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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Ernest Hemingway 『The Old Man and the Sea』

by 답설재 2013. 8. 28.

Ernest Hemingway 『The Old Man and the Sea1

 

 

 

 

 

 

1961년 프랑스 남서부의 타흐부에서 태어났다. 의학교수 집안에서 자란 그는 집안의 권유로 툴루즈 법대에 들어갔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법대 시절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법대는 내게 최고의 학과였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 있었으므로".2

 

복수라도 하듯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의학교수 집안에서 태어나 법대에 입학! 그러나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나서 그 법대를 조롱해 버린 사람.

이게 누군가 하면, 『왜 책을 읽는가』라는 멋진 책을 쓴 샤를 단치Charles Dantizg라는 작가입니다. 1961년에 태어난……3

 

 

 

법대나 그 수준의 대학에 다니지도 못한 입장이라면 이런 방법으로 조롱할 대상도 마땅치 않겠지만, 그 조롱에 설득력이 없을 것도 당연하겠지요. 그건 나의 경우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법대는커녕 대학에 들어가서 멋진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수없이 읽었습니다.

 

저 『노인과 바다』는 수업 시간에 무릎 위에 얹어 놓고 읽었습니다. 샤를 단치의 책에서 저 작가 소개를 읽는 순간 또 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살아오면서 그 생각을 두고두고 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외우라는 것이나 착실히 외웠으면 어떻게 됐을까?'

'내 인생이 변했겠지?'

'책 속에 길이 있다? 무슨 길? 인생을 바꾸는 길? 대학입시에 실패하는 지름길?……'

 

나는 책을 읽어서 대학입시에 실패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은 당연한 결과로 주어진 길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책이나 읽었으므로, 네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는 대학입학시험을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공부시켰는데도 그런 엉뚱한 길을 걸었으므로 한동안 집에서 빈둥빈둥 지내다가 쫓겨났습니다. 아카시아꽃이 만개한 날이었는데, 서울행 완행열차가 지나갈 때의 그 꽃무리가 아득한 느낌을 주어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뭘 잘했다고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한 해를 방황하다가 다시 온 겨울, 친구의 권유로 학자금이 필요없다는 교육대학(당시는 2년제) 입학시험을 봤습니다. 4·6 : 1인가 그랬는데 한 해 동안 펑펑 뒤집어 놀았는데도 요행히 그 시험에는 붙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 시험에 붙었을까?'

생각나는 건 영어 시험 문제가 월남전에 관한 기사를 읽고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는데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그건 분명히 저 『노인과 바다』를 읽은 덕분이었습니다. 아, 고마운 『노인과 바다』...

 

옛 생각이 나서 모처럼 책을 펼쳐봤습니다. 그 문장들이 아직도 눈에 익어서 신기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그때도 무슨 뜻인지 몰랐던 단어는 지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He was an old man who fished alone in a skiff in the Gulf Stream and he had gone eighty-four days now without taking a fish. In the first forty days a boy had been with him. But after forty days without fish the boy's parents had told him that the old man was now definitely and finally salao, which is the worst form of unlucky, and the boy had gone at their orders in another boat which caught three good fish the first week. It made the boy sad to see the old man come in each day with his skiff empty and he always went down to help him carry either the coiled lines or the gaff and harpoon and the sail that was furled around the mast. The sail was patched with flour sacks and, furled, it looked like the flag of permanent defeat. The old man was thin and gaunt with deep wrinkles in the back of his neck. The brown blotches of the benevolent skin cancer the sun brings from its reflection on the tropic sea were on his cheeks. The blotches ran well down the sides of his face and his hands had the deep-creased scars from handling heavy fish on the cords. But none of these scars were fresh. They were as old as erosions in a fishless desert. Everything about him was old except his eyes and they were the same color as the sea and were cheerful and undefeated. ………………

 

 

 

어려운 걸 좋아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우선 만만한 과제를 좋아하고, 그 만만한 과제 속에 더러 어려운 과제가 있어야 그것조차 해결하겠다는 도전의식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정말이지 영어 교과서가 싫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그렇게 몇 번 읽은 것은, 재미도 있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까 '그렇게 유명한가?' 싶었고, 그런데도 쉽고 짧은 문장이 이어져서 신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 봐라?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설인데, 내가 읽을 수 있다니……'

 

 

 

그 『노인과 바다』는, 다른 책들과 함께 내가 대학입학시험에 실패하는데 일조했는지는 몰라도, 그 후로는 오랫동안 내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육대학 시험도 그랬지만, 그 책을 읽은 지 20년이 가까웠을 때 다시 영어 시험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 지방대학 교육대학원 시험은 영어만큼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시험문제에 Jumping Spider라는 게 보였습니다.

'Jumping Spider? 세상에 점프를 하는 거미가 다 있나? 그럴 수도 있겠지? 아이들 보는 만화에 '스파이더 맨'이라는 게 있잖아. 그러니까 뭐는 없겠어!'

그렇게 해석하고 답을 썼는데, 시험을 마치고 나와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누군가 그게 '벼룩'이라고 했습니다. 대학원 입학은 다 틀렸구나 했는데, 그런 거미가 있다는 걸 입학하고 나서 나중에 알았습니다. 나는 그때도 그 Jumping Spider와 함께 『노인과 바다』에게 고마워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공부는 하지 않고 저 『노인과 바다』를 읽은 것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고, 정말로 책 속에 길이 있는지 사실은 다 쓸데없는 말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딱 한 가지! 분명한 의견을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제 제발 온 학생이 똑같은 교과서를 펴놓고 교사의 설명을 경청하는 이따위 교육 좀 얼른 집어치웠으면 좋겠습니다.

 

이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우리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몇 사람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넓은 세상에 이렇게 하는 나라는 후진국 말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 좀 해보십시오. 교실마다 개성이 같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는데 어떻게 똑같은 교과서를 펴놓고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입니까?

말이나 되는지 설명 좀 해보십시오.

내가 이러다가 저 『노인과 바다』의 저 노인 신세가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는데, 차라리 그렇다면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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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동네, 2013(1판 6쇄).
2. 샤를 단치 지음/임명주 옮김, 『왜 책을 읽는가』(이루, 2013), 표지 안쪽 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3. 저자 소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28세 때 파리에서 박사 논문을 마친 그는 첫 에세이집과 첫 시집을 출간했다. 그 후 고전 작가들의 미간행 작품들을 발굴하는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영미 문학의 번역자로도 일했다. 2012년 3월 르몽드에 '문학의 포퓰리즘'을 발표했다. 현대문학과 리얼리즘의 위험한 미적 행보를 비판한 이 논설은 커다란 문학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문학잡지 특별호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본서 『왜 책을 읽는가?』(2010)는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장지오노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소설로, 『범죄로 버무리다』(1993),『성급한 우리네 삶』(2001),『사랑의 영화』(2003),『내 이름은 프랑수아』(2007), 『카라카스행 비행기 안에서』(2011) 등이 있고, 로제 니미에상과 장 프로지테상을 수상했다.에세이로는 『프랑스 문학의 이기적인 사전』(2005)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에세이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받았다. 2009년 『모두를 위한 기발한 백과사전』으로 뒤메닐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시집으로 『항해자』(2009)가 있고, 시(詩)로 폴 베를렌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