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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블라디미르 나브코프 《롤리타》

by 답설재 2015. 11. 10.

블라디미르 나브코프《로리타》

申東蘭 옮김, 모음사 1987 13판

 

 

 

 

 

 

 

아주 유명한―아마 읽지는 않았으면서도 아는 사람이 많은―소설이어서 조심스럽습니다. 결말에 대해 뭘 좀 아는 척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들은 에로틱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람들이 소설을 사보기를 거부한 것은 (…) 흑인과 백인이 결혼에, 완전히 그리고 크게 성공해서 많은 어린이들과 손자 손녀 아이들을 얻게 되는 것과, 무신론자가 행복하고 유용한 인생을 살다가 1백6살에 잠자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어떤 지적인 심사위원은 어린 아메리카를 유혹하여 더럽히는 늙은 유럽으로 묘사했다."

"Y출판사는 소설 속에 한 명도 선량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유감스러워했다."

"출판업자 Z는 만일 그가 <로리타>를 출판한다면, 그와 내가 감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블라디미르 나브코프의 서문에 있는 구절들입니다. 더 나열하고 싶은 내용은 그만두고, 나브코프의 목소리 두 가지를 덧붙입니다.1

"나는 교훈적인 소설을 읽거나 쓰는 작가가 아니다. (…) 나에게 있어 소설작품은 (…) 「미학적인 기쁨」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에게 제공해 줄 때만 존재한다."

"나의 인물인 험버트는 외국인이며 무정부주의자이다. 그래서 요정과 같은 묘령의 소녀를 사랑하는 이외에 나는 그와 의견을 일치하지 않는 바가 많다."

 

 

 

"20세기 문학의 위대한 星座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비 채집에 광적이기도 했던 러시아 출신의 이 미국 작가의 대표작 <로리타>는 거센 돌풍으로 많은 파문을 일으켰지만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불후의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至高하고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어디에 또 있을 것인가!"

 

표지 아래쪽에 보이는 글입니다. 멋진 문장이긴 하지만, 어린 소녀 '로리타'가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게 빠져 있습니다. 그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 싶고, 이와 유사한 형태의 다른 소설이나 영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혼잣말로 '롤리타를 패러디했구나' 싶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설, 영화가 그런가, 물으면 대답하지는 않겠습니다.

 

 

 

로리타. 내 생명의 빛, 내 가슴의 불꽃. 나의 죄악, 나의 영혼. 로―리―타. 혀 끝은 입천장 밑에서 구른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마지막 세 걸음째에 이빨과 만난다.

로(Lo) 리(Lee) 타(Ta)

아침의 그녀는 로(Lo)였다. 신발을 신지 않고 잰 키가 4피트 10인치2인 평범한 로였다. 바지를 입으면 로라, 학교에 가면 돌리였으며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였다. 그러니 내 품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로리타였다.

그녀말고는 또 없었는가? 있었다. 그녀 아닌 다른 여자가 사실, 어느 여름날 최초의 어떤 계집아이를 내가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로리타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 그게 언제냐고? 로리타는 태어나기도 전에 나이만큼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그 해 여름이었다. 바닷가의 왕국에서, 이 엄청난 산문 스타일의 글을 살인자가 썼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늘 참작해주기 바란다.

배심원 석의 신사 숙녀 여러분, 증거 서류 제 1번에는 대천사들이, 고상한 날개가 달린, 잘못 전해들은, 단순한 대천사들이 무엇을 시기했는지 그것이 나와 있오. 이 가시들의 엉킴을 봐주기 바라오.

 

36장으로 된 이 소설의 제 1장입니다.

소설의 결말을 확인하여 "좀 아는 체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등장인물과 구성이 특이하긴 하지만, 결국 어린 소녀를 사랑한 험버트가 범죄 수사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처럼 경찰에게 쫓기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이 소설이라고, 오랫동안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끝나게 하는 것보다는 험버트라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자멸하는 방법, 이를테면 몹쓸 짓을 한 죄인이라면 스스로 말라 비틀어져 죽는 꼴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험버트는 35장에서 로리타를 더럽힌 자를 찾아갑니다.

 

이 자를 사로잡으려면…… 그 수많은 회개와 격노의 나날들…… 땅딸막한 손등에 난 저 시커먼 털…… 백 개의 눈으로 그의 자줏빛 명주옷과 털로 뒤덮인 가슴을 더듬으며 상처와 혼란, 그리고 고통의 음악을 미리 맛본다는 것…… 내 사랑을 더럽힌 이 인간 이하의 사기꾼의 기죽은 모습을 본다는 것…… 아, 내 사랑, 이것은 정말 견딜 수 없는 희열이로구나

3

험버트는 그에게 그가 저지른 짓을 설명하고 그의 변명을 듣고, 권총을 쏘아 죽여버립니다. 아니, 권총을 쏘아 죽이는 건 맞는데, 그게 한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총 쏘는 게 어설퍼서, 서로 뒤엉켜 발버둥을 치다가 권총을 놓치기도 하고, 어디를 어떻게 쏘아야 영 죽는지, 몇 번이나 쏘고 또 쏘고, 그러다보니까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집니다. 서부극이나 전쟁 영화, 우주에서 만난 외계인들이 죽어나자빠지는 것처럼 '탕!' 하면 '픽' 쓰러지지 않고 옥신각신하여 '이게 어떻게 되나……' 마치 내가 복수를 하러 나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귀신이 아니고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그를 합리화시킬 때마다 느꼈던 그 괴로움을 이제는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4을 느끼며 자동차도 버리고 언덕에 올라 경찰들을 기다리며 시가지로부터 음악처럼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그렇지만 로리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화음―를 듣습니다.

 

 

 

험버트의 시적(詩的)인 기록은 다음과 같이 끝납니다. 사람들이 그의 기록을 읽을 때쯤이면 이 세상에 그도 로리타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결말은 무슨 수사극 같다는 나의 기억은 매우 유치한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나는 지금 들소와 천사를 생각하고 있다. 오래 가는 그림물감의 비결과 예언의 소네트를, 그리고 예술의 피난처를, 이것이 로리타 너와 내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불멸인 것이다.

나의 로리타.

 

 

 

                             새로운 모습의 《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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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11쪽, '로리타'에 대하여(블라디미르 나브코프)

2. 계산해 보니까 147.32센티미터입니다.

3. 334~335쪽.

4. 347쪽.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Ⅱ https://blueletter01.tistory.com/7639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