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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슈테판 츠바이크 『이별여행』

by 답설재 2012. 7. 13.

슈테판 츠바이크 『이별여행』

배정희·남기철 옮김, 이숲, 2011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로랑 세크직, 현대문학, 2011)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주인공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이야기다. 세계 3대 전기작가 중 한 명이라는 말도 있다.

 

표지부터 좀 재미있다. 웃기는구나 싶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찍은 사진일 것 같진 않고, 2011년 그러니까 지난해에 유럽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라고 했으니 제작 중인 그 영화의 선전물인가 싶기도 하지만 추측일 뿐이다.

 

이 표지 때문에 남들 보는 데서 읽기가 좀 난처했다. 남녀 간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이보다는 좀 품위 있는, 혹은 차라리 더 선정적인 사진을 구했더라면 싶었다. 저게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원……

 

 

 

 

루트비히는 굴욕적인 가난으로 얼룩졌던 어린 시절, 사회복지시설의 도움, 가정교사 등으로 근근이 생활하며 녹초가 된 몸으로도 공부에 전념하여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학장의 특별 추천으로 프랑크푸르트의 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는 진솔하고 진지한 성격으로, 하찮은 업무에도 광적인 의지로 전력을 다하고, 일이 쌓일수록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하여 평범한 조수 신분에서 일약 회사의 주요 기밀 실험에 참여하는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위 상승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일했다.

 

연로하고 병들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늙은 사장은, 드디어 그를 기밀 특허권에 대해서까지 상의하는 개인비서로 채용하고 자신의 심복으로 아예 자신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함께 지내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예전에 어느 졸부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며 겪은 모욕감과 그 졸부 부인의 동정심에 대한 수치심 등으로 부유하고 호화로운 것들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던 그는, 여러 가지 번민 속에서도 그 지독한 거부감을 누르고 사장의 저택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루트비히의 인생은 그 시점에서 변곡점에 이르렀다. 곧 사장의 젊고 아름다운 부인과 충동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고, 2년을 예정으로 멕시코 광산 개발 사업에 투입되어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그 그리움을 하루하루 편지를 쓰고 읽은 일로 달랬다. 그러나 기다림의 세월은 2년이 그 끝이 아니었다. 독일과 프랑스·영국,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간에 전쟁이 일어나 루트비히는 언제 귀국할지 모르는 채 그 멕시코 광산에 무한정으로 머물게 된다.

 

 

 

 

"사랑이 그런 건가요?"

그런 노래가 있다. 그들 사이의 '애절한 사랑'도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열정이 지탱하던 긴장감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48).

 

헤어진 지 9년, 이제 루트비히도 결혼하여 얌전하고 가정적인 성격의 아내와 두 명의 자식까지 두었다. 그러나 가정적으로 안정되고 유능한 사업가로서의 명성까지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나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어떻게 하면 억압된 상태로 풀리지 않은 그 열정, 그 가슴 떨리는 열정을 확인할 수 있을지 그들 사이의 그 뜨거웠던 사랑을 회복하려고 발버둥친다.

 

그것은 바다 저 너머의 오두막집과 황량한 벌판과 거친 작업장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낮과 밤을 보내며 그가 상상했던 재회와 너무나 달랐다. 와락 달려들어 서로 품에 안기며 뜨겁게 포옹하고 옷을 벗어던지고 마지막 남은 한 점의 정열까지 모두 불태워버리는 그런 재회를 꿈꾸지 않았던가. 예의 그 다정함과 공손함으로 격조 있게 수다를 떨고, 그간의 사정을 물어보는 것이 둘 사이의 진실한 모습일 수는 없었다(58).

 

그것은 사장 부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회피하시는군요. 하지만, 전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전 부인 스스로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는 겁니다.」

그 말에 대답하는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떨리고 있었다.

「왜 내게 묻나요? 지금,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린 지금에 와서 당신에게 말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대답하지요. 나는 당신에게 결코, 어떤 것도 거부할 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을 알게 된 그날 이후 나는 언제나 당신의 여자였어요.」(65)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이별여행을 떠난다.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그 가슴 뜨거웠던 약속, 그 옛날의 열정을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두 사람이 들어가 있는 호텔 방의 장면이다.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시트와 방금 전까지 사용했던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을 것 같은 침대가 이 방의 용도를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 적나라함에 두 사람은 거북함을 느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황급히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불어온 바람에 불룩하게 부푼 커튼 주위로 촉촉하고 시원한 공기가 퍼졌고, 거기에는 거리의 소란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긴장한 상태로 창가에 서서 벌써 어둠에 묻히기 시작하는 지붕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방은 얼마나 더러우며, 이곳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게다가 오랜 세월 꿈꿔왔던 이 재회는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그도 그녀도 이토록 갑작스럽게, 이토록 노골적으로 재회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세 번, 네 번, 다섯 번, 숨을 헤아렸다. 숨을 몰아쉬며 밖을 내다보기만 할 뿐, 운도 떼지 못하고 비겁하게 상황을 회피하던 그가 억지로라도 말을 하려고 했다.

그가 예감하고 우려했던 대로 그녀는 회색 더스트 코트를 걸친 채 방 한가운데 돌처럼 뻣뻣하게 서 있었다(79)

 

슈테판 츠바이크는 사랑이 열정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사랑은 특히 약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 것일까? 그것도 세월과의 관계에서 오묘한 함수로 그려지는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더 행복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