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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데이비드 보드니스 『E=mc²』

by 답설재 2013. 12. 15.

데이비드 보드니스 『E=mc²』

김민희 옮김, 생각의나무 2003

 

 

 

 

 

 

 

 

 

"E=mc²이 뭐죠?"

그러면 상대방은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더러 대답해 주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이잖아요? 원자폭탄, 수소폭탄이 보여주듯 질량은 에너지와 별개가 아니라는……"

 

그 정도의 대답을 들으면 궁금증은 구체화되고, 이 공식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친절한 사람은 훨씬 적극적인 설명을 시작합니다.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만큼에 비례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질량 보존의 법칙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이로써 태양이 어떻게 그 엄청난 에너지를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질량과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상호 간에 변환이 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원자폭탄과 원자력이 개발되었지요."

 

그러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더러 "아하!"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진리'를 깨달았다는 탄성이 아니라 1:1 강의를 해주는 상대방에 대한 호의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그런 과목을 배웠는지도 불분명하지만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설명을 듣던 그 상태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수준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이해하지는 못했더라도 공식은 외워야 했고,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를 의미하는 기호라는 걸 암기하면 낭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도 않고 상대방이 "왜 내가 설명하는 것을 기록하지 않느냐?"라거나 "설명해 준 것을 제대로 암기했는지 보겠다!"고 나서지도 않아서 그것만으로는 참 다행한 일인데도 내심으로는 '내가 이렇게 한심한가!' 싶어지는 것입니다.

 

 

 

 

― 도대체 E=mc²이 무엇인가?

― 이 공식의 의미를 이해하고 말 것인가, 그냥 묵살해버리고 말 것인가?

 

이것이 문제라면 나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걸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고, 그걸 단시간에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무슨 프로그램 같은 것도 없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과학이나 과학교육을 전공하지도 않은 주제에 이 공식을 완전히 이해해서 무슨 큰 일이라도 벌여보겠다는 양 E=mc²에 관한 또다른 책을 사서 읽는 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 기로에 섰다?

―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볼까, 읽어보나마자 마찬가지니까 그만둘까?

구체적으로는 그게 문제이기도 합니다.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없지는 않습니다. 이 책의 머리말은 이런 일화 소개로 시작됩니다.

 

《프리미어》라는 잡지에서 여배우 카메론 디아즈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자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디아즈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말했다. 디아즈의 대답은 이랬다. "글쎄요, E=mc²이 도대체 무슨 뜻이죠?" 그리고는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디아즈는 "농담이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구나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이미 들은 적이 있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화도 소개됩니다.

 

1921년 채임 바이츠만은 아인슈타인과 함께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장기간의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을 끝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날마다 자신의 이론을 내게 설명해주었는데, 내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이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배우들이 뭘 알겠느냐?"고 멋대로 깔보는 사람들도 흔하긴 하지만 그건 착각이거나 유명인에 비해 자신의 지명도가 너무 형편없이 낮은데 대한 쓸데없는 불만일 수도 있고, 더구나 저 카메론 디아즈의 물리학 상식이 우리보다 나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치더라도, 두 번째 일화에 등장하는 채임 바이츠만이라는 사람은,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었다면, 그 채임 바이츠만이 여배우 카메론 디아즈의 경우와 달리 E=mc²에 관한 한 세상에서 가장 특출한 강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그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직접!', 그것도 "장기간 여행을 하며 설명을 듣고도" 저렇게 실토한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뿐만 아니라, 이 공식을 모르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자신을 위로해 주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다음은 이 책의 독후감을 쓰게 되면 인용하겠다고 준비한 부분입니다.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들은 태우거나 압축하거나 자르거나 날카롭게 연마할 수는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른 물질과 결합하거나 재조합하며 떠돌아다닐 뿐이다. 그렇지만 질량의 총량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이 내용은 나중에 패러데이가 발견한 것,1 즉 에너지 보존의 개념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59)

 

양성자 실험에서 우리가 머릿속에서 그려보았던 우주선의 경우에서 보듯 그 안에 주입된 여분의 에너지는 질량으로 변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보여주는 그대로다. 곧, E는 m이 되고, m은 E가 될 수 있다.

이로써 왜 c가 그 공식 안에 있는지 설명이 되었을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보듯, 빛의 속도에 도달하려고 애쓸 때 에너지와 질량 사이의 관련성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숫자 c는 그 관련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순한 환산 인자다.(82)

 

우라늄 핵은 무척 큰데다 양성자들을 서로 떨어져 있게 만드는 중성자들이 아주 많이 채워져 있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여분의 중성자를 집어넣기 전에 이미 불안정한 상태라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우라늄 핵은 마치 양성자들처럼 떨어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터지기 직전의 물방울 같을 것이다. 바로 그때 과다하게 채워진 핵 속으로 중성자 하나를 더 주입한다면? (152)

 

사라진 질량은 어디로 갔을까? 그것은 정말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입자들이 고속 탈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변한 것이다. 공식대로 그 사라진 질량이 c²의 막강한 도움을 받아 질량의 450,000,000,000,000,000배(mph²의 단위로)에 달하는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156)

 

 

 

 

버트런드 러셀은 '내가 만난 유명인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2

 

