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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왜 책을 읽는가』

by 답설재 2013. 10. 1.

 

 

 

 

 

표지 그림에 끌려서 샀습니다.

 

모두들 열중하고 있고, 한 남성이 앞을 바라봅니다. 오만함이 느껴집니다. 방해 받았다면 그럴 수밖에. 지금 읽고 있던 곳의 책갈피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좀 못마땅한 듯한 표정입니다.

'뭐야, 지금?'

저 사람에게 책을 읽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모두들 혼자입니다.

그렇게 보면, 혼자 하는 일로서 독서만큼 적절하고, 비난 받을 일 없고("책이나 보면 뭐가 나온다더냐?"는 비난을 받은 사람이 없진 않지만), 마음 편하고, 자유롭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고("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이 표지를 여러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표지의 이 말은 탐탁지 않습니다. '무슨, 그렇게, 이기적인……' 독서가 이기적인 행위라는 대답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장 이기적인 독서'란 전혀 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아마 이 말에 유혹을 느끼는 독자가 있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책의 이름이 좋지 않습니까? 『왜 책을 읽는가』.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숙제 같은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75가지로 대답한 책입니다.

 

- 글을 배우려는 욕망이 독서의 문을 열다

- 아이를 유순하게 길들이는 안정된 독서란 없다

- 독서만큼 이기적인 행위가 있을까? …………

 

 

 

 

75가지의 그 대답이 자주 잠언 같은 느낌을 주고,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독서는 미덕이 아니다. …(중략)… 고결한 행동을 공공연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반감을 가지게 마련이다.(100)

 

글쓰기는 정숙하지 못한 성행위다. 생제르맹 거리에는 매일매일 나체로 활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체포되지도 않는 그들은 바로 작가이며, 독자는 그들의 공모자다.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건 쉽지 않지만, 그만큼 달콤한 일이다. …(후략)…(101)

 

독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심각한 행위다. 심지어 나는 책을 읽는 이유가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이들, 정말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언제나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내겐 늘 충격적이었다. …(후략)…(103)

 

독서를 한다고 교양인이 되지는 않는다.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 미개한 자나 무식한 자, 가장 불완전한 자의 모습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느낀다. …(후략)…

 

 

 

 

어떤 내용의 책인지 일일이 예를 들기보다는 독서에 대한 생각의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어 있습니다. 짧은 글이어서 그대로 다 옮겼습니다.

 

<그들의 독서를 엿보다>

질문 : 당신은 감옥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빅토르 엠마누엘 드 사부아(이탈리아 마지막 국왕의 아들) : 댄 브라운의 『디지털 포트리스Digital Fortress』(탈옥 소재의 소설)를 읽었지요.

- 「ChiWho」, 2006년 8월 16일(239쪽)

 

<어떻게 읽을까?>

나의 대답은?

체계적으로 읽는다! 열정은 가장 뛰어난 이성이다.(256쪽)

 

 

 

 

독서와 무관하진 않지만 톡톡 쏘는 내용들이 가시처럼 박혀서 때로는 섬찟하고 통쾌할 때도 있습니다.

 

대담에 임하는 사람은 박식하되 현학적이어서는 안 되고, 정중하되 비굴해서는 안 되며, 호기심은 가지되 상스러워서는 안 된다.(232)

 

말을 잘하는 재능은 자칫 치명적일 수 있다. 연설에 타고난 재능이 있던 에즈라 파운드 역시 말을 함부로 내뱉은 실수 때문에 유럽이 나치에서 해방되자 감옥에 수감되는 불상사를 맛보았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경솔함이다. 생각을 표현할 때는 신중하기를!(233)

 

<작가의 진정한 상속인은 독자>라는 이야기에서 대학교수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은 아무래도 좀 심한 것입니까, 아니면 심각한 것입니까, 시원한 것입니까?

 

그들이 칙칙한 잿빛 건물 안에서 찍어내는 얄팍한 책들은 그마저도 박사 과정 학생들의 짜깁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연구 성과를 쏙쏙 빨아들이면서 오직 자기 파벌을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파벌 사람들의 책만을 참조한다. 통속적인데다가 참신한 아이디어나 재능도 없으며, 매너리즘에 빠지기 일쑤다. 게다가 자발적인 독자가 하나도 없다. 학생들에게는 억지로 읽히는 그들의 저서는 수업 시간의 참고문헌으로밖에 쓸모가 없다. 결국 학생들은 그들의 책을 경멸할 것이다. 물론 스무 살의 젊은이들이 그들과 똑같아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후략)…(238)

 

이 '언급'은 작정하고 쓴 듯 앞뒤에 더 있지만, '이 말만!' '여기까지만!' 하다가 이렇게 길게 옮겼습니다.

 

 

 

 

결론이라고 해도 좋을 75번째의 이야기 <책, 그리고 독서에 관한 사색>은 그야말로 백미(白眉)라도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책들이 있다."

"책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

"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독서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점을 모른다."

"책을 읽으며 나아갈 때 나는 죽음과 경주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실패했지만 결코 굴복하지는 않았다."

"종이책이 사라질 때, 이를 씁쓸해하는 사람들은 '그것 봐! 내가 그럴 것이라고 장담했잖아!'라며 우쭐댄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어쩔 건데?'"

 

 

 

 

이만 하면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나는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샤를 단치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종이책이 사라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이보다 더 암담한 일이 있다. 정보화된 미래는 권력자들에게 더 충실히 봉사할 것이고, 그럴수록 인류의 정신은 더욱 조그만 상자 안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필요한 더 많은 도서관들은 태블릿 PC속에 다 들어갈 것이고 스크린 위 아주 작은 아이콘 하나로 축소될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소멸하리라!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으면 인류는 자연으로 되돌아가 짐승들과 함께 살 것이다. 그리고 미개하고 착하고 순한 독재자가 곳곳에 설치된 총천연색 화면들 속에서 미소를 지으리라!(260~261)

 

이 마무리는 바로 그 "미개하고 착하고 순한 독재자가 곳곳에 설치된 총천연색 화면들 속에서 미소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경고이자 권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