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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구효서 『타락』

by 답설재 2014. 2. 4.

  구효서(장편연재소설)

『타락』

 

 

 

 

 

 

2012년 12월부터 2013년 8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다.(.『현대문학』2012년 12월호, 제1회)

이렇게 시작되었다.

 

산은 아침이라는 걸 알았다. 다시 아침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여기에 있어, 지금……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면 산은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마다 그랬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있는 거야. 눈을 감은 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산의 중얼거림이 말이 되었던 건 아니다. 숨처럼 흘렀다.

지금 여기라서 기분이 좋은 건가…… 흐르는 숨으로, 산은 자신에게 물었다.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그랬다.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아침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실들을 알고 있는 자신이, 산은 좋았다.

까마귀 소리를 들었다. 부겐빌레아 공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산은 알았다. 무언가 들려온다거나 무언가 멀지 않다는 사실조차 산은 기꺼웠다.

 

 

책을 들면 샅샅이 읽는 습관 때문에 이 월간지도 웬만한 글은 다 읽고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은 때로 재미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만둘까 하면 '기이하다' 싶은 부분이 이어져 내처 읽었고, 점점 흥미로웠다.

'따뜻한 곳', '살기좋은 곳'을 떠나온 산과 이니가 만나서 자신들을 소진해 가는 이야기.

 

 

'조화', '길들인다', '먹이' 같은 단어들의 숨은 의미가 바로 『타락』, 그 '타락의 기초'가 되었을까?

이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 그 2012년 12월호에서 작가의 변 '연재를 시작하며'를 찾아보았다.

 

에덴은 어떤 곳일까.

지혜의 영물인 뱀에게 꼬임을 당하여 인간은 선악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고 죽음의 원죄를 안고 문명의 세계로 추방당했던가. 끝없는 '타락'의 시작이 그것이었던가.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의 자리인가.

죽음이 두려우면 돌아가자. 뱀에게서 얻은 모든 것을 되돌려주고 지혜도 없고 선악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모르며 문명도 죽음도 없는 그곳으로 가자.

아랫도리 나뭇잎도 떼어버리고 아무려나 그곳으로 달려가자는데, 누군가 그것은 바보 되는 일이며 선악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금수로 "타락"하는 일이라 한다. 에덴에서의 추방도 '타락'이고 에덴에로의 회귀도 "타락"이다.

우리에게 이 "타락"을 감행해볼 만한 명분은 무엇인가. 타락의 타락. 무엇보다 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락"의 세계에 들어서면 '타락'세계의 언어와 도덕률이 무화되어 '타락'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덴은 그런 곳이니 미련 두지 말고 가볼 일이다. 퇴행의 길이긴 하나 진보와 다르지 않다. 가다가 뒤돌아보면, 죽―으―리―라.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두 남녀. '산'과 '이니'가 그곳으로 간다. 이미 가 있다. 소설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조화'

'길들인다'

'먹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러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더러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더러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무책임하게,

무자비하게,

악랄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