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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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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요코 이야기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by 답설재 2014. 1. 11.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요코 이야기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윤현주 옮김, 문학동네 2005

 

 

 

 

 

 

 

 

옮긴이의 말에 소개된 줄거리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이기도 한 요코는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은 전쟁을 경험합니다. 전쟁을 체험해보지 않는 저나 여러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들을 만나지요. 생명의 위협, 굶주림, 공포와 충격으로 미쳐버리는 사람들, 인권의 짓밟힘, 허물어지는 윤리 의식 등을 말입니다. 게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간 자기 나라, 일본에서조차 요코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습니다. 그러나 요코 가족은 자기들에게 닥쳐온 이 모든 고난을 놀랄 만한 힘으로 이겨냅니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는 생명의 존엄함과 사랑,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라는 걸 말입니다.

 

 

 

다음에는 '아, 필자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썼구나!' 싶은 부분입니다. 몇 군데 눈에 띈 곳을 옮깁니다.

 

드디어 어머니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진주만을 공격한 건 하나도 잘한 짓이 아니야. 우리 정부가 내렸던 이 결정에는 아버지도 동의하지 않으신다."

어머니의 음성이 점점 더 떨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있잖니. 평화라든지 사랑, 행복 같은 것들 말이다. 남편이나 아들을 잃느니, 차라리 우리나라가 지는 게 낫겠다!"

마침내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40)

 

남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거기서부터 내내 걸어왔단 말이오?"

어머니가 기차에서 벌어진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그 사람도 경계를 풀고 자기 소개를 했다. 가까운 마을에서 이발소를 하며 살아온 이야기, 더이상은 살 수가 없어 조선인 친구에게 이발소를 팔았고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선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뒤로는 편안하게 잠들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129~130)

 

오 주째 서울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겁에 질려 창백한 얼굴로 달려온 언니가 소리쳤다.

"서울을 떠나야겠어요, 어머니. 조선 남자들 여러 명이 숲으로 여자들을 끌고 갔어요. 거기서 한 여자애가 강간당하는 걸 봤어요."

언니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일본말로 막 고함을 질렀어요. 제발 좀 도와달라고요. 너무 무서워요, 어머니. 머리카락을 좀더 짧게 깎아야겠어요."(144~145)

 

…… 세상이 너무 야속하다!

심통이 난 내가 있는 대로 부아를 터뜨렸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지옥이랑 다를 게 뭐야?"

언니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래…… 다시는, 우리가 사는 동안 다시는 전쟁이 없기만을 바라는 수밖에."(262~263)

 

아주머니가 오빠의 몸을 녹이기 위해 팔다리를 주무르고 가슴팍을 문질렀다. …(중략)…

"이름이 뭐라고 되어 있니? 한번 읽어봐라."

아저씨가 말했다.

"가와시마라고 씌어 있어요."

희왕과 희초는 일본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예금통장과 배낭 속의 물건들을 모조리 숨겼다. 혹시나 인민군이 들이닥쳐 집 안을 뒤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중략)…

학교에서 돌아온 희초는 오빠를 보자 대뜸 "형은 이제부터 우리 사촌이 되는 거예요." 하고 반갑게 말하기도 했다.(271~27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미 2007년 9월에 「요코이야기 : 우리가 제대로 속을 차리는 길」이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문: 다음 중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입장을 바르게 나타낸 것은? ① 가해국, ② 피해국, ③ 가해국이자 피해국, ④ 모르겠다」

“이걸 문제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물었을 때와 일본 학생들에게 물었을 때 그 답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한 일본 여성이 쓴 책이 미국의 여러 중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데,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한국인들이 귀국길의 일본인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등 온갖 폭력을 자행했다고 그리면서도 일제의 만행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서 한국계 학부모,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는 일제 고관의 딸 요코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한국을 빠져나가 일본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줄거리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요코 이야기’로 번역되었다.

…(중략)…

그동안 논의 경과를 살펴보면 일부 평론가는 “별것 아닌 걸 가지고 과민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읽을 만하다”고 했다. 그들은 이 일로 분통이 터지는 측으로부터 이러한 비판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일본은 수상 아베 신조까지도 ‘종군위안부는 검정되지 않았으며,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도 우리는 어쨌든 인도주의로 가나!“

다음으로, 작가 요코는 우선 이러한 공격부터 받을 것 같다. “당신은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 와 살았으며, 당신의 선친은 어떻게 하여 남의 나라에서 고관을 지냈는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각국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역사 인식을 비판한 것을 두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일본 총리가 "여학생의 고자질 같다"고 비난했답니다(조선일보, 2014.1.11. A14면 등). 우리나라 대통령은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 11월 한·EU 정상회담 등에서 "(한·일 정상회담 이전에) 일본 지도자들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노다 전 총리는 10일자 마이니치(每日)신문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근 여러 정상회담에서 중국 견제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한국 정상이 미국·유럽에서 여학생처럼 고자질 외교를 하며 일본을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인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총리(아베 신조)라는 사람이 나서서 "침략의 정의는 내려진 적이 없다"고 하고, 종군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고, 마침내 A급 전범의 위패를 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등 우리로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싶은데, 이제는 전직 총리가 나서서 이웃 나라 대통령을 여학생에 비유한 것입니다.

 

마음대로 쓴다면, "그럴 줄 몰랐는가? 바보 아닌가?" "고자질은 본래 무슨 좋지 못한 비밀이나 잘못을 일러바치는 것이니 일본은 무슨 좋지 못한 비밀이나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그걸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럼 그런 나라들은 일본의 그 비밀이나 잘못을 알아채지 못할 줄 알았는가?" …… 등등 '노다' 수준의 질문을 해대고 싶지만, 그것도 일단 결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일본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그 인식 수준에서 "고자질은 여학생, 혹은 여성이나 하는 짓"이란 한심한 상태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도무지 일본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마땅한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 소설 『요코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 일본인들의 만행은 물러가는 자신들을 괴롭힌 일부 조선인들의 행동은 이야기꺼리가 되지 않을 정도여서 도저히 그 참상을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는 것 등 우리 한국의 입장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먼저 이런 점을 헤아려서 함께 기술했다면 미국의 우리 교포들이 분노하고 항의를 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 소설을 감명 깊에 읽고 오히려 고마워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에 썼던 칼럼 <요코 이야기 : 우리가 제대로 속을 차리는 길>의 마무리 부분을 옮깁니다. 제 생각에는 그동안 아무런 변함이 없고 게다가 일본과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 주장대로 하는 것만이 일본이 우리와 함께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길이며, 우선 그런 높은 가치관을 갖기 이전에 세계시민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그 기념비를 이렇게 고쳐 쓰도록 권하고 싶다.

"다시는 남의 나라를 괴롭히지 말자! 이것을 잊어버리면 결국 우리 일본도 괴롭게 된다. 원자폭탄이 공연히 떨어진 것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져야 일본의 평화, 인류의 평화가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 권유를 받아들이겠는가. 그것은, 다만 우리가 우리나라를 강한 나라가 되게 해야 가능한 일이 된다. 그리고 진실로 강한 나라는, 좀 답답한 느낌을 주는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교육 이외의 방법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을 잘 하는 것이 우리가 제대로 속을 차리는 일이다. '요코 이야기'에서 더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도 얼른 교과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해야 한다. 미국은 그런 소설을 왜 읽히겠는가.

 

 

 

 

 

 

졸고 <요코 이야기 : 우리가 제대로 속을 차리는 길> 바로가기 http://blog.daum.net/blueletter01/138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