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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구효서 『타락』 구효서(장편연재소설) 『타락』 2012년 12월부터 2013년 8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다.(.『현대문학』2012년 12월호, 제1회) 이렇게 시작되었다. 산은 아침이라는 걸 알았다. 다시 아침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여기에 있어, 지금……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면 산은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마다 그랬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있는 거야. 눈을 감은 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산의 중얼거림이 말이 되었던 건 아니다. 숨처럼 흘렀다. 지금 여기라서 기분이 좋은 건가…… 흐르는 숨으로, 산은 자신에게 물었다.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그랬다.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아침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실들을 알고 있는 자신이, 산은 좋았다. 까마귀 소리를 들었다. 부겐빌레아 공원이 멀지 .. 2014. 2. 4.
조선어학회 『한글첫걸음』 이런 책 보신 적 있습니까? 우리(우리나라)는 이런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산더미 같은 자료가 쓰레기처럼 마구 버려져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 가슴이 '철렁' 했습니다. 지금은 그 일이 꿈인가 싶기도 합니다. 1996년 봄, 교육부 편수국이 문을 닫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 자료는 '한국교과서연구재단' 교과서정보관에서 봤습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비영리 공익법인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한 일인데, 힘(돈)도 능력(인력)도 미약하니까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하고 소장 자료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개인 중에도 그 정도의 자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를 알고자 하고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더 잘하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2014. 1. 22.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요코 이야기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요코 이야기 So Far from the Bamboo Grove』윤현주 옮김, 문학동네 2005       Ⅰ 옮긴이의 말에 소개된 줄거리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이기도 한 요코는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은 전쟁을 경험합니다. 전쟁을 체험해보지 않는 저나 여러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들을 만나지요. 생명의 위협, 굶주림, 공포와 충격으로 미쳐버리는 사람들, 인권의 짓밟힘, 허물어지는 윤리 의식 등을 말입니다. 게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간 자기 나라, 일본에서조차 요코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습니다. 그러나 요코 가족은 자기들에게 닥쳐온 이 모든 고난을 놀랄 만한 힘으로 이겨냅니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 2014. 1. 11.
육동인 『누구나 인재다』 육동인, 『누구나 인재다』 북코스트, 2013 누구나 인재! 사실이라면, 그걸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교육입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 그들의 창조경제를 엿보다", "2013 상반기 SERICEO 최고의 인기 강좌" 저렇게 써놓은 걸 보고 읽은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인재!" 그걸 실현하는 방법(해답)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 여러 줄을 서서 기다리지만 세 시간 정도로 충분해서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다. ♬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 핵심적인 일을 하는 사람인데도 재미나 보람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그럼 왜 그 회사에 취직했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대학에서 관련된 전공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럼 왜 그 전공을 선택했느냐?"고 물으면 "수능 성적에 맞춰서……"라는 대답도.. 2014. 1. 7.
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 Unpopular Essays』 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 Unpopular Essays 1950』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Unpopular Essays. 1950. London: George Allen & Unwin Ⅰ 실제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기가 어렵고 싫어서 그냥 갖다 대듯 하면, 40여 년 전에 저승으로 간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1872~1970)은,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이 수가 거의 같은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증오하고 상대편의 목을 조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수가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편은 다른 편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수가 절반을 약간 넘는 편 또한 승리를 거둔 순간 양편 사이의 반목을 치유하는 데 필.. 2013. 12. 23.
데이비드 보드니스 『E=mc²』 데이비드 보드니스 『E=mc²』 김민희 옮김, 생각의나무 2003 Ⅰ "E=mc²이 뭐죠?" 그러면 상대방은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더러 대답해 주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이잖아요? 원자폭탄, 수소폭탄이 보여주듯 질량은 에너지와 별개가 아니라는……" 그 정도의 대답을 들으면 궁금증은 구체화되고, 이 공식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친절한 사람은 훨씬 적극적인 설명을 시작합니다.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만큼에 비례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질량 보존의 법칙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이로써 태양이 어떻게 그 엄청난 에너지를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질량과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상호 간에 변환이 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원자폭탄과 원.. 2013. 12. 15.
안병영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안병영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문학과지성사 2013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님께서 이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분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행정학회장,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는 『현대 공산주의 연구』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변론』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 『한국정치론』(이하 공저) 『한국의 공공부문』 『교육복지정책론』 등이 있습니다. 교육부장관(1995.12~198.8),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2003.12~2005.1)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두 차례에 걸쳐 교육부 장관을 지냈는데, 내가 교육부 근무를 좀 오래 .. 2013. 12. 11.
책을 읽지 않으면서도 태연하게 살아가기 책을 읽지 않으면서도 태연하게 살아가기 '사치감(奢侈感)'이라는 새 단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책을 고를 때 '이건 사치'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그런 경우에 쓸 수 있는 정도의 단어입니다.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은, 서점에 들어서면 가격은 1~2만원인 수많은 책들이 나 좀 보라.. 2013. 11. 27.
시오노 나나미 『살로메 유모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살로메 유모 이야기』 (백은실 옮김, 한길사, 2004) Ⅰ 목이 잘린 사람의 머리를 쟁반에 받쳐들고 있는 여인, 이 끔찍한 장면 속에서도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저 기이한 여인이 등장하는 그림의 제목은, 「살로메와 은쟁반 위의 요한 세자의 머리 Salome with the Head of the Baptist」, 저 여인이 바로 이야기 속의 팜므파탈(femme fatale, 요부형 여인) 살로메입니다. 이 그림들은 캐나다의 내 친구 블로거 Helen of Troy의 『Welcome to Wild Rose Country』, 「슈트라우스 작의 오페라 살로메 Salome by Richard Strauss」에 실린 것들입니다. Andrea Solari(1460-1524), 「살로.. 2013. 11. 3.
『왜 책을 읽는가』 표지 그림에 끌려서 샀습니다. 모두들 열중하고 있고, 한 남성이 앞을 바라봅니다. 오만함이 느껴집니다. 방해 받았다면 그럴 수밖에. 지금 읽고 있던 곳의 책갈피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좀 못마땅한 듯한 표정입니다. '뭐야, 지금?' 저 사람에게 책을 읽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모두들 혼자입니다. 그렇게 보면, 혼자 하는 일로서 독서만큼 적절하고, 비난 받을 일 없고("책이나 보면 뭐가 나온다더냐?"는 비난을 받은 사람이 없진 않지만), 마음 편하고, 자유롭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고("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이 표지를 여러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표지의 이 말은 탐탁지 않습니다. '무슨, 그렇게, 이.. 2013. 10. 1.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Ⅱ)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온다냐?"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좀 멀리 살고 있지만 ――'가까이 살면 가끔 만나 차라도 한잔 하며 지낼 텐데……'―― 프랑스의 샤를 단치라는 작가입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1 독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심각한 행위다. 심지어 나는 책을 읽는 이유가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이들, 정말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언제나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내겐 늘 충격적이었다. 통쾌하기까지 한 것은, 이 작가는 이렇게 써놓고,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깨달음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는지 늘 책에 파묻혀 살았으며, 그런 그가 이상해 보였던지 사람들은 자신을 서슴지 않고 비난했고, 특이한 그의 취향을.. 2013. 9. 13.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 (Ⅰ)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 (Ⅰ) 아내와 자식들이 들으면 섭섭해하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아, 저런 사람을 믿고 살았다니!……' 그렇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실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실을 조금은 수긍해 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줄 다 알.. 2013.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