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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주제 마우루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by 답설재 2015. 11. 24.

주제 마우루 바스콘셀로스 José Mauro Vasconcelos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Meu Pé de Laranja Lima』

박동원 옮김, 동녘, 2003(4판1쇄)

 

 

 

 

 

 

바람의 계절에는 밍기뉴*도 뒷전이었다. 식구들이 나를 몹시 때리고 벌을 주느라고 가둬두는 때나 겨우 찾아가는 정도였다. 한 차례 맞고 나서 또 맞게 되면 어찌나 아픈지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165~166)

 

아빠는 잔디라 누나에게 한번만 더 그런 욕을 한다면 나를 가루로 만들어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숨 쉬는 것조차 두려웠다. 내 라임오렌지 나무 그늘 속에 있을 때가 그나마 맘이 가장 편했다.(214)

 

마치 독서교육의 기본 공식인양 수많은 학교에서 '필독(혹은 권장)' 도서로 지정하고 있는 이 책에서,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주인공 제제가 거의 '일상적으로' 두들겨 맞는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을 가려봤습니다.

이 책을 필독도서로 정하는 이유는 어떤 것일까요?

집에서 매를 맞더라도 굳건하게 살아가거라!(?)

세상에는 이렇게 얻어터지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

 

 

 

제제는 자신의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 있어서 그 악마가 욕설을 가르치고, 나쁜 짓도 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게 하면 그런 걸 가르쳐 주고 합리화시켜 주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나도 제제처럼 부모 욕도 하고 더러 나쁜 짓도 하는데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한다면?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제제가 자신이 들어본 노래 중에서 최고인 탱고를 부릅니다. 실직 중인 아빠를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벌거벗은 여자를 원해

밝은 달빛 아래서

여자의 몸을 갖고 싶어……

 

"제제!"

"네, 아빠."

나는 벌떡 일어섰다. 노래가 아빠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듣고 싶은 건가 보다.

"그게 무슨 노래니?"

나는 다시 불렀다.(216~217)

 

내 얼굴은 얼얼함으로 거의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내 눈은 아빠의 손찌검에 따라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나는 노래를 그만두어야 할지 아빠가 시키는 대로 계속 불러야 할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픈 가운데에서도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것이 내가 맞는 마지막 매가 되도록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아빠가 손을 잠시 거두고 노래를 더 불러 보라고 소리쳤지만 난 부르지 않았다. 그 대신 경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살인자! 날 죽여라. 날 죽이고 감옥에나 가라."

아빠는 화가 울컥 치밀었는지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차고 있던 허리띠를 풀었다.(218~219)

 

 

 

이 책은 초등학교 필독서로는 적절치 않다는 걸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아니 우선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정말로 좋은 책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교사와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읽지 않았다면 이 책에 대해 묻는 아이에게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스럽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고, 아이들의 필독서를 교사와 학부모는 읽지 않는 현상은 잘못된 것이고 무책임한 일이라는 걸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제제는 장난꾸러기지만 여느 아이처럼 순수하고 예민하다. 조용한 아이만 있으면 어른들이 편하기는 하겠지만, 장난꾸러기나 조용한 아이나 다 소중하다.

# 제제는 재미있는 아이다.

# 제제는 우리가 아이로부터 배울 것도 있다는 걸 가르쳐 준다.

# 뽀르뚜가(마누엘 발라다리스의 애칭)가 그렇게 한 것처럼 이 아이의 대부가 되어 주고 싶은 어른이 있을 것이다.

# 제제가 있는 브라질이 좋은 나라일 것 같다.

# 교사들은 제제를 찾아내기가 쉬울 것이다. 제제는 어느 곳에나 있고, 그 아이는 제제처럼 사랑을 받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 가르친다는 것은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공부', '문제풀이'가 가장 큰 과제는 아니다.

# 아이를 대할 때는 그 아이의 영혼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무조건"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 가난한 아이를 홀대하는 것만큼 유치한 짓은 없다.

# 아이를 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선 감동적인 책을 좀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다루는 데 소홀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교사와 학부모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이 특히 깊은 것은 역설적이다.

# ……

 

 

 

아이유라는 가수가 노래한 Zezé의 가사를 찾아봤습니다. 제제, 그 5세 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해석했다는 비판 때문이었습니다.

 

…(전략)…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잎사귀에 입을 맞춰

장난치면 못써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못써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여기서 제일 어린잎을 가져가

하나뿐인 꽃을 꺾어가

 

Climb up me

Climb up me

…(후략)…

 

책을 읽은 소감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노래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노래나 독후감이나 다 같은 것일까 봐 조심스럽습니다. 사실이라면, 나도 이 책에 대해 왜곡된 여러 가지 생각을 늘어놓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워낙 유명한 책,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책'이어서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다만,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 제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제제 같은 아이가 보이면 모두들 잘 대해 주면 좋겠다는 건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 제제가 라임오렌지 나무에게 붙여준 애칭. '슈루루까'도 그 나무의 애칭.
** 예를 들어 다음 페이지를 보면 그 악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0, 33, 37, 38, 148, 2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