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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TYLER 敎育課程과 授業의 原理》

by 답설재 2013. 8. 8.

《TYLER 敎育課程과 授業의 原理》

 

 

 

 

 

 

 

방학이어서 N이 다녀갔습니다. 점심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그와 나는 이제 겨우 네댓 번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나라 교원들 중에서 내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입니다. 간혹 내가 잊고 있는 어떤 일을 상기해 내기도 하고, "물어보나마나 교장선생님 같으면 어떤 판단을 할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해서 좀 무섭다고 할까, 자랑스럽다고 할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면 한때 교육자였던 사람으로서는 그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타일러(TYLER)의 교육과정과 수업의 원리에 관한 자그마한 책을 선물했습니다. 표지까지 해도 겨우 70쪽 정도, 값도――차라리 3만원이었으면 좋을 텐데――겨우 3천원입니다(李鍾昇, TYLER 敎育課程과 授業의 原理, 교육과학사, 1988 초판 발행).

 

그 책을 내어주며, 새삼스럽게 그 책의 이런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사실은 밑줄을 그어 주었고, 그 부분을 읽어주었습니다. 나중에 내가 없더라도, 그 책을 펼치게 되면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 타일러의 교육과정 모형(1948)은 교육목표의 설정, 학습경험의 선정과 조직, 학습성과의 평가라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순환적 일관성의 관계를 맺고 있다.

 

* 종전 학자들과는 달리 타일러는 평가를 교육과정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등장시켰다. 그는 평가의 개념을 단순히 학생들의 학습성과를 알아보는데 국한시키지 않고,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서 장점과 단점 및 그 원인을 밝혀내어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활동으로 확대시켰다.

 

* 타일러의 교육과정 모형은, 한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어야 할 교육적 가치가 무엇이며, 왜 그것이 중시되어야 하는지를 밝혀주는 가치적 모형이라기보다는, 교육과정을 어떤 절차에 따라 개발하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하여 합리적 관점에서 자세히 제시한 일종의 記述的 模型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일러의 이 모형은 몇 가지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이 부분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결론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대신에, 그것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절차에 관한 언급으로 일관하고 있다(이홍우, 1974).

 

* 교육과정이 어떤 절차에 따라 개발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타일러 자신의 개힌적 견해일 뿐이지 보편적 모형은 아니다. 그 모형은 마치 공장의 '생산모형'처럼 기술적인 합리성만을 추구한 것이다(Kliebard, 1970).

 

* '목적―수단'의 논리에 입각하여 기술공학적인 절차를 강조하는 모형이다(Eisner, 1985).

 

* 교육과정을 단순히 기술적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복잡·다양한 인간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정치적 역할과 윤리적 역할을 도외시하고 있다(Apple, 1979).

 

*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효과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Scriven, 1967).

 

* 결과 평가를 너무 강조하고, 그러한 결과에 도달하는 데 영향을 미친 과정변인 또는 선행조건의 평가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Stake, 1969).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Tanner(1982)는 '어떠한 다른 모형도 이를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모형이 최초의 것이고, 지금 대학에서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모두 제각각 한 가지씩의 모형을 만들어 자신의 그 모형을 설명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형을 알아야 다른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모형부터 설명하는 교수라면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얇은 책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면 그 다음부터는 잘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국교육의 중요한 결함은 계획―실천―평가에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연전에 내가 어느 학교 교장을 할 때 계획―실천―평가의 일원화, 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 및 피드백의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했더니 다른 학교에서 온 어느 교원이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 당연한 것을 뭐 하려고 새로운 것을 알아낸 것처럼 이야기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우리는 당연한 것을 실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획은 계획대로, 실천은 교과서대로, 평가는 학생평가를 제외하면, 그러니까 가르치는 일의 평가에 대해서는 한두 명이 형식적으로 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무계획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평가의 이점을 살릴 수 없고, 그리하여 그 손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계획(편성)은 어느 부장교사와 두어 명의 교사가 수립하고, 실천(운영)은 교과서 진도 나가기에 치중하고, 평가는 형식적으로 하면서 대학진학 실적으로 실제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는 식이라면 무슨 일관성이 있고, 그 교육에 무슨 논리가 있겠습니까?

 

"계획―실천―평가를 제대로 하는 곳은, 교육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는 아무데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가 학교에 있을 때 모든 교육활동에서 단 한 장짜리 평가보고서를 제출하게 한 것도 그 취지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 아시니까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다른 학자들이 타일러의 허점이라고 지적한 것(절차에 지나지 않는 모형)이 우리 교육에서는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하면, 우리 교육의 허점은 목표 설정, 교육내용 선정과 조직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모형의 절차를 전혀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미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평범한 것,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설명을 들어보면 교육자가 아니어도 '그렇겠구나!' 싶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N과 내가 겨우 네댓 번을 만난 것도 사실은 지난해부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생각하고 있고, 서로 알게 된 지가 겨우 이태째이므로 아직 별로 친밀하지 않다고 하면 피차 섭섭해할 사이이기도 합니다.

무슨 청춘남녀처럼 만남의 횟수를 늘여야 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내 뜻을 알면 그걸로써 다 된 것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에 어느 교사가 전화를 해서 함께 근무할 때는 몰랐는데, 이제 그 말씀의 뜻을 조금 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함께 근무할 때는 모르고 이제와서 알 것 같다니……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교사는 진실로 알고 실천했던 것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교장이 그렇게 하자고 하니까, 교장이 하라고 하니까, 그렇게 하는 흉내를 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근무할 때 그들에게 속지 말아야 하는 건데 대부분은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실은 속아 넘어가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교장이라고 해서 무슨 메시지를 제대로 주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음악을 좋아하는 교장은 허구한 날 음악이나 가르치고 싶어하고, 한자를 좀 아는 교장은 걸핏하면 한자 얘기나 해대고,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얘기는 1년 내내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모였다 하면, 입을 열었다 하면, 공문 얘기나 한다면, 그건 '교장 노릇'이 아니라 범죄일 것입니다. '범죄'라고 하면 심한 것입니까? 저는 아이들을 교육과정에 따라 가르치지 않고, 균형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이때다!" 하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건 돈 떼어먹는 범죄보다 더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예의 그 교사가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해놓은 모든 것들은, 퇴임하고 가신 그 이튿날부터 하나도 없이 다 버려졌습니다."

 

 

 

N이 내게 찾아온 것은 이 블로그를 통해서입니다. 언젠가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학교를 떠나셨고, 다른 사람들도 블로그를 통해서만 교장선생님을 대할 수 있으니까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퇴임하기 전에는 그 학교 선생님들이 교장선생님을 독차지했지만, 이제 이 블로그에서 저 혼자서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교육에 대해 무언가를 생각해 보았고, 그것 아니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고, 그럼에도 이제 내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때, 이렇게 다가와 있는 교육자가 있다는 것은, 그가 오히려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때도 있다는 것은,

나는 그렇습니다. 참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나도 무언가 이룩한 것이 있구나, 싶은 것입니다.

 

 

 

답답할 때는, 그가 그 작은 책을 펴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 생각도 좀 날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