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 Unpopular Essays 1950』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Unpopular Essays. 1950. London: George Allen & Unwin
Ⅰ
실제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기가 어렵고 싫어서 그냥 갖다 대듯 하면, 40여 년 전에 저승으로 간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1872~1970)은,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이 수가 거의 같은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증오하고 상대편의 목을 조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수가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편은 다른 편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수가 절반을 약간 넘는 편 또한 승리를 거둔 순간 양편 사이의 반목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겸양을 보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331)
하필이면 이런 상황과 그 전개에 대한 그의 가정이 끔찍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쨌든 그는 이렇게 전제했습니다.
그가 믿어야 하는 것은 다수결에 따른 결정이 현명하든 우매하든 간에 과반수가 다른 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그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념이다. 또한 이 신념은 이른바 '생활인의 지혜' 같은 신비로운 개념이 아니라, 자의적 폭력에 의한 지배를 법에 의한 지배로 대체하기 위한 가장 실용적인 도구로서 믿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가 언제 어디서나 최선의 체제라고 믿을 필요도 없다.(330)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모두가 한 가족이며, 한 식구의 불행 위에 다른 식구의 행복을 든든하게 세우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즉시 깨달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어쩌면, 나로서는 감히 바랄 수 없는 바이지만, 수소폭탄이 인류를 공포에 빠뜨려 건전한 정신과 관용을 찾게 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수소폭탄의 발명자들에게 축복을 빌어줄 이유가 생기는 셈"이라고 무거운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332)
러셀의 이 경고는, 아무래도 오늘날 어느 나라 상황을 예견하거나 한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고, 당시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도 하고 싶지 않으므로 이쯤에서 그만두겠습니다.
Ⅱ
자신이 좀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순진했다고 해야 할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세상이 어지럽다고 느껴지거나 '어떻게 이런 녀석들이 득실대는가!' 싶거나 합리적이지 않거나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이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1940년대에 비해 오늘날의 이 세상이 도덕적으로는 결코 더 나아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에 대해 참으로 의아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드디어 이런 세상은 그나마 정상이라는 것,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무언가 달라지고 나아지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 세상은 본래 그리 깨끗한 것이 아니며 그게 '정상'이니까 너무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러셀은 "오늘날 인간이 맞닥뜨린 최악의 적은 바로 인간"이라고 지적하고, "이단자를 공개 화형에 처하던 시절,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는 이따금씩 이단자들 가운데 특별히 모범적인 변론을 한 사람에게는 불을 붙이기 전에 미리 목을 졸라 숨을 끊어 주는 은혜를 베풀곤 했는데, 이러한 경우 군중이 어찌나 사납게 분노했던지, 당국은 회개한 이단자를 집단으로 폭행하고 직접 불태워 죽이려는 군중을 막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건 이미 옛날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공개 화형 제도가 없어졌다 해도 그 순간 '인간이라는 동물들'이 돌연 천사들 가까이 갈 수 있을 만큼 착해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한데다가 러셀은 그까짓 이의(異意) 제기 정도는 하잘 것도 없다는 듯 다음과 같이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정말 인간이란 그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
사실 무미건조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군중으로서는 불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희생자를 구경하는 일이야말로 으뜸가는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이단자를 화형에 처하는 일이 옳은 행위라는 일반적인 믿음에 이러한 즐거움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똑같은 논리가 전쟁에도 적용된다.(299)
Ⅲ
쑥스럽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책을 읽는 재미,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는 것을 털어놓고 싶습니다.
한번은 어느 출판사에 들렀다가 나올 때 읽을 만한 책을 한 권 집어드는 걸 지켜보던 보던 사람이 "이제 책에 대한 욕심을 버리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해서 일순간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그게 그런 건가?' 싶은 생각을 더러 하기는 해도, 아예 눈이 망가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그래도 책을 읽겠다는 마음을 버리지는 않을 작정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고 다행한 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되는 사례는 수두룩하지만 두어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문명은 한편으로 지식의 문제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정서의 문제이다. 이때 지식이 문제가 되는 이상, 사람은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이 세계와 연관 지어 생각할 때 그 자신과 눈앞의 환경이 사소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244) …(중략)… 문명인이란 자신이 칭찬할 수 없는 경우를 마주할 때 비난하기보다 이해하기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다.(245)
