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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크누트 함순 『굶주림』

by 답설재 2015. 3. 15.

크누트 함순 『굶주림

우종길 옮김, 창, 2011

 

 

 

 

 

 

 

내가 지금 베델 야를스베르크 그 사람인양, 거지, 노숙자가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

 

대팻밥을 씹고, 온갖 것을 전당포에 갖다 주고, 허름한 담요, 심지어 쓰고 있는 안경, 재킷의 단추까지 떼어내 팔아보려고 하고, 죽을 만큼, 신경이 마비될 만큼 배가 고프고, 세상이 교회 같은 것도 없고 자비도 없는 곳인양 그려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고픈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빈틈이 없어서 도대체 어느 부분을 옮겨 놓는 것이 좋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푸줏간에서 뼈다귀를 얻어 미친듯이 갉아먹는 장면을 골랐습니다.

 

 

잔인하도록 배가 고팠다. 내 염치없는 식욕이 어떻게 끝날지 나는 알고 있었다. 벤치 위에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두 무릎 위에 가슴을 기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져서 간신히 시청 쪽으로 걸어갔다.(201)

……

일단 고깃간 높이까지 다다라서 계단의 외곽 틀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는, 마치 저 뒤쪽에 있는 개에게 말하는 듯이 위협하는 몸짓을 해보였다. 그리고 태연하게 눈에 띄는 고깃집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 우리 개한테 뼈다귀 하나만 주십시오. 뼈 하나만. 다음에 또 뭐 달라고는 않겠습니다. 그저 저놈 주둥이에 뭔가 물려 주려구요."

그는 내게 뼈 하나를 주었다. 훌륭한 뼈다귀였다. 거기에는 아직 고기가 좀 붙어 있었다. 그것을 윗저고리 안에 쑤셔 넣었다. 내가 하도 열렬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니까 그는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별 것 아니오."

하고 그가 말했다. 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정말 친절하십니다."

그리고 올라갔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막다른 대장장이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박힐 수 있는 한 가장 깊숙이 들어가서, 뒤뜰의 허물어진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 데서도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고맙게도 그늘이 주위를 덮고 있었다. 나는 뼈다귀의 고기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무런 맛이 없었다. 말라붙은 피의 메스꺼운 냄새가 뼈에서 올라와, 곧 삼킨 것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시 시도를 해보았다. 이 고기 한 조각을 속에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그 효과가 나련만. 뱃속에 그것이 남아 있도록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또다시 구토증이 일어났다.

몹시 화가 났다. 고기를 난폭하게 물어뜯었다. 거기서 조그만 살점이 뽑혀 나와서, 그것을 억지로 삼켰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고기의 조그만 살점들은 위 속에서 발효되자마자 도로 올라왔다. 나는 미친 듯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비탄에 빠져 눈물을 흘리고, 귀신 들린 사람처럼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도 울어서 뼈는 눈물로 젖어 더럽혀졌다. 나는 더욱 격렬하게 토해내고, 욕설을 퍼붓고, 갉아먹었다. 마치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울었고, 또 토해냈다. 그리고 큰소리로 온 세상의 신들에게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했다.

조용했다.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 보였고, 불빛 하나도, 소리 하나도 없었다. 나는 신경이 극도로 흥분됐다. 무겁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배고픔을 좀 가라앉혀 줄 수도 있을 이 고기 살점을 게워내야만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이를 갈았다. 온갖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으므로, 문에다 뼈를 집어던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과 증오감으로 가득 차고 격노에 휩싸여, 난폭하게 하늘에다 호소와 위협의 소리를 내질렀다. 손가락을 야수의 발톱처럼 구부러뜨리고 격노로 응축된 쉰 목소리로 저주의 말을 외쳤다.(202-204)

……

 

 

그런 일을 겪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라는 확신으로 읽었는데, 역자 후기에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크누트 함순(1895~1952, 본명 크누트 페데르센)은 노르웨이의 중앙부에 있는 구즈프란스다이르라는 작은 농장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빈농이었고 마을에서 양복점일도 하고 있었다. 자녀가 많고 생계가 곤란했던 아버지는 그가 8세가 되자 그를 혼자 사는 숙부에게로 보내어 밭일과 우편배달 일을 거들도록 했다. 엄격한 숙부 밑에서 그는 심한 육체노동과 쓰라린 벌을 참고 견디어야 했다. 그는 고독 속에서 죽음과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며, 점차로 비사회적인 인간이 되어갔다. 15세 때부터는 방랑 생활을 하며 행상인이나 날품팔이 인부, 점원, 농장의 심부름꾼, 석공, 제화공, 목수, 가정교사 등 직업을 전전해서 그날그날의 식량을 벌었다. 소학교 이상의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손에 들어오는 책은 모조리 읽고 있었다. 그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로서 생활을 계속했는데, 이러한 방랑자의 이미지는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게 된다.(292)

 

'인간이란 선(線) 하나를 넘으면 이처럼 비참해지는 존재구나' 싶은데, 이 소설에서 단 한 군데, 베델 야를스베르크가 끝까지 살아남는 마지막 장면의 일만은 신나는, 기분 좋은,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자넨 아직 항해를 해본 적이 없군?"

하고 그가 물었다.

"예.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일만 시키십시오. 그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좀 이것저것 잡일을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생각했다. 나는 벌써 머릿속에 출발을 하겠다는 생각이 새겨져 있어서, 뭍으로 돌려보내질까 봐 겁이 나기 작했다. 마침내 내가 물었다.

"자, 어떻습니까, 선장님? 저는 정말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니까요? 제가 꼭 맡은 일만 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별것 아니지요. 필요하다면 당직근무를 두 번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 말에 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해보세. 일이 잘 안 되면 영국에서 헤어지면 될 테니까."

"물론입니다!"

나는 기뻐서 대답했다. 그리고 일이 잘 안 되면 영국에서 헤어지면 된다고 되풀이해 말했다.

그는 내게 일을 시켰다….

피오르드에서 나는 열기에 들뜨고 피로에 젖은 채 잠시 허리를 일으켰다. 육지 쪽을 바라보고, 이번에는 도시에게 작별을 고했다. 저 모든 집들, 저 모든 집들의 창문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저 크리스티아나에게.(288~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