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 (Ⅰ)
아내와 자식들이 들으면 섭섭해하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아, 저런 사람을 믿고 살았다니!……'
그렇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실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실을 조금은 수긍해 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줄 다 알고 있었지.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좀 멀찌감치 서서 객관적으로 봐도 그들이 그리 탐욕스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물쭈물할 것 없이 얼른 밝히겠습니다. 나는 돈을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전혀 없습니다.
♬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가장 가까이 지내야 하면서도 만날 일이 없어져버린 것이, 내 아내와 자식들에게, 평생 서생(書生)으로 지내고 싶은 운명을 타고난 나를 가리키며 그야말로 호기롭게 묻더랍니다.
"그렇게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으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
"책만 읽고 있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책에서는 절대로 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 때문입니다. 뭐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소소하지만 오히려 자꾸 책값만 들어갑니다.
다음으로, 출중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그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제대로나 읽고 있다면 왜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 그것이 감히!"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꾸중을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그 '책'이라는 것을 언제까지나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읽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엄습해서 도저히 "그래! 그럼, 이제 그만 읽을게!" 하고 읽던 책을 덮어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세 가지 이유 중 단 한 가지라도 해결된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① "그게 말이나 되니? 왜 안 나와. 책에서는 좋은 것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오지. 두고 봐! 그걸 증명할게."
② "그래? 어디 한번 두고 봐! 내가 책을 제대로 읽어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서의 위력을 과시할 날이 곧 올 거야!"
③ "그래, 알았어. 이제 그만 읽고 돈 모으는 일에나 힘쓸게."
♬
책 속에서는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정말로 무슨 수가 날까 기대하며 허송세월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경험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책에서 뭐 조그마한 것이라도 하나 나오는 꼴을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책을 펼칠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책만 읽고 있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그 물음, 비난, 조롱에 대해 "돈보다는 책이 더 낫다"는 치졸하고 허황된 답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누가 한 마디 해달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돈이 책보다 좋다고 해도 좋다. 그렇지만 책이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멸시할 것까지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건 얼마나 오만한 짓인가!"
♬
저 하늘과 책이 있는 세상!
요즘 같으면 이 두 가지로도 참 좋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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