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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by 답설재 2015. 10. 27.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퇴임 직후에 정장(正裝)을 다 내다버렸습니다. 41년을 입었으니까 그만 입어도 좋을 것이었습니다. 벌거벗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허술하지만 편안한 옷들입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렇게 입고 다니면서 백화점이나 식당, 온갖 가게, 하다못해 택시기사나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홀대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같잖은 것들……' 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때로는 울컥 화가 치솟으면서 자신도 결국 '같잖은 인간'이라는 걸 나타냅니다.

 

"저―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 있습니까?"

전철 환승역 책 가게를 지나다가 가게 주인인 듯한, 노트북에 눈을 박고 있는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대답은 미루고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역겹다는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하안국이 싫어요오?"

 

 

 

 

그 왜 있지 않습니까? 마침 심심하던 차에 한심한 늙은이 하나 잘 걸려 들었다, 손 좀 봐 주어야겠다는 표정…….

'어? 이 여자가 지금?' 나도 금방 또 잘못 걸렸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아주머니! 지금 이 나라에 대한 내 마음을 테스트하시겠다는 겁니까?"

 

순간 그 여자가 얼른 정신을 차린 표정이 되었습니다. 내 대답이 좀 난해하게 나갔던 모양이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지 마세요! 정신 차리세요!"

저쪽에 있던 젊은 여직원이 뭐라고 하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됐어요!"

그대로 돌아섰습니다.

 

"남루하다고 홀대하는 여자가 있는 나라는 싫다!" 그렇게 말하면 소극적이겠지요? 내가 못난 것이겠지요?

"한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다. 돈만 많으면……"

그런 말도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해서 돈도 모으고,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아무래도 입에 바른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은 칠십부터!"고 "구구팔팔"이라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을 것입니다.

 

 

 

 

의미 있는 논평을 하고 싶다면 우선 계나의 이야기부터 잘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나라는 젊은 여성이 들려주는 체험담입니다. 돈이 많으면 이런 나라가 없을 만큼 살기 좋은 나라를 떠나 호주로 이민을 가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려준 것처럼 구성한 소설입니다.

'사회 초년병' 계나의 눈으로 본 한국과 호주 사회가 적나라하게 그려지지만 가령 한국이 싫은 이유를 제시하는 데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하기야 그 이유가 종합적일 필요도 없고, 그런 것만 애써 나열하면 그게 무슨 소설이겠습니까?

다음은 작품해설에 있는 구절입니다.

 

생득적인 재력이 전제되면, 사교육과 성형을 통해 학력과 체력은 후천적으로 쉽게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타고난 재력이 없다면 (……)(195)

 

그 안에서 각자 열심히 노력해 보라는 조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운을 빈다는 책임 없는 인사와 마찬가지다. 이는 계나의 말마따나 톰슨가젤한테 사자와 맞서 싸워 보라는 종용이다.(196)

 

교육에 대한 표현은 없는가 살펴봤더니 이런 이야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호주에서 만난 한국인 청년 재인이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사가 될까 한다는 말에 계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호주에서 사는 게 급선무이긴 해도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잖아.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 우리 호주에 온 지 고작 2년이잖아. 그게 아깝다고 진로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인 거 같아.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대학 다닌 거나 고등학교 다닌 거나 지금 이 자리에 서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됐고 다 낭비였지, 뭐."(109)

 

 

 

 

계나는 자신이 살고 싶은 곳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봤어. 나는 먹는 거에 관심이 많아서 맛있는 음식이랑 과자를 좋아하지. 또 술도 좋아해. 그러니까 식재료랑 술값이 싼 곳에서 사는 게 좋아. 그리고 공기가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드는 동네가 좋아. 또 주변 사람들이 많이 웃고 표정이 밝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 매일 화내거나 불안해하는 얼굴들을 보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런데 그게 전부야. 그 외에는 딱히 이걸 꼭 하고 싶다든가 그런 건 없어.(152)

 

이제 와서, 이 나이에, 이 나라를 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어디 그게 쉬운 일입니까. 호주로 간 계나도 별 볼 일 없습니다.

이 나라를 "괜찮은" 곳으로 바꾸거나, 그게 내 힘으로는 어려우면 "괜찮은" 곳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거나, "괜찮은 점"을 찾으면 될 것입니다.

 

 

 

 

계나가 호주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 애인 지명은 이렇게 말하며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한국이 그렇게 싫은 이유가 뭐니? 한국 되게 괜찮은 나라야.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1인당 GDP를 따지면 20위권에 있는 나라야. 이스라엘이나 이탈리아와 별 차이 없다고."(61)

 

그런 논리로는 설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GDP 같은 게 밥 먹여 주니?"

이 나라가 "괜찮은 곳"이라는 증거를 모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 소설을 쓴 이유에도 그런 것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한국이 정말로 싫으면 이런 소설을 썼을까 싶어집니다.

 

그 서점에서는 괜히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 사장님이 이 허름한 사람에게 왜 그러세요? 설마 하니 제가……" 어떻고 하며 순하게 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소설 읽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피차 그렇게 삭막하게 대하니까 점점 더 싫어질 것 아닌가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