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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루이저 린저 『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

by 답설재 2016. 1. 6.

루이저 린저 Luise Rinser

『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

이강빈 옮김, 홍신문화사 1995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했던 것일까?……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이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로써 상대를 설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었습니다. 오십 년이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자주 떠올렸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언젠가 그어 놓은 밑줄을 보았습니다. 니나가 뢰벤 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얼마 전에 내가 당신을 찾아갔을 때, 나는 이야기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것이 아주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초라해지고 두 배나 더 고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속을 털어놓으면 털어놓을수록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과 나, 즉 우리는 이 공감을 완전하게 또 순수하게 갖지 못하고 있으며, 또 영원히 가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현명하십니다. 나는 당신의 업적에 대해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의 우정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 곁에 있는 것은 나를 부자유스럽게 만듭니다. 당신은 나를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당신은 나를 수줍은 소녀로 만들며, 또한 나에게서 성숙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그 둘 가운데 어느 것도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나는 자유롭고 싶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분명히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몇백 개의 가능성이 내 속에 들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있어 아직 미정이고 완전히 시발점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무엇에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직 나를 모릅니다. 이상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로 나 자신을 모릅니다. (……) (127~128)

 

 

 

 

"아, 나는 그렇게도 많은 것들을 좋아해. 거의 모든 것을 말이야."

꽃을 빈 깡통에 꽂으려고 일어서면서 니나는 또 말했다.

"그리고 이토록 지독히 저주스러운 삶도."(18)

 

니나는 예쁘고 자유롭고 총명하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뢰벤 슈타인은 니나를 사랑하는 데 평생을 바칩니다. 나치 정권하에서도, 인간 사회의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갈망하고, 부당한 타협을 거부하며, 자신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자 합니다. 양심에 충실하고 자신의 선택에 의한 고난은 감수하는 강인하고 열정적인 여성입니다.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의 어머니이면서도, 일생을 통하여, 그 두 아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뢰벤 슈타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으므로 그런 점에서는 행복한 여성입니다.

 

 

 

 

뢰벤 슈타인은 기회가 충분할 때조차 정작 니나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한때 니나를 가졌던 동료 교수가 그에게 한 말에 의하면 그는 생각은 많이 하고 행동은 적게 하는 사람입니다. 니나와의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바보스러울 정도입니다. 기꺼이 온갖 희생과 노력을 감수하면서 늙어갑니다.

 

니나는 나를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게, 사실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세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니나의 맑은 눈초리와 물음은 나를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 버렸다.

(……)

나는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무기를 내던졌다. 큰 환멸이 나를 떨게 만들었다. 니나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나는 분노에 넘쳐 생각했댜. 니나는 요정과 같은 존재이다. 유혹적이고 천진난만하면서도 도덕가인 체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고 붙잡을 수 없는 여자이다. 그러나 나는 니나가 언젠가 여자가 되고 나면 가지게 될 얼굴을 이미 보았다. 니나가 자기의 인간적인 영혼을 인식할 때까지는 무슨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나야 할 것인가?(123~124)

 

나는 그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여자를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새로운 고통과 비애와 불쾌와 격정과 질투와 그밖에 이미 극복한 것으로 생각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끌려들어간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나는 소름끼치는 매혹을 느끼면서 니나가 나의 운명임을 다시 확신한다. 나는 니나를 축복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저주한다.(284)

 

 

 

 

뢰벤 슈타인은 18년간 쓴 일기를 죽어가면서 니나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 여인 니나의 자유분방함을 인내하고, 목숨을 구해주고, 온갖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면서 겪는 사랑과 갈등, 번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일생을 기꺼이 바친 한 남성의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작가 루이저 린저는 사랑과 고독, 절망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이 이야기(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니나는 루이저 린저의 분신이 아닌가 싶고, 루이저 린저가 그리는 남성상이 뢰벤 슈타인이었을 것입니다.

 

『생의 한가운데』는 "대화로써 상대를 설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랑이라면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두 번째 읽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