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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by 답설재 2015. 12. 18.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1

 

 

 

 

 

"써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조지 오웰의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입니다.

이 에세이집 앞쪽의 「스파이크」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를 읽으며 생각한 것입니다.

 

유럽의 역사에 어두워서 '내가 공부를 하지 않은 게 다 드러나는구나……'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번역서 같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스파이크the Spike

교수형A Hanging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

서점의 추억 Bookshop Memories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Why I Joined the Independent Labour Party

마라케시 Marrakech

좌든 우든 나의 조국 My Country Right or Left

영국, 당신의 영국 England Your England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Wells, Hitler and the World State

스페인내전을 돌이커본다 Looking Back on the Spanish War

시와 마이크 Poetry and the Microphone

나 좋을대로 As I Please

민족주의 비망록 Notes on Nationalism

당신과 원자탄 You and the Atom Bomb

과학이란 무엇인가? What is Science?

문학 예방 The Prevention of Literature

행락지 Pleasure Spots

"물속의 달" "The Moon under Water"

정치와 영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두꺼비 단상斷想 Some Thoughts on the Common Toad

어느 서평자의 고백 Confessions of a Book Reviewer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Politics vs. Literature: An Examination of Gulliver's Travels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How the Poor Die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Lear, Tolstoy and the Fool

정말, 정말 좋았지 Such, Such Were the Joys

작가와 리바이어던 Writers and Leviathan

간디에 대한 소견 Reflections on Gandhi

 

대부분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작가들은 글의 시작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쓸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에세이들을 봤습니다.

 

늦은 오후였다. 우리들 마흔아홉 명은(마흔여덟은 남자고 하나는 여자였다) 스파이크(부랑자 임시숙소)가 열릴 때까지 대기소인 풀밭에 누워 기다렸다.(「스파이크」)

 

버마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이었다.(「교수형」)

 

남부 버마의 몰멩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코끼리를 쏘다」)

 

헌책방에서 일하던 때 주로 느낀 것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이었다(일해보지 않으면 매력적인 노신사들이 송아지 가죽으로 장정한 고서들을 마냥 열독하고 있는 천국 같은 곳으로 상상하기 쉽다).(「서점의 추억」)

 

스페인내전은 아마도 1914~1918년의 대전大戰 이후 그 어떤 사건보다 풍성한 거짓을 낳았을 것이다.(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

 

 

 

표제작 "나는 왜 쓰는가"에서 밑줄 그은 부분입니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289~290)

 

그는 글을 쓰는 동기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하면서 이것들은 작가들마다 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는 다를 것이라고 했습니다.(292~294)1

이렇게 블로그에 무얼 쓰는 것도 글을 쓰는 것이라면 나는 이 네 가지에 대해 어떤 상태인가, 주제넘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작가이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층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2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가령 이런 것들입니다.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297)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297)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3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地上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297~299)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地上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철학자나 작가가 이런 표현에서는 무한한 신뢰를 느끼게 됩니다. 조지 오웰의 이 말을 읽으며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4

 

"사랑과 지식이 내게 허용되는 한, 그것들은 나를 천상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연민은 언제나 나를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식민지 버마에서 5년간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하며 제국주의의 실체를 파악한 것도 그렇지만, 이후 파리와 런던에서, 잉글랜드 탄광촌에서 하층민 생활을 하며 빈곤과 좌절을 경험하고 노동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한 것,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것 등, 이런(경탄할!) 에세이를 쓸 수 있었던 배경으로서의 그의 삶도 놀라웠습니다.5

 

주어진 대로 사는 것만도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으로서는 '이것이 주체적인 삶이구나!' 싶은 것입니다.

 

 

 

..................................................................

  1. 1. 순전한 이기심, 3. 역사적 충동, 두 가지에 대해서는 전문을 옮겼습니다. 3은 짧아서 발췌할 수가 없었고, 1은 전체적으로 속이 후련한 설명이어서 단 한 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옮겨놓고 싶었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여러분들도 사실은 이런 거지요? 이 사람이 거짓말 할 사람은 아니지요.'
  2. 여기에 대해서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럴게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안 맞는 직업을 택하여 5년을 지냈고(버마에서 '인도 제국경찰' 노릇을 했다) 그 뒤로 빈곤과 좌절을 겪었다. 그로 인해 권위에 대한 나의 타고난 반감이 커져갔고,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3.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쓴 「정말, 정말 좋았지」에는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지적 모순에 대해 느꼈던 것들을 열거하며, 가령 돈과 특권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자기 힘으로 이루는 것보다 물려받는 게 낫다는 사고방식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내가 그런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리는 만무했다. 그곳은 그속에서 태어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속할 수 없는 곳' '최상층이 정말 부러운 것은 젊을 때 부유하다는 점'이었다고 했습니다.(413~414)
  4.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최혁순 옮김(문예출판사, 1971, 2013 3판) 이 책을 소개한 졸문 바로가기 주소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457
  5. 오웰은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신이 누리던 특권을 내팽개친 사람이다.(역자후기 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