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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마르틴 아우어 『파브르 평전 -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한다』

by 답설재 2015. 3. 1.

마르틴 아우어 『파브르 평전 -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한다』

인성기 옮김, 청년사 2007

 

 

 

 

 

 

 

 

초등학생들도 웬만큼은 아는 파브르, 애써서 그의 일생을 요약해 보는 것은 힘만 들고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옮길 만한 부분을 찾아봤습니다.1

 

파브르 삶의 본질적인 내용은 끈질기고 힘든 노동이었다. 그의 삶을 구성하던 노동이 무엇이었는지는 연구자 파브르의 작품 《곤충기》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물론 그 책에서 노동 다음으로 많이 기록된 내용은 가족에 관한 것이다. 그는 흔히 은자隱者로 불렸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꺼렸던 것은 '공개적인 삶'이었다. 그는 사업의 세계, 정치의 세계, 온갖 술수와 음모가 난무하는 학자들의 세계를 꺼렸다. 그에게는 그가 관심을 가진 정신의 제국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가족의 세계가 있었고, 또 몇 안 되지만 신중하게 고른 친구들이라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세계가 있었다. 그는 여기에 만족했다.

 

놀라운 책이어서, 읽어본 것 중에서는 거의 가장 감명 깊은 책이라고 쓸까?진작 읽을 수 있었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라고, 아마도 정신을 좀 차렸을 것이라고 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적어도 "이런 책을 평전(評傳)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고 써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숨에 읽어도 지루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오며가며 전철에서만 읽은 것이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여러 날 파브르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을 소개해준 이가 존경스러웠습니다.2

 

정작 이 평전을 멋지게 쓴 이는 '마르틴 아우어'인데 그의 이름은 지금 저기 책 이름과 함께 표시하기 위해 확인했습니다. 그는 용하게 자신은 숨겨두고 저 파브르가 더 위대해 보이도록 하는 데만 애를 쓴 것 같았습니다.

 

 

 

옮겨 놓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3 이것저것 고르기보다는 '훈장'이라는 소제목을 단 글을 다 옮겼습니다.4

 

그의 몇몇 저술은 이미 학계에서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1866년에 프랑스아카데미로부터 제네르 상Prix Gegner을 받았다. 상을 받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3,000프랑을 상금으로 함께 받았으니 이 년치 월급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그는 여전히 꼭두서니 염료의 특성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교육부 장관이 그가 일하는 고딕식 성당의 작업장을 방문해 그를 놀라게 했다. 커다란 증류기가 널려 있었고, 파브르의 손은 구운 바닷가재의 발처럼 새빨갰다. 빅토르 뒤루이 장관은 로마사를 저술한 역사가였으며 일 년 전에 문학 장학사로 아비뇽의 중학교에도 왔었다. 파브르는 그 장학사가 연구 수업 참관을 마치고 자신에게 건넸던 특이하고 고무적인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내 전공 분야인 자연과학으로는 이 장학사와 다시 인연을 맺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와 나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다."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장관과 파브르 둘 다 소탈한 성격에 서민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노동의 이념, 해방과 진보의 이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나폴레옹 3세 정부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혁명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 부르주아들은 과거에 이미 두 차례나 정권 찬탈을 기도한 경험이 있는, 그래서 감옥에 구금된 적이 있는 나폴레옹 3세를 1848년 혁명 직후에 대통령의 자리에 앉혔다. 그는 나폴레옹 1세의 조카였다. 그런데 그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그의 경찰국가는 1866년부터 '자유주의적 제국'으로 바뀌었다. 황제는 몇몇 자유주의적 개혁들로 민심을 돌리고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가 교육 제도 개혁이었으며, 이 일을 뒤루이 장관이 맡고 있었다.

"나의 참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비뇽 마지막 몇 시간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의례적으로 계속되는 허리 굽히기에서 잠시 해방되고 싶습니다.'

나는 그런 영광스러운 말을 듣고 당황했다. 소매를 걷어붙인 복장과 바닷가재의 발 같은 손을 용서해달라며 한동안 손을 등 뒤로 숨기려고 했다.

'미안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노동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노동자 파브르는 장관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했고, 자신의 생산물로 직물을 날염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의 간소한 장치가 장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실험실에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아니요, 장관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지금 있는 기구들로 충분합니다.'"

장관은 어안이 벙벙했다. 다른 곳에서 만난 연구자들은 실험실이 아무리 커도 이구동성으로 여전히 작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은 악수만을 청하는 것이다.

"'파리 동물원도 장관님 관할이지요. 만약 악어가 죽으면, 제가 그 껍질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것에 지푸라기를 채워서 지붕 아래 매달고 싶습니다. 그 장식품만 있으면 저의 작업장은 진짜 동굴 속 무당의 집처럼 될 테니까요.'"

