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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Ⅰ)

by 답설재 2013. 8. 16.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이규현 옮김 , 민음사 2012

 

 

 

 

 

 

 

 

나는 내가 맡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20)

 

카뮈를 가르친 그르니에의 교육관입니다.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하는 교육이 아니라, '책무성'을 넘어 그 교육을 자신의 '권한' '능력' '가능성' 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러한 인식을 보다 일찍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교육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나는 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 '내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

 

 

 

 

그르니에는 집단적 사고방식에 의한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다고 했는가 하면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걸 알아야 한다!"고 설명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우리들 교육자로부터 그들 자신에 대해, 그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 배우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우러 오는데, 나는 "얘들아! 이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내 설명 좀 들어보라!"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르니에는 학생들이 글을 써보겠다고 했을 때, 주제를 제안하고, 정기 간행물에 그들의 글이 실리도록 애를 썼는데, 이것은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한 자신을 알 수가 없다"(21)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그르니에의 위와 같은 교육관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알게 해주는 교육!'

 

 

 

 

알베르 카뮈의 연보에서 그의 스승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보았습니다(알베르 까뮈/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1993, 259~260).

 

□ 1918년(5세)

• 벨꾸르의 공립학교에 입학. 루이 제르멩(Louis Germain) 선생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그의 추천으로 장학생 선발 시험에 응시, 합격함.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후에 《스웨덴 연설》을 제르멩 선생에게 바침).

 

□ 1932년(19세)

• 문과(文科) 고등반에서 학업 계속.

• 철학교수 쟝 그르니에(Jean Grenier)를 만나 두터운 친분을 가짐. (후에 《표리》와 《반항인》을 그에게 헌정함).

 

루이 제르맹, 39년 후에 그는 얼마나 영광스러웠겠습니까?

그르니에는 또한 얼마나 멋진 교수입니까?

루이 제르멩, 쟝 그르니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주어졌는데도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보다 무언가를 탓하고 불평하는 데 골몰했을 것입니다.

 

다 지나간 일이어서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쓸쓸하긴 하지만, 만약 지금 잠깐이라도 다시 교단에 다시 설 수 있다면 나는 우선 그 교실에 카뮈 같은 아이들이 몇 명이나 앉아 있는지, 카뮈가 될 수 없는 아이들이 있기나 한지 그것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그 아이들의 욕망과 동경, 그 아이들의 삶에 대한 열정부터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그르니에는 카뮈에 대해, 카뮈의 욕망과 동경, 삶의 열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위대함에 대한 욕망, 고귀함에 대한 동경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을 선택하는 데에서도 드러나곤 했다. 그가 천성적으로 조심성 많은 사람이었다고 해서, 그에게 온정의 천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조심성은 물론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취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진부한 것과 비열한 것에 대한 소박한 방어의 태도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그의 평가와 우정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었다.(16)

 

『시지프스의 신화』에는 알베르 카뮈의 깊은 생각이 표현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깊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것의 윤곽을 나타내기를 좋아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만큼이나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지배하면서 열심히 산다는 것은 극단적인 경우이다. 니체는 그러려다가 광기에 빠진 것이다.

…(중략)…

나중에(1945년에) 그는 <부조리>라는 주제를 재론하면서, 자신의 시론에 모든 것이 요약되어 있다고 하는 생각을 스스로 부인했다. 그는 단지 <비의미의 철학>에서 논리적 결론을 끌어내려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온 것이다.(59~61)

 

아이들에 대해, 그들의 욕망과 동경, 삶에 대한 그들의 열정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영광스러운 자리부터 찾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 나도 다시 한번 선생님이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