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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크누트 함순 『굶주림』 크누트 함순 『굶주림』 우종길 옮김, 창, 2011 내가 지금 베델 야를스베르크 그 사람인양, 거지, 노숙자가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 대팻밥을 씹고, 온갖 것을 전당포에 갖다 주고, 허름한 담요, 심지어 쓰고 있는 안경, 재킷의 단추까지 떼어내 팔아보려고 하고, 죽을 만큼, 신경이 마비될 만큼 배가 고프고, 세상이 교회 같은 것도 없고 자비도 없는 곳인양 그려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고픈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빈틈이 없어서 도대체 어느 부분을 옮겨 놓는 것이 좋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푸줏간에서 뼈다귀를 얻어 미친듯이 갉아먹는 장면을 골랐습니다. 잔인하도록 배가 고팠다. 내 염치없는 식욕이 어떻게 끝날지 나는 알고 있었다... 2015. 3. 15.
재미있는 각주(脚註) 생각이 좀 삐딱한 것인지, 각주는, 믿어 달라고 하고 싶거나 잘난 척하고 싶거나 과시하고 싶거나 남의 것을 대놓고 슬쩍하거나1 할 때 써먹는 것이어서 그 중 가령 잘난 척할 때는 한 페이지 전체를 각주로 채워버릴 수도 있고, 남의 것을 좀 슬쩍하고 싶을 때는 표가 나지 않으면 굳이 각주를 달지 않고 '이건 너무 명백해서 안 되겠다' 싶으면 어쩔 수 없이 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각주 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읽기도 성가실 뿐 아니라 사실은 꼴 보기 싫을 때가 많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는 가능한 한 각주를 달지 말고 굳이 달고 싶으면 후주(後註, 尾註)로 달아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짐작이나 하고 있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구나 싶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소설가 임승훈2의 단편소설 「골키퍼.. 2015. 3. 12.
마르틴 아우어 『파브르 평전 -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한다』 마르틴 아우어 『파브르 평전 -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한다』 인성기 옮김, 청년사 2007 Ⅰ 초등학생들도 웬만큼은 아는 파브르, 애써서 그의 일생을 요약해 보는 것은 힘만 들고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옮길 만한 부분을 찾아봤습니다.1 파브르 삶의 본질적인 내용은 끈질기고 힘든 노동이었다. 그의 삶을 구성하던 노동이 무엇이었는지는 연구자 파브르의 작품 《곤충기》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물론 그 책에서 노동 다음으로 많이 기록된 내용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그는 흔히 은자隱者로 불렸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꺼렸던 것은 '공개적인 삶'이었다. 그는 사업의 세계, 정치의 세계, 온갖 술수와 음모가 난무하는 학자들의 세계를 꺼렸다. 그에게는 그가 관심을 가진 정신의 제국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 2015. 3. 1.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정현종 옮김, 물병자리 2002 당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없는 까닭은 당신이 그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죽음은 말이며, 공포를 낳은 것은 이 말이요, 이미지이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이미지 없이 죽음을 볼 수 있는가? 생각이 솟아나는 원천인 이미지가 존재하는 한, 생각은 언제나 공포를 낳는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공포를 합리화하고 그 불가피한 것에 대항하든가 아니면 당신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믿음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당신과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 시공(時空)의 틈 속에 공포, 불안, 자기 연민인 갈등이 분명히.. 2015. 1. 27.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보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며 ―듣는 것도 그렇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같은 것이다. 만일 당신의 눈이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 당신은 황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연과의 접촉을 잃었다. 문명은 점점 대도시를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도시인이 되어가고 있고, 밀집한 아파트촌에서 살고 있으며, 저녁 하늘이나 아침 하늘을 바라볼 공간조차도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상당한 아름다움과의 접촉을 잃고 있다. 우리가 해뜨는 거나 해지는 것, 달빛 또는 물 위의 빛의 반사를 얼마나 보지 못하며 살고 있는가에 대해 당신은 주목해 본 적이 있는가? 자연과 접촉을 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지적 능력을 발전시키게 된다.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미술관과 연.. 2015. 1. 13.
김영승 시집 『반성』 김영승 시집 『반성』 민음사, 2012 이 시집에는 '반성'만 들어 있습니다. 온통 '반성'뿐입니다. 시의 제목이 다 '반성'이고 일련번호만 다릅니다. 반성 39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 함께 자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왔다. 아내는 갈비탕을 먹자고 했고 그래서 우리는 갈비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버스 안에서 아내는 아아 배불러 그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두 그릇 먹어서 그렇지 그러자 아내는 나를 막 때리면서 웃었다. 하얗게 눈을 흘기며 킥킥 웃었다. 재미있습니다.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편 한 편이 가슴이 아파오고 괜히 미안하게 됩니다. 내게 저 시인으로부터 삶이 곤고하다는 연락이 올 리가 없어 다행스럽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것이 비겁한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반성 673 우리 식구를.. 2014. 12. 24.
