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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미하일 엔데 『자유의 감옥』

by 답설재 2015. 4. 1.

미하일 엔데 지음 『자유의 감옥

이병서 옮김, 보물창고 2005

 

 

 

 

 

 

 

*긴 여행의 목표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찮아

*미스라임의 동굴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자유의 감옥

*길잡이의 전설

 

이렇게 여덟 편의 소설인데 읽다 보니까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덟 편 다 술술 읽혀서 고마웠습니다. 이 까칠한 세상에…… 줄 돈 다 주면서도 번역이 잘못된 책을 읽으며 이해력이 부족한 자신을 탓하기 쉬운 세상에…… 별로 탐탁지 않지만 언어 사용의 한계 때문에 별 수 없이 '야금야금'이란 단어를 떠올렸고,1 서양식이긴 하지만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다 즐기는 옛날 얘기책처럼 느껴졌습니다.

 

뭐라고 하면 '아, 정말 재미있는가 보다.' 할까 싶어서 표지를 두른 띠지를 봤습니다.

"『모모』의 작가"

"신화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작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담은 판타지 소설"

"자유로워지고 싶은 인간의 의지와 한계 탐구"……

번역한 이의 해설에서는 "철학동화" "무궁무진한 상상력"이란 단어가 보였습니다.

그 해설에서 옮겨 두고 싶은 부분입니다.

 

엔데는 자신이 작품 속에서 묘사하는 판타지 세계는 단순한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평행한 또 하나의 현실'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현실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은 그에게는 언제나 극복의 대상이다. (……) 그의 진짜 의도는 시간과 공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얽매여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적 여유와 공간적 자유를 찾아 주고, 우리의 현실을 둘러싼 또 하나의 장벽인 상식과 인습의 허를 찌르는 판타지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굳이 어느 작품이 대표작이냐고 물으면, 작가 엔데는(이미 저 세상으로 갔지만) 처음과 끝의 두 작품, 태어나면서부터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 『긴 여행의 목표』, 신비와 기적을 찾아 헤매는 『길잡이의 전설』, 혹은 《천일야화》 같은 느낌을 주는 표제작 『자유의 감옥』을 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눈보다 앞장서 내려갈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지하묘지 동굴세계에 사는 '그림자' 들의 이야기 『미스라임의 동굴』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지금 이승을 살아가는 나도 사실은 그런 세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무슨 꿈이나 환상 속에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에는 이런 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그림자들을 붙잡아 두려는 납덩이 베히모트의 연설입니다. 이 연설을 들은 그림자들은 탈출을 포기하게 되고 이브리 혼자서 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브리는 그 세상을 탈출한 것인데, 그가 옳은 건지 아닌지는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베히모트의 연설을 옮깁니다.2

 

"들었어? 너희들이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한다잖아! 그런데 너희들은 저 밖에 뭐가 있는지 알기나 하고 그렇게 까부는 거니? 저 세상은 너희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봐! 너희들은 이 정도의 빛에도 질겁을 하잖아. 밖에 나가면 너희들은 완전히 분해되고 말아. 너희들은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도 할 수 없는 몸뚱이를 가졌어. 그리고 너희들은 그 몸뚱이를 어디에 둬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돼. 커다란 '공간'이 너희를 삼켜 버리고 말 거야. 숨도 너희들 스스로 힘으로 쉬어야 해. 너희들에게 심장을 뛰게 할 힘이나 있는 줄 알아? 그리고 너희들 스스로 내려야 하는 순간순간의 결정은 또 어떻고? 한번 하면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족쇄가 되어 너희들을 따라다니게 될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 세상은 너희가 살 만한 곳이 못 돼. 그래서 너희들은 너희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저 세상과 빛을 피해 이리로 도망쳐 와서는, 우리에게 보호를 요청했던 거야. 우리는 단 한순간도 너희를 이곳에 붙잡아 둔 적이 없어. 아니, 반대로 우리가 너희들의 의지에 복종해 왔어. 너희들이 우리를 위해 일한 게 아니라,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일했다 이 말씀이야. 우리는 너희와 함께, 그리고 너희를 위해서 이곳 미스라임의 동굴 세계를 만들었어. 그리고 너희를 편하게 해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어. 그런데 너희들은 지금 이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하고 있어. 저기 저 별난 그림자 한 명 때문에! 쟤는 너희들과 같은 그림자가 아냐. 제발 정신들 좀 차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너희들이 원하기만 하면 우리는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얼마든지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자, 이젠 결정을 해! 저 별종과 같은 신세 망치는 길로 들어서든가, 아니면 너희들의 유일한 은신처인 이 세계에 남아 지금의 이 상처를 치료하고 모두 잘 사는 길로 들어서든가……!"

 

 

이 연설(?)만 읽으면 베히모트가 위협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그걸 분명하게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브리는 대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그림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지금 베히모트가 하는 말은 진실이 아니라고……. 왜냐 하면 저 바깥에 우리들이 원래 살았던 세상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잠시 망설였다.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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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식 따위를 자꾸 입안에 넣고 조금씩 먹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물건 따위가 자꾸 조금씩 축나거나 써서 없어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행동하거나 변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2. 222~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