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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by 답설재 2012. 6. 4.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2011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부분은 비독서의 방식들로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UB, Unknown Book),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SB, Skimmed Book),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HB, Heard Book),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FB, Forgotten Book)에 대한 설명입니다.

 

다음은 책을 읽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입니다. 그러한 경우를 '사교 생활에서' '선생 앞에서' '작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로 나누어 예시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처 요령을 설명합니다. '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이 그 요령입니다.

더구나 속표지 안쪽에는 책을 읽지 않은 이유를 말한 오스카 와일드의 아포리즘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 오스카 와일드1

 

 

 

『햄릿』? 이 사람들은 그 정도는 모두 읽었겠지? 당연히, 저 사람도 그 책을 읽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거나 표현할 때처럼, 대화와 토론에 참여하는 각 개인의 '내면 도서관'의 접점에는 다른 사람들과 말이나 글로 나누는, 책들에 관한 토론(소통)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피에르 바야르는 이를 '잠재적 도서관'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그는 또 이 공간에 대해 "무지의 여지를 허용하는 공간"이라고 하고, "아무리 심화된 교양이라 해도 모든 교양은 구멍과 균열을 중심으로 구축되며, 그런 것이 있다고 해서 교양이 정보들의 총체로서의 어떤 정합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만들어지는 그 공간"을 '결정불능의 문화 공간'이라고 했습니다.2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도서관의 책들 중에서 일반적으로 당연히 읽었어야 할 책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읽지 않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저도 여기서 당장 그런 책을 한 권 예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떨칠 수 없는 근원적인 수치심 때문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이미지에 대해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3

 

 

 

피에르 바야르는 또 책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나르시스가 위협 받는 매우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의 내적 일관성을 보증하는 데 쓰이는 우리 자신의 부분들을 교환하는 것"이며, "이 교환들에 의해 수치심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 자체가 위협받게" 되므로, 우리가 연출하는 이 잠재적 공간에서는 '모호성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과 대비되는 학교에서의 '학습 공간'에 대해 "완전한 읽기가 가능하다는 환상 속에서, 학생들이 질문을 받거나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하는 그 책들을 과연 실제로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를 알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폭력의 공간"이라 하고, "읽기는 참과 거짓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므로, 모호성을 걷어내고 과연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실하게 평가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환상"이라고 했습니다.4

 

 

 

피에르 바야르의 이러한 설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의 이름 그대로 정말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하는 요령을 이야기한 책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제시한 요령은, ① '부끄러워하지 말 것' ②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③ '책을 꾸며낼 것' ④ '자기 얘기를 할 것' 등이었고, 가령 ❶ '부끄러워하지 말 것'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으려면 가정과 학교에 의해 강압적으로 전파되는 흠결 없는 문화라는 강박적인 이미지, 일생 동안 노력해도 일치시킬 수 없는 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진실보다는 자기 진실이 더 중요하다. 우리의 내면을 억압적으로 지배하며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 즉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자기 진실에 이를 수 있다."5

 

 

 

나머지 요령에 대해서도 핵심이 될 만한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두번 째는 ❷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피에르 바야르가 발자크의 소설 『잃어버린 환상』(르 리브르 드 포쉬 출판사, 1983)에서 인용한 다음과 같은 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관념에는 반드시 앞과 뒤가 있단 말이야. 그러나 어느 쪽이 뒤인지는 아무도 책임지고 확언할 수 없는 거야. 사상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양면적이야. 관념이라는 것은 두 개의 원소로 되어 있어. 두 얼굴을 가진 아뉴스의 전설이야말로 비평의 비유인 동시에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6

 

세번 째 요령은 ❸ '책을 꾸며낼 것'입니다. 피에르 바야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7

 

'타자'가 알 거라는 생각이 주는 두려움은 책들에 대한 진정한 모든 창작을 가로막는 족쇄와 같다. 타자가 읽었으리라는 생각, 그가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창작을, 비독자가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부득이 의존하는 수단으로 환원시켜버린다.

 

이 말은, 비독자(非讀者), 책을 정말로 읽지도 않은 사람)는 우리의 '창작'(예 : 창의적인 사고)을 오히려 그가 그 책을 읽지 않고 이야기해야 하는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의존하는 수단으로 써먹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❹ '자기 얘기를 할 것'입니다. 이는 ❸ '책을 꾸며낼 것'과 유사합니다. 피에르 바야르는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비평(책 이야기)을 하기 위해 책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위험이 따르는데, 그 위험이란 책의 어떤 가정적인 유익함을 얻기 위해 가장 진정한 자기 자신의 일부를 상실하는 희생이 그 댓가라는 것입니다. 책을 지나치게 주의하여 읽는 행위는 그 책을 읽음으로써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위험성이 있으므로 책을 읽을 때는 그 책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8

 

 

 

마지막 이야기 '자기 얘기를 할 것', 이것이 이 책을 쓴 피에르 바야르의 결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허풍을 떨며 주저리주저리 되지도 않을 말을 쏟아놓으라는 뜻이 아니라 책을 바르게 읽는 법을 이야기한 책이며, 책을 바르게 읽는 그 방법이란 책을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여 읽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생각으로, 창의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우선, 책을 읽고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거의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령,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은 어떻습니까? 교양인으로서의 부부간, 교양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이어야 하므로 적나라한 모습은 나와 상대방의 수치심이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게 됩니까?

저는 요즘에 와서 적나라한 모습이야말로 상대방의 전적인 이해와 관심,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렇지 못한 면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후회도 많습니다.

 

다음으로, 아직도 책을 더 많이 읽지 못하여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유는, 세상의 좋은 책들을 한 권이라도 더 읽은 후에 그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를 조금이다도 더 알아본 후에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좀 터무니없는 욕심을 털어놓으면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 그것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교과서라는 이름을 가진 책만을 반복하여 읽어야 하고, 핵심을 찾고, 그걸 외워야 하는, 그리하여 나의 생각 같은 건 가능한 한 유보해야 하는 오늘날 우리의 학교교육은, 얼마나 한심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교과서는 가장 신성한 대상일 수밖에 없고,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마음으로 외면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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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과 거리를 두라는 것, 바로 이것이 오스카 와일드가 책읽기와 문학 비평에 대한 성찰에서 부단히 되풀이하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이 도발적인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228쪽).
2. 이 책, 169쪽.
3. 172쪽.
4. 173~174쪽.

5. 174쪽.

6. 189쪽.

7. 205쪽.

8. 228~2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