 고수하고, 인간 회복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외롭고 힘겹고 아픈 싸움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감미로운 그의 작품에서 아릿한 슬픔과 애절함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고독하고 피곤한 싸움에서 비롯된 고뇌와 불안의 울림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을 그렸는데, 밝고 환하게 웃는 인물은 없다. 이렇다 할 표정도 별로 없고, 미소조차도 드물다(103).

 

아무래도 좀 과장된 것 같습니까? 그걸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설령 미화되었거나 과장되었으면 뭐 어떻습니까? 그런가보다 하면 그만이겠지요.

이 초상화들을 바라보면 모델이 된 인물에 대해 살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잔느 에뷔테른느> 1918년경. 캔버스에 유채. 92×60cm. 개인 소장.

 

 

이제 그때 그 시화전에서 소개한 여인을 소개할 차례입니다. 목이 긴 모딜리아니의 여러 여인들 중 바로 다음의 <검은 타이를 맨 여인>이 그 여인입니다. 이 도판을 2.5배 정도의 흑백으로 확대하면 ──그때는 당연히 흑백이었지만── 이 여인은 한층 더 애수어린 표정을 보여줍니다. 아니, 그때의 느낌으로는 그랬습니다. 그때 나는 이 여인에게 빠져 있어서 대학의 동기생 여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두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다른 분야에 비해 여학생들과의 일화는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블로그라고 쓸데없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 책의 필자는 '모델과의 관계'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화가는 앞에 앉은 사람의 개성을 탐색한다. 모델은 자신의 인격의 어떤 부분은 감추려 애쓴다. 그러나 부질없는 일. 단 몇 개의 선으로 그들은 완전히 사로잡혀 버리고 만다. 장 곡토를 그린 그림, 심지어는 자화상에 있어서까지도 모딜리아니는 모델의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화가의 내적 비전을 정확하고 핵심적으로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공격적이건 수동적이건 모델은 화가의 어떤 이미지를 흡수하고 반사한다. 결국 모딜리아니는 모델을 그리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조형표현의 상징적 힘이 증폭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화가와 모델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일종의' 기 싸움.' 같은 대결 구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모딜리아니의 초상화에서는 이런 긴장감이 많이 느껴진다.(134).

 

 

 

<검은 타이를 맨 여인> 1917. 캔버스에 유채. 65×50cm. 개인 소장.

 

 

이런 포스팅도 해두었습니다.

『Amedeo Modiliani & Jeanne Hébuterne 열정, 천재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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