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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시오노 나나미 『살로메 유모 이야기』

by 답설재 2013. 11. 3.

시오노 나나미 『살로메 유모 이야기』

(백은실 옮김, 한길사, 2004)

 

 

 

 

 

 

 

 

 

 

 

목이 잘린 사람의 머리를 쟁반에 받쳐들고 있는 여인, 이 끔찍한 장면 속에서도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저 기이한 여인이 등장하는 그림의 제목은, 「살로메와 은쟁반 위의 요한 세자의 머리 Salome with the Head of the Baptist」, 저 여인이 바로 이야기 속의 팜므파탈(femme fatale, 요부형 여인) 살로메입니다.

 

이 그림들은 캐나다의 내 친구 블로거 Helen of Troy의 『Welcome to Wild Rose Country』, 「슈트라우스 작의 오페라 살로메 Salome by Richard Strauss」에 실린 것들입니다.

 

Andrea Solari(1460-1524), 「살로메와 요한 세자의 머리 Salome with the Head of St. John the Baptist」

Onorio Marinari, 「살로메와 요한 세자의 머리」

 

『Welcome to Wild Rose Country』 직접 방문하기

http://blog.daum.net/nh_kim12/17200566

 

 

 

 

서기 30년 경, 헤롯왕은 동생을 죽이고 제수(弟嫂) 헤로디아를 아내로 만들었습니다. 저 그림의 살로메는 그 헤로디아의 딸이니까 헤롯왕의 조카입니다.

 

헤롯은 "곧 구세주가 온다"는 예언자 요한에게 두려움을 느껴 그를 깊은 우물에 가두었는데, 살로메가 헤롯 몰래 요한을 유혹해 봤지만 요한은 단호하기만 합니다.

 

생일을 맞이한 헤롯은, 소녀 살로메에게 춤을 추게 하고는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살로메는 매혹적인 자태로 '일곱 색깔의 베일을 입고 차례로 벗는 춤'(seven veils dance)을 추고는 요한의 목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헤로디아가 그렇게 시켰습니다. 요한의 목이 은쟁반에 담겨 오자, 살로메는 그 목에 키스를 했고, 헤롯은 그녀를 죽여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도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살로메의 춤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38~39쪽)

 

때마침 달빛이 환하게 내리비치는 연회장 중앙에 선 공주님은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도저히 열다섯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품이 넘치는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기세에 압도된 쪽은 남자들이었습니다. 악사들도 얼떨결에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취한 듯한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춤사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음악이 한 곡조 끝날 때마다 얇은 비단이 너풀거리며 춤을 추듯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금색 베일이, 이어 초록색, 노란색, 감색, 빨간색도 살로메님의 흰 팔이 크게 원을 그릴 때마다 공중에서 나부끼다 바닥에 살포시 떨어져 커다란 꽃송이가 무희의 주변에서 활짝 피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은색 베일이 너풀거린 다음 살로메 님의 하얀 맨살을 덮고 있는 것은 마지막 남은 흰색 베일뿐이었습니다. 이 광경은 달빛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등불을 끈 넓은 방 한가운데에서 마치 하얀 잠자리 한 마리가 춤을 추는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공주님은 춤을 마치고는 그대로 헤로데 왕 앞으로 나가셨습니다. 왕은 찬탄을 금치 못하는 로마인들을 보고 비로소 안도한 듯 온화한 목소리로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바라느냐? 에메랄드? 아니면 산더미 같은 금화?"

살로메 님은 조용히 대답하셨습니다.

"요한의 목을 주세요."

 

 

 

 

 

 

 

 

시오노 나나미는 이 이야기를 살로메의 유모가 전하는 형식으로 썼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공주님에 대해서는 이야깃거리가 참 많습니다. 이분처럼 잘못된 소문으로 분분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저는 뭐든지 알고 있습니다. 공주님이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곁에서 보살펴드리고 있었으니까요.(27쪽)

 

이 책에는 또 「오디세우스의 정숙한 아내」「단테 아내의 탄식」「성 프란체스코 어머니」「유다 어머니」「칼리굴라 황제의 말(馬)」「알렉산드로스 대왕 노예 이야기」「스승이 본 브루투스」「그리스도의 동생」「네로 황제의 쌍둥이 형」「지옥의 향연 1」「지옥의 향연 2」 등 모두 열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제목만 보고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이야기들은 등장인물들에 대해 점잖은, 혹은 고전적인 내용으로 엮인 책만 읽은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짓궂고 고약한 면이 있습니다. 가령 오디세우스의 아내는 "20년! 세상에, 20년이나 됩니다. 제 남편 오디세우스가 집을 떠나 있던 기간 말입니다."로 시작하여 남편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음으로써 다른 이야기 속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이, 문학이, 좋고 재미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말이겠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자꾸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다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정말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싶은 것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아내라고 해서 무슨 성화(聖畵) 속의 여인이어야 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 끝없는 기다림을 노래로만 채울 수는 없었을 것 아닙니까?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을 읽어보면 우리는 그런 경우의 그 여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리고 예술가는, 어떻게 그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재주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까? 저 살로메 이야기만 해도 그 원전인 마태복음, 마가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단합니다. 그걸 가령 오스카 와일드나 시오노 나나미나 우리가 '꼴딱' 넘어갈 수밖에 없는 무슨 생생한 역사적 사실처럼 그려내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4장 3~12절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 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마가복음 6장 17~29절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그가 나가서 그 어미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미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니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미에게 주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만약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저런 작가가 있어 누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물을 때, "나를 가르친 그 선생님께 물어봐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교육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로서는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나 같으면 다른 일로는 몰라도 당장 좀 으스대며 돌아다닐 것 같은데, 알베르 카뮈는 나중에 그의 스승을 두 명이나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그 점에서는 가령 과학도 마찬가지인데,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는 특별히 학교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전 세계의 교육자들을 대신해서 제가 좀 씁쓸했습니다. "잘난 척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