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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 (Ⅰ)

by 답설재 2013. 9. 12.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 (Ⅰ)

 

 

 

 

 

  아내와 자식들이 들으면 섭섭해하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아, 저런 사람을 믿고 살았다니!……'

  그렇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실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실을 조금은 수긍해 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줄 다 알고 있었지.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좀 멀찌감치 서서 객관적으로 봐도 그들이 그리 탐욕스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물쭈물할 것 없이 얼른 밝히겠습니다. 나는 돈을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전혀 없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가장 가까이 지내야 하면서도 만날 일이 없어져버린 것이, 내 아내와 자식들에게, 평생 서생(書生)으로 지내고 싶은 운명을 타고난 나를 가리키며 그야말로 호기롭게 묻더랍니다.

  "그렇게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으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만 읽고 있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책에서는 절대로 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 때문입니다. 뭐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소소하지만 오히려 자꾸 책값만 들어갑니다.

 

  다음으로, 출중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그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제대로나 읽고 있다면 왜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 그것이 감히!"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꾸중을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그 '책'이라는 것을 언제까지나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읽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엄습해서 도저히 "그래! 그럼, 이제 그만 읽을게!" 하고 읽던 책을 덮어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세 가지 이유 중 단 한 가지라도 해결된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① "그게 말이나 되니? 왜 안 나와. 책에서는 좋은 것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오지. 두고 봐! 그걸 증명할게."

  ② "그래? 어디 한번 두고 봐! 내가 책을 제대로 읽어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서의 위력을 과시할 날이 곧 올 거야!"

  ③ "그래, 알았어. 이제 그만 읽고 돈 모으는 일에나 힘쓸게."

 

 

 

 

 

 

  책 속에서는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정말로 무슨 수가 날까 기대하며 허송세월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경험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책에서 뭐 조그마한 것이라도 하나 나오는 꼴을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책을 펼칠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책만 읽고 있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그 물음, 비난, 조롱에 대해 "돈보다는 책이 더 낫다"는 치졸하고 허황된 답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누가 한 마디 해달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돈이 책보다 좋다고 해도 좋다. 그렇지만 책이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멸시할 것까지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건 얼마나 오만한 짓인가!"

 

 

 

 

 

 

  저 하늘과 책이 있는 세상!

  요즘 같으면 이 두 가지로도  좋은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