장관은 이 만남이 있고 나서 반 년 뒤에 파브르를 파리로 초청했다. 하지만 파브르는 응하지 않았다. 자기를 염색통과 곤충들에게서 떼어놓을 수도 있는 공직에 발령을 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관의 다음 편지는 짤막했다. "즉시 오시오. 아니면 경찰을 보내 데려오겠소!"

그 다음날, 파브르는 장관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장관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레지옹 드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물론 이 '기사騎士'는 한 번도 자신의 훈장을 자랑한 적이 없었다.

"장식적인 금속과 띠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을 가슴에 단 사람들의 권모술수가 그 명예를 더럽히는 것을 자주 보는 요즘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다. 그것은 퍼레이드용 장식이 아니라 성스러운 유물이다. 나는 그것을 옷장 서랍에 깊숙이 넣어 경건하게 보관하고 있다."

다음날 파브르는 튈르리 궁전으로 초대받았다. 거기서 황제를 알현하기로 되어 있었다. 훈장과 금줄로 번쩍거리는 신사들 틈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양복을 입은 파브르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관찰했다.

"그 다음날 나는 장관과 함께 반바지에다 죔쇠 장식의 단화를 신은 시종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튈르리 궁전의 작은 홀로 들어섰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특이했다. 그들의 복장과 신중한 동작들이 내 눈에는 쇠똥구리 같았다. 밀크커피 색깔의 프록코트는 흡사 속날개와 몸통을 보호하는 바깥날개 같았다."

그는 황제와 몇 마디를 주고받았으며, '폐하sIRE'라는 칭호가 익숙하지 않아 자꾸만 '선생님Monsieur'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폴레옹 3세는 땅과뢰의 탈피 과정에 관한 전문적인 질문도 몇 차례 했다. 파브르는 금방 지루해져서 괜히 왔다고 후회했다. 대도시의 박물관도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향의 곤충들이 보고 싶어졌다. 곤충들을 연구하면서 염료 실험의 소득도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인공 알지자린이 개발되었고 그가 12년 동안 공들인 연구는 물거품이 되었다.

 

 

 

한 가지만 더 옮기면, 그의 세계관(혹은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 중의 두 대문입니다.5

 

"아주 숭고한 덕목을 갖춘 인간은 당분간은 보기 힘든 예외적인 존재이다. 현재 사람들이 쓰고 있는 문명의 껍질을 벗겨보면 인류의 조상인 동굴 속의 야만스러운 원시인이 아주 쉽게 발견된다. 참된 인간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수백 년의 발효 과정을 거쳐서, 그리고 양심을 통한 교육을 통해서 올 것이다. 그것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느린 속도로, 차츰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

 

"……. 자연과학도 어린 아이들한테 사랑 받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기만 하면 얼마든지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아이들의 머릿속에 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병영 같은 우리 대학들이 죽어 있는 서적 연구에 야외의 살아 있는 연구를 덧붙일 수만 있다면! 관료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교과 과정의 올가미가 모든 자발적인 창의성의 숨통을 조이지만 않는다면! 내 친구 폴과 나는 가능한 오랫동안 들판에서, 로즈마리와 진달래 사이에서 연구한다. 거기서 우리는 육체의 힘과 정신의 힘을 획득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미와 진리를 교과서에서보다 많이 발견했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경탄, 드라마 같은 혹은 파란만장한 삶, 불굴의 의지, 다재다능함, 신기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관찰력, 그 관찰이 너무나 생생해서, 생생하게 기록되어서 사진이 필요할까 싶다는 것,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최소한으로 적어둔 저 메모의 내용들에 대해 더 언급해야 하겠지만, 결국은 이 책의 여러 부분들을 옮겨쓰는데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평전을 쓴 '마르틴 아우어'의 필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번역을 통해서 읽는데도 가령 파브르의 우정에 관한 내용 같으면 철학자 밀의 모습과 그들이 만나는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파브르의 《곤충기》 자체를 수없이 인용하는데도 불구하고, 마르틴 아우어가 쓴 문장과 곤충기의 내용이 분리되지 않아서 언제 인용으로 들어갔는지, 언제 그 인용에서 나온 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아 걸핏하면 그걸 확인하며 읽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책을 읽는 행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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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60쪽.
2. 인문학을 위한 블로그 『BLUE & BLUE』를 운영하는 블로거 '언덕에서'님께 새삼 감사를 드립니다.
3. 메모 : 재미 45 2-3문단. 부모 49하-50상. 체험학습 67중. 독서 82하. 자연에 대한 경탄 75하. 극적인 삶 80 2문단, 81하. 우정(밀) 112. 학문적 비난 131하. 연구방법 132. 곤충 송가 156. 관찰(마취) 165하-166. 인간과 곤충의 차이에 대한 관점 183-184. 본능과 지능 200. 고백 212. 다윈의 죽음 229-230. 느린 발전에 대해 237. 죽어야 채워지는 인간 239. 매미와 여치가 우는 이유 250. 교육, 공교육 비판 266.
4. 103~107쪽.
5. 237, 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