타우노 일리루시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타우노 일리루시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박순실 옮김, 대원미디어, 1995 노부부의 가슴 짠한 사랑과 사별(死別)을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가 개봉 15일 만에 관객 40만명을 넘어서며 일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11일까지 총 관객 수는 42만118명. 290만 관객을 모은 역대 다큐 최고 흥행작 '워낭소리'보다 13일 일찍 '40만명 고지'에 올랐다. …(중략)…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복고(復古)와 향수(鄕愁)라는 시대 코드를 멜로 형식에 담아 자연스럽게 젊은층도 호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사 진진 김난숙 대표는 "'저렇게만 살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는, 눈물 흘리면서도 행복한 영화"라고 했다. 신문기사입니다.* 그것도 이미 지난 주.. 2014. 12. 16.
사이토 다카시 『내가 공부하는 이유』 사이토 다카시 『내가 공부하는 이유』 오근영 옮김, 걷는나무, 2014 또 뭘 읽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목이 저렇게 좋은 책을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건 도리가 아니긴 하지만, 읽으며 "처세서" "자기계발서"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만사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필자 소개에서,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키우는 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장 써먹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 그 자체를 즐기는,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하라고 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공부" 하면 학력(學歷)을 중시하는 이 나라에서는 당장 대학수학능력시험 혹은 대학입학시험이 떠오르는데 그런 공부, "당장 써먹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 그 자체를 .. 2014. 12. 10.
박홍순 『대논쟁』 박홍순 『히스토리아 대논쟁』(서해문집, 2009) "며칠간 뭘 읽었습니까?" 그 대답으로 적습니다. 자그마한 책에 큰 제목이 붙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날개에 "논쟁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는 '선언'이 보였고, "비판적 사고, 논리적 사고, 창의적 사고의 발전을 이루는 데 활발한 토론과 논쟁만큼 빠르고 바른 길은 없다"는 설명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성격 탓이겠지요, 누가 "거창한 책을 읽고 있군요!" 할까봐 책 제목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읽었습니다. '히스토리아 대논쟁'! 다섯 권 중 한 권으로, 칸트 vs 피터 싱어의 인간과 동물 논쟁, 도킨스 vs 르원틴의 사회생물학 논쟁 등 두 가지가 실렸습니다. ♬ 뒤표지에 잘 요약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은 수백만 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 2014. 12. 4.
이우환 시집 『멈춰 서서』 이우환 시집 『멈춰 서서』 성혜경 옮김, 현대문학 2005 그림을 소재로 한 시를 골랐습니다.(22~23) 그리는 일 내가 그림을 생각해냈다 하여 그림이 나인 것은 아니다. 그림이 내 손을 빌렸다 하여 내가 그림인 것은 아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느새 그림이 내게 그리게 하고 있다. 다시금 내가 그림을 그리지만,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또 그림이 내게 그리게 하고 있다. 나와 그림 사이에, 무언가가 왔다갔다하는 듯하다. 내가 의식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반대로 그림에게 맡긴 채로 그려버리면, 그 무언가가 터트려지지 않게 된다. 작품이 불가사의한 힘으로 가득 차 보이는 것은, 대개 나와 그림이 겨루었던 것이다. 이 텐션*과 밸런스의 무언가가 나를 화가이게끔 한다. 긴장감으로 단숨에 읽은.. 2014. 11. 30.
미셸 투르니에·에두아르 부바(사진)『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에두아르 부바 사진 『뒷모습』 현대문학, 2009(초판 9쇄) ♬ 나를 찾아온 사람(손님)을 잘 배웅하려고 합니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봅니다.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지켜본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 풍습 혹은 예절을 꼭 지키고 싶습니다. 뒤돌아보는 사람도 있고 줄곧 그냥 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기쯤에서 뒤돌아볼 때는 서로 손을 들어 추가적으로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손아랫사람인 그쪽에서 목례를 하는 경우에는 손을 흔들어줍니다. ♬ 뒤돌아보지 않고 줄곧 그냥 가는 사람 중에는, 내가 지켜보고 있는 줄을 아는 것 같은 사람도 있고 모르는 것이 분명한 사람도 있습니다. 모르는 게 분명하다 싶은 사람의 경우에는 '만약 내가 저 사람을 찾아갔다가 돌아나올 경우라면.. 2014. 11. 22.
알퐁스 도데 『별』 알퐁스 도데 『별』 최복현 옮김, 인디북 2011 꼭 보고 싶은 책들이 있습니다. 서장에도 여러 권 있어서 이러다가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초조해질 때는 "눈요기만 해도 좋은 것"이라는 블로거 '노루'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고 그런 표현을 고마워합니다. 이 책도 그런 책이었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위가 산만한 전철에서도 그렇고, 일전에는 파주의 어느 학교로 교과서 활용에 관한 강의('교사와 교과서')를 하러 갔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버려서 차 안에서 두어 편을 읽기도 했습니다. 전철에서도 그렇지만, 자투리 시간에 무슨 심각한 책을 읽기는 어렵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쯤의 이유를 댈 수 있습니다. 우선 문장이 쉽고, 유연하고, 시적(詩的) 혹은 감성.. 2014.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