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책들의 유혹

by 답설재 2012. 9. 2.

 

 

 

 

 

책들의 유혹

 

 

 

 

 

'아…… 어떻게 하나?……'

 

 

여기가 지금 어딘지나 아는지……

 

 

 

 

 

 

  서점에 들어서면, 그게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건지 아니면 무슨 헤어나지 못할 최면술에나 걸리는 건지, 금방 다른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한 가지 일에 골똘하게 됩니다. '아,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서가의 책들을 살펴보면 이 세상의 중심에는 서점이 있고, 돈과 권력이 아니라 책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서점을 나서면 생각이 달라지지만, 훌륭한 책을 낸 이는, 생존 인물이거나 이미 저 세상으로 갔거나 간에 대통령이나 재벌보다 더 위대한 인물인 것처럼 오해하게 됩니다.

 

  참고 사항을 밝히면, 나라는 인간은 박사(博士), 즉 한 가지 전문적인 일을 꿰뚫는 선비가 아니고, 잡다한 영역에 걸쳐 무엇이든 조금씩이라도 다 알고 싶기 때문에 서점에 가면 둘러봐야 할 코너가 한두 곳이 아니고, 그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인물의 수는 남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인물보다 더 많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냐 하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넓고 넓은 이 세상에는 알아보고 싶은 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책이라는 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까짓거 만원 안팎이면 살 수 있는 게 수두룩하고, 대체로 비싸봤자 겨우 2~3만원이면 좋은 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한두 권 사가지고 서점을 나올 때는 마치 내가 세상 이치를 통달해 가고 있는 인물처럼 생각됩니다. 아주 웃기는 거죠.

 

  다행스러운 점은, 그 착각이나 혼란을 곧 잊어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 책들을 사무실이나 집의 서가에 꽂아 놓고 나면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TV도 열심히 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신문기사는 끝까지 정독하고, 별것 아닌 일에 온 정신을 쏟으며 고민하고…… 하여간 다음 번에 서점에 갈 때까지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서점에 가면 무슨 마약이나 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그만 그 유혹에 빠집니다.

  심지어 서가 아래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저 대학생,

  가방을 맨 채로도 아예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이쪽의 대학생, 서가 아래에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그 책을 살지 말지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저 젊은이, 심지어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책을 고르는 젊은 여성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 대한민국이 바로 이들 때문에 괜찮은 나라구나 싶어집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신이 살아 있구나 싶어집니다.

  세상에 다른 할 일은 없어서 결국은 그 판에 뛰어든 것이 분명하구나 싶은 일부 정치인들이나, 무엇보다 더 높은 가치가 돈을 모으는 일이라는 듯 으스대는 재벌들을 보면, 참 미운 나라가 이 나라구나 싶다가도, 서점에 가서 저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 나라는 기필코 잘 되어야 한다는 표현할 길 없는 가슴을 안고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은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책 때문입니다.

  집에도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습니다. 게다가 읽은 책들 중에도 새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습니다. 사실은 괜찮은 책은 모두 새로 읽고 싶은 책입니다.

  읽지 않은 책은 사무실에도 제법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 속에는 오늘이라도 서점에 가면 당장 사들고 와야 할 책이 몇 권 들어 있고, 꼭 사고 싶다고 메모해 두는 책도 자꾸 생깁니다.

 

  "이제 책장은 그만 사야 한다."

  "가구도 줄여서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야 한다"

  까짓거 아내가 그렇게 결정해버린 일은 별일도 아닙니다. 허접한 자료는 버리거나 어디에 기증하고, 그렇게 하여 생기는 빈 자리에 꼽으면 얼마든지 더 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은 아주 큰 문제입니다. 책은 자꾸 나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서점이 영영 문을 닫는 일이 생기면, 즉 책이 더 나오지 않게 되면 가지고 있는 책이나 알뜰히 읽고, 자꾸 읽으면 되겠지만,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야말로 단 1%도 없고, 일전에 신문을 봤더니 우리나라에서 하루에만도 약 200권의 책이 나온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닙니까?

 

 

 

 

  세상에는, 문제집을 잘 풀어 좋은 대학에 가고 그 결과로 높은 자리에 올랐거나 돈을 많이 벌어들인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높은 사람이 자신은 이제 책을 그만 봐도 된다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도 있습니다. 좋든 어떻든 우리의 사회구조가 그런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매우 긍정적인 경우로,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의 좋은 책을 많이 읽을수록 지위가 유지되거나 돈이 자꾸 생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학자들의 경우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문제집도 아니고 자신이 하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책을 자꾸 읽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흔히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늘 그런 경우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고, 그렇게 생각하면 책을 읽는 것이 불행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나의 경우에는 농담처럼 웃기는 말일 것입니다. 있기는 뭐가 있습니까. 솔직하게 털어 놓으면 나의 경우에는 길을 찾은 것이 아니고 그저 궁금해서 혹은 재미를 찾아서 읽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책을 읽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야 행복감을 느낍니다. 얼마든지 고독해도 괜찮습니다. 아, 이런 소리를 하면 안 되겠군요. 믿음이 없으므로, '행복'이 뭔지 모르므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겠군요. 그럼 책을 읽어야 마음이 놓인다, 살 맛이 난다고 하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