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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종이책 읽기

by 답설재 2015. 12. 13.

 

출처를 메모해두지 못했습니다.

 

 

 

 

 

 

개인의 생활사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연구에 따르자면, 혼자만의 독서가 소수 엘리트 계급의 특권적인 행위에서 점차 보편적인 인간의 자아 발견과 취향 형성, 지식 습득의 행위로 대중화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중략)… 이제 21세기의 독자는, 책을 대체한 모바일 기기의 등장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독자'는 뉴스와 기사의 형태로 전달되는 정보에서 지식을, 다양한 콘텐츠에서 사회와 자아를, 유저가 게임 속 캐릭터를 연기하며 즐기는 RPG(Role Playing Game)에서 서사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에서 타인(다른 독자)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사람들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중략)…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실은 경제 능력과도 무관하다.

 

 

현대문학2015년 11월호에서 읽었습니다.'패턴' '동조' 또는 당신이 '장강명'을 이해하는 방식」(서희원)이라는 글이었습니다.

 

 

# 1

 

휴대전화가 급격한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저녁에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지나는데 집 앞에 나와서 뭐라고 혼자서 열을 올리며 지껄여대는 사람이 눈길을 끌었고, 저 쪽에서 또 그렇게 하고 있는 다른 한 명을 보았습니다.

'마주보며 핏대를 올리던 세상이었는데, 각자 알아서 떠들어대는 세상이 되었구나……'

 

 

# 2

 

서너 해 전의 일입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다가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걸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전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건 하나의 변화이긴 하지만 '맞이방'의 풍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열차를 기다리는 열한 명 중에서 나와 한 아주머니를 뺀 아홉 명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아홉 명은 일행이고, 공동으로 급히 여행 정보 같은 걸 좀 알아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 3

 

두어 해 전쯤,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옆자리에는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두 명의 젊은이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말없이 밥을 먹었고, 식사가 끝나자 드디어 나이가 많은 쪽이 "가자." 하여 일어섰을 뿐이었습니다. 서로 다투다가 점심을 먹게 된 사이 같았습니다.

그즈음, 흡연하는 젊은이들은 노인을 봐도 외면하지 않게 되었고, 이쪽에서 외면해 주게 되었습니다. 전철을 탄 청소년들은 마주서서 대화를 나무며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각자의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게임 자체는 아닙니다. 어제 일어난 일이거나 영화 이야기이거나 여자친구 이야기일 것입니다.

 

 

# 4

 

나는 꼭 읽을거리를 갖고 나갑니다. 좀 멀리 가는 열차라면 수십 페이지를 읽을 수 있으니까 여행다운 맛이 나지만, '시내 여행'도 괜찮은 편입니다.

요즘은 혹 정신없이 읽고 있는 사람을 보면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집니다. 무슨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렇지만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실제로 물어보면 실망하기 좋을 것입니다. 대중이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얻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즐기는 공공장소에서 소설 나부랭이를 정신없이 들여다보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라면……

 

 

# 5

 

전철에서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웃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집을 나서면 웃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 저렇게 멋진 경치를 오늘 처음 보는구나. 언제 한번 작정하고 자세히 보며 가야지.'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흘낏 바라보며 한두 번 놀란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읽을 책이 없는 날이 없으니까 그럴 기회가 오지를 않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면, 골똘히 생각해볼 만한 일도 더러 있습니다. 삼십 분? 아니 이십 분? 적어도 십 분만 할애하면 A4 몇 장 분량의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케케묵은 소설을 들고 객쩍은 그 이야기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들여다봅니다.

 

 

# 6

 

복잡한 열차 안에서는 책을 펴들기도 미안합니다. 앙증맞은 스마트폰 시대에 넙적한 책이라니……. 속으로 이러겠지요. '꼴에 책을 읽는다고?'

 

읽을 책들이나 읽은 책들을 책장에 넣어두면 흐뭇할 때도 있지만, 자꾸 늘어나서 부담스럽고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물리학자 김 교수는 종이책은 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파트에는 책장도 없었습니다. 석학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데…… 나도 그만 스마트폰으로 볼까……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읽어야 할 책과 읽은 책은 저 서장에도 있고, 스마트폰에도 있게 되어 좀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기능, e북의 환경과 시스템 같은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도 약간 부담스럽고 걱정이 됩니다.

 

 

# 7

 

종이책은 당장 읽지는 않으면서도 표지를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훌훌 넘겨보고, 좀 에로틱하게 냄새를 맡아보거나 쓰다듬어 보는, 뭐랄까 스킨십 같은 걸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이책을 보겠느냐,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로 e북을 보겠느냐, 지금 당장 새로 결정을 하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종이책 쪽으로 기울어지는 마음이 95%가 넘습니다.

아직은 아무래도 '웃기는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 8

 

하기야 나는 어린시절부터 이미 "웃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무슨 조사지의 '취미'란에 '독서'라고 써넣었더니 선생님께서 경멸스럽다는 표정이 되었습니다.

"인마! 독서는 아무나 다 해야 하는 거야……"

다른 아이들도 다 들을 수 있도록, 뭐라고, 한참, 퍼붓고 싶은 것들을 다 쏟아냈겠지만,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내가 겪고 본 것들은 두고라도 저 위의 저 말을 좀 전해주고 싶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실은 경제 능력과도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