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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똘스또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강은 옮김, 창비 2015 Ⅰ 이반 일리치가 죽게 되었습니다. 남의 죽음이니까 우리가 보기엔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그에게는 참으로 난감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Ⅱ 그는 판사입니다. 그런 그가 그 성공의 정점에서 갑자기 원인이 불분명한 병에 걸려서 죽게 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죽어가는 게 분명하다는 걸 느낀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신의 인생과 삶의 의미를 곰곰이 되돌아보고 되새겨보게 됩니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히 인정했지만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키제베터1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논법을 보면,.. 2016. 1. 11.
마르시아스 심 『떨림』 마르시아스 심 연작소설 『떨림』 문학동네, 2000 Ⅰ 「딸기」「샌드위치」「나팔꽃」「우산」「밀림」「피크닉」「베개」「발찌」등 여덟 편으로 된 사랑 혹은 섹스 이야기. 먼 옛날 내가 아주 젊고 자유로웠을 때, 나는 장차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그래서 언젠가 소설가가 된다면 무엇보다 우선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리라 작심했었다.(11) 「딸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미 방탕한 성 체험을 지닌 주인공이 대수롭지 않게 동정을 바친 두 자매를 별 즐거움도 없이 차례로 안았던 이야기'다. 그러나 그 두 자매는 '흙탕물 속의 맑은 기포처럼 깨끗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서인 듯, 블라디미르 나브코프의 『로리타』 첫머리가 인용 표시 없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로리타. 내 .. 2016. 1. 8.
루이저 린저 『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 루이저 린저 Luise Rinser 『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 이강빈 옮김, 홍신문화사 1995 Ⅰ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했던 것일까?……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이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로써 상대를 설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었습니다. 오십 년이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자주 떠올렸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언젠가 그어 놓은 밑줄을 보았습니다. 니나가 뢰벤 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얼마 전에 내가 당신을 찾아갔을 때, 나는 이야기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것이 아주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초라해지고 두 배.. 2016. 1. 6.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1 Ⅰ "써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조지 오웰의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입니다. 이 에세이집 앞쪽의 「스파이크」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를 읽으며 생각한 것입니다. 유럽의 역사에 어두워서 '내가 공부를 하지 않은 게 다 드러나는구나……'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번역서 같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Ⅱ 스파이크the Spike 교수형A Hanging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 서점의 추억 Bookshop Memories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Why I Joi.. 2015. 12. 18.
종이책 읽기 개인의 생활사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연구에 따르자면, 혼자만의 독서가 소수 엘리트 계급의 특권적인 행위에서 점차 보편적인 인간의 자아 발견과 취향 형성, 지식 습득의 행위로 대중화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중략)… 이제 21세기의 독자는, 책을 대체한 모바일 기기의 등장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독자'는 뉴스와 기사의 형태로 전달되는 정보에서 지식을, 다양한 콘텐츠에서 사회와 자아를, 유저가 게임 속 캐릭터를 연기하며 즐기는 RPG(Role Playing Game)에서 서사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에서 타인(다른 독자)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사람들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중략)…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실.. 2015. 12. 13.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야생의 삶』 미셸 투르니에 지음| 고봉만 옮김 『방드르디, 야생의 삶 Vendredi ou la vie sauvage』 문학과지성사, 2014. Ⅰ "블랙홀에서 온 윌리엄 헌터입니다. '화이트버드호'의 선장입니다." 보트에서 내린 선장이 악수를 청했을 때, 1759년 9월 30일에 난파를 당해 그 무인도1에서 생활해온 '버지니아호'의 유일한 생존자 로빈슨은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이 며칠입니까?"(178) 1787년 12월 22일! 28년이 지났습니다. 로빈슨은, 순식간에 쉰 살이 되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헌터 선장 일행이 믿지 않을 것 같아서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의 일부를 잃었다면서 난파 시기를 숨깁니다. Ⅱ 유니언 잭2을 단 화이트버드호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감개무량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마치 숨을 거두기 직.. 2015. 12. 10.
가와바타 야스나리 『산소리』 가와바타 야스나리 『산소리』 신현섭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0 Ⅰ 싱고 부부는 아들 슈이치 부부와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바람을 피우는데 딸 후사코마저 친정으로 돌아옵니다. 사위 아이하라가 마약 중독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건 며느리 기쿠코가 낙태를 한 일입니다. 바람을 피우는 슈이치에 대한 복수 같습니다. 싱고는 고독합니다. 인생관이 자신과 다른 아들 슈이치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아내 야스코도 싱고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싱고 자신도 동경했던 연상의 여인이 죽자 그녀의 동생 야스코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했고 야스코도 사실은 미남인 형부를 사랑했었습니다. 언니가 죽자 당장 형부와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런 감정을 감추고 살아왔습니다... 2015. 12. 6.
주제 마우루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주제 마우루 바스콘셀로스 José Mauro Vasconcelos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Meu Pé de Laranja Lima』 박동원 옮김, 동녘, 2003(4판1쇄) Ⅰ 바람의 계절에는 밍기뉴*도 뒷전이었다. 식구들이 나를 몹시 때리고 벌을 주느라고 가둬두는 때나 겨우 찾아가는 정도였다. 한 차례 맞고 나서 또 맞게 되면 어찌나 아픈지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165~166) 아빠는 잔디라 누나에게 한번만 더 그런 욕을 한다면 나를 가루로 만들어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숨 쉬는 것조차 두려웠다. 내 라임오렌지 나무 그늘 속에 있을 때가 그나마 맘이 가장 편했다.(214) 마치 독서교육의 기본 공식인양 수많은 학교에서 '필독(혹은 권장)' 도서로 지정하고 있는 이 책에서, 아직 학교에 입학.. 2015. 11. 24.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등대지기 Latarnik』 헨리크 시엔키에비치『등대지기 Latarnik』(단편) 김은영 옮김, 작은키나무, 2006. Ⅰ 폴란드에서 온 스카빈스키 노인은 파나마 근처 에스핀월 항구의 등대지기입니다. 산전수전에 지칠대로 지쳐서 아이작 팰콘브릿지 영사에게 자신을 채용해 달라고 애원한 것입니다. "(…)저는 늙었고 이젠 쉬고 싶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이제 내가 쉴 곳은 이곳뿐이다! 이곳이야말로 나의 안식처다!' (…) 영사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일은 당신 한 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제가 간절히 원하는 이런 자리가 제 일생 동안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파나마에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는지…… 간청합니다. 저는 정박하지 못하면 곧 침몰하고 말 배와 같은 처지입니다. 제발, 이 늙은이를 .. 2015. 11. 17.
블라디미르 나브코프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브코프《로리타》 申東蘭 옮김, 모음사 1987 13판 Ⅰ 아주 유명한―아마 읽지는 않았으면서도 아는 사람이 많은―소설이어서 조심스럽습니다. 결말에 대해 뭘 좀 아는 척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들은 에로틱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람들이 소설을 사보기를 거부한 것은 (…) 흑인과 백인이 결혼에, 완전히 그리고 크게 성공해서 많은 어린이들과 손자 손녀 아이들을 얻게 되는 것과, 무신론자가 행복하고 유용한 인생을 살다가 1백6살에 잠자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어떤 지적인 심사위원은 어린 아메리카를 유혹하여 더럽히는 늙은 유럽으로 묘사했다." "Y출판사는 소설 속에 한 명도 선량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유감스러워했다." "출판업자 Z는 만일 그가 를 .. 2015. 11. 10.
제마 엘윈 헤리스 『어른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위대한 질문』 제마 엘윈 헤리스Gemma Elwin Harris 엮음 어른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위대한 질문BIG QUESTION FROM LITTLE PEOPLE 김희정 옮김, 부키 2015 Ⅰ 아이가 묻습니다. "벌레를 먹어도 될까요?" 답의 핵심은, 아이가 만족하는가 실망하는가, 다르게 말하면 탐구 의욕을 조장하는가 꺾어버리는가에 있지 않겠습니까? 답이 정확했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아이가 더 생각해볼 수 있고, 당연히 그럴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벌레를 먹어도 될까요?" "얘가? 집어 치워! 너 나하고 노닥거리자는 거냐?" 이 책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흠… 뭐,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상황이라면 먹어도 되겠지요? 하지만 날마다 벌레를 먹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내 말을 믿어도 좋아요. 혹시 .. 2015. 11. 3.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Ⅰ 퇴임 직후에 정장(正裝)을 다 내다버렸습니다. 41년을 입었으니까 그만 입어도 좋을 것이었습니다. 벌거벗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허술하지만 편안한 옷들입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렇게 입고 다니면서 백화점이나 식당, 온갖 가게, 하다못해 택시기사나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홀대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같잖은 것들……' 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때로는 울컥 화가 치솟으면서 자신도 결국 '같잖은 인간'이라는 걸 나타냅니다. "저―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 있습니까?" 전철 환승역 책 가게를 지나다가 가게 주인인 듯한, 노트북에 눈을 박고 있는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대답은 미루고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역겹다는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하안국이 싫어요오?".. 2015.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