최고의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의 경우에는 위대한 지성과 아이 같은 단순함이 결합한 결과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서 '단순함'은 명민함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어떠한 견해나 행동에 대해 세속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내가 만난 과학자들 가운데 이러한 특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좋은 것이든 실망스런 것이든 그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탐구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에게는 행운이었다. 특허국에서라면 대단치 않는 학술 논문들을 양산하기 위해 수고하지 않아도 되었고(그는 학술 논문들을 일컬어 오직 강한 자만이 저항할 수 있는 천박함의 유혹이라고 묘사했다), 오히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고 연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전폭적인 신뢰는 아인슈타인의 자신감을 크게 북돋아주었다.(124~125)

 

처음에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이해했으므로, 그의 이론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즉 탁월함에 대한 열망이나 안개에 싸인 비범한 지식의 샘에서 나온 학문에 대한 열정―은 곧 아인슈타인 고유의 이미지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이 슬픈 듯 생각에 잠긴 독특한 표정의 아인슈타인사진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중략)…

아인슈타인은 공개 발표를 한 지 2주 후에는 런던의 《타임즈》에 이렇게 썼다.

"독일 사람들은 나를 자랑스러운 독일인이라고 부르고 영국 사람들은 스위스 국적의 유대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만약 나의 예측이 거짓으로 판명되었다면, 독일 사람들은 나를 스위스 국적의 유대인이라고 했을 것이고, 영국 사람들은 독일인이라고 불렀을 것이다."(286~287)

 

밀레바 마리치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나 그들의 결혼이 깨진 순간까지도 남편을 존경했다. 아인슈타인은 언젠가 자신이 노벨상을 받게 된다면 상금을 위자료로 주겠다고 약속했고, 밀레바는 그가 노벨상을 받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1922년 정말로 노벨상을 받았을 때 아인슈타인은 약속대로 상금을 밀레바에게 보내주었다. 이때 그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때까지도 상대성 이론이 맞는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과 헤어진 후 재혼하지 않았고, 마지막 기말고사를 다시 치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평생 그럴 듯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그녀의 학점은 교직을 얻기에는 약간 부족했다). 큰아들은 버클리 대학에서 공학 교수가 되었지만, 둘째 아들은 평생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다. 밀레바는 둘째 아들을 돌보느라 점점 기력을 잃어갔다. 심한 우울증을 앓던 밀레바는 1948년 취리히에서 혼자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297)

 

 

 

 

이야기를 엮지 않고 E=mc², 아인슈타인의 인간성에 관한 내용을 인용만 해놓는 것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독자가 그 내용을 설명하는 우스운 일을 피하고 싶어서입니다.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교사나 강사를 만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보기에 따라서는 잘 이해한 것을 설명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해도 좋을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었고, 그것은 "교육다운 교육을 하자!"는 것입니다.

 

지난여름, 그러니까 7월 중순의 어느 날, EBS의 '장학퀴즈'를 보고 있었습니다. 가령 서울올림픽대회가 열린 해라면 <1988>이라는 숫자를 알아맞춰야 하는 식으로 네 가지의 숫자를 더해서 답하는 문제도 출제되었는데, 어느 여학생이 "한 근은 40그램"이라고 했습니다. 미터법이 일반화되고 있는 걸 의식했던지 사회자가 "쇠고기 한 근이라고 이야기할 때의 그 한 근"이라는 걸 설명하고 있는데도 그 고등학교 학생은 그렇게 답한 것입니다.

 

다행히 그 여학생은 "앞으로 쇠고기도 좀 사먹겠다"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 여학생이 쇠고기를 사먹지 않아서 몰랐다기보다는 우리 교육이 잘못되고 있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장학퀴즈에 나오는 학생이라면 성적도 어느 정도는 될 것이 분명하고 더구나 "상식적인 질문"에 대한 예상문제도 풀어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이 잘못된 것이지 그 여학생이 한심한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학 교과서에서는 이미 초등학교에서 도량형 단위를 충분히 다루고 있어서 정상적인 교육을 한다면 고등학생 정도면 짐작으로도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교육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니까 E=mc²에 대해서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해 놓았는데도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는, 한심한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E=mc²이라면 너무 어려운 주제입니까? 하필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이야기하느냐고 하겠습니까?

무엇인들 그렇지 않습니까?

쇠고기 한 근은 40그램이라는 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될 리가 없으니까 교육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물리를 전공하지 않으려면 E=mc²에서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라는 것만 알아도 충분합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가르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노벨물리학상도 마찬가지다!"

 

한때 역사에 관한 책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읽은 것들의 내용(인과관계 등)에 대해 흔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제대로 배웠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적응아로 홀대받은 아인슈타인이 뮌헨의 루이트폴트 김나지움에서 교사에 대한 절대 복종과 암송,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껴 교사를 '중위(中尉)'에 비유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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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패러데이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당시는 아직 에너지 개념 도입 초기여서 오히려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는데, 1821년(아인슈타인이 태어나기 50여 년 전), 전기 엔진의 모체 발명에 관한 공식 연구 발표를 마치고 런던 왕립학회 회원이 된 후, 영국 수상이 패러데이의 발명품을 보고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패러데이는 『수상 각하, 나중에 이것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게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도 소개되고 있습니다(35).
2. 버트런드 러셀, 장성주 옮김, 『인기 없는 에세이 Unpopular Essays』, 생각의나무, 2013. 337~338쪽.
3.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홍수현·구자현 역, 『나의 세계관』, 중심, 2003, 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