이런 문장을 설명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자칫하면 웃음꺼리가 될 이야기를 덧붙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말을 꺼내거나 나의 견해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울컥' 하는 마음을 느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을 그 일들에 대한 명쾌한 해석의 근거로 삼는 일만 하기로 했습니다. 단 한 마디로 나로서는 씻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며, 그러한 경우에 그 울컥하는 마음을 드러내어 큰소리로 반박하거나, 예상보다 심하게 신랄한 비판을 꺼냄으로써 단칼에 상대방의 의견을 묵살하려 하거나, 자신의 연령이나 얄팍한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억누르는 짓을 저질러온 일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정말로 한심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러셀은 "위대한 스승이 되려면"이라는 글에서 그렇게 쓰고, "이 모든 것은 교사의 머리와 가슴 속에 반드시 자리 잡아야 하며, 머리와 가슴이 모두 충만한 교사라면 수업을 통해 자기 학생들에게도 그것들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밑줄친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따뜻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또 스스로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학생들에게 불어넣고자 하는 진정한 욕구가 없는 사람은 결코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의 태도는 선동가를 연상케 한다. …(중략)… 그는 학생들이 지닌 고결한 힘을 모조리 파괴하고 그 자리에 질투와 파괴적 성향, 잔인성을 심어 놓는다.(246)
교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 앞에서 넓은 지평을 펼쳐 주고 거기서 즐거울 뿐 아니라 유용하기도 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247)
Ⅳ
한 가지는 '철학' 이야기입니다(65~67). 아마도 일찍이 이 책을 읽었다면 분명히 철학을 공부했을 것 같습니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러셀은 먼저, 인류가 문명사회를 이룩하고 나서부터 부딪힌 문제를 '자연의 힘을 지배하는 것에 관한 문제'와 '우리가 자연의 힘에 대해 지닌 지배력을 어떻게 해야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나누고, 후자의 문제에는 민주주의 대 독재주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세계 정부 대 세계적 무질서, 사색의 자유 대 권위주의적 독선 같은 민감한 논의들이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시험실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논쟁에 결정적인 지침을 제공하지 못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더 큰 행복이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음은 뻔한 사실"이라고 단정하고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열거했습니다. 가령 현대에 접어든 후에는 과학적 재능과 숙련된 기술이 하나가 되어 원자폭탄을 만들었고, 그 결과로 모두들 공포에 빠져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한다면서 "기나긴 인류사의 서로 다른 여러 시대에서 뽑은 이러한 사례들은 기술이 아닌 어떤 것, 어쩌면 '지혜'라고 할 만한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1 정말이지 이 짦은 한 마디를 읽고는, 무엇을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고, 무엇이 더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았으며, 더 읽고 싶은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고, 무엇이 더 궁금하지도 않을 듯했습니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도 보였습니다.(69)
학교에서는 앵글로색슨족의 역대 왕들을 외우게 하는 대신 학생들이 세계사의 개요을 알 수 있도록 고대 이집트의 사제들과 바빌로니아의 왕들과 아테네의 개혁가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이런저런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 그 사이의 여러 시대에는 어떤 희망과 절망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도록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철학은 한편으로 세계의 구조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최선의 인생관을 발견하고 설파하고자 한다.
Ⅴ
러셀 자신은 이 책의 '여는 글'에서 그의 책 『인간의 지식』의 서문을 썼던 경험을 예로 들고, "독자들을 속여 책을 사게 했다"는 "비난을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그 여는 글의 후반부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고백하건대 이 책에는 보기 드믈게 멍청한 열 살배기 아이라면 좀 어렵게 느낄 만한 문장이 몇 군데 들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다음의 에세이들이 인기를 끌 만한 글이라고 하기에는 힘들 듯 싶다. 그렇다면 '인기 없는 에세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밖에.
멍청한 열 살 배기라면 좀 어렵게 느낄 만한?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다면 세상에는 멍청한 열살배기보다 못한 어른이 수두룩할 것 같습니다. 우선 나는 그 대표자가 될 만하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까칠한 러셀'이 쓴 이 책은,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목차입니다.
1. 이 모든 게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
2. 초보자를 위한 철학
3. 인류의 미래
4. 철학자들의 은밀한 속셈
5. 억압받는 자들의 미덕
6. 현대적 정신에 관하여
7.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8. 위대한 스승이 되려면
9. 인류에 도움이 된 관념들
10. 인류에 해를 끼친 관념들
11. 내가 만난 유명인들
12. 스스로 쓴 부고(1937년)
Ⅵ
이 책이 재미있다는 증거가 될 만한 부분 중에서 간단한 문장을 골라봤습니다.
철학은 한편으로 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와 가깝게 엮여 있었다. …(중략)… 어쩌면 이런 농담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모르는 것이다." 진실이라고 하기에 손색없는 농담이지만, 한 가지 덧붙여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엄밀한 과학적 지식의 소중한 전제였다는 점이다.(70~71)
우리는 교과서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배우지만, 그럼에도 그 학설은 아직 종교와 도덕의 벽을 허물지 못했고 심지어 점성술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는 데에도 성공하지 못했다.(167)
예를 들자면, 어떤 수녀들은 늘 목욕 가운을 입고 목욕을 한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세상에, 하느님이 계신 걸 잊으셨군요!" 그들은 분명 신성한 하느님을 관음증 환자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분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욕실 벽을 꿰뚫어 보시는데 정작 목욕 가운 한 장으로 그 시선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이러한 견해는 내게 흥미로운 충격을 던져 준다.(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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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을 의미하는 영어 philosophy(필로소피)의 어원인 그리스어 '필로소피아'는 '필로스'(사랑하다)와 '소피아'(지혜 또는 지식)의 합성어이다.(본문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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