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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2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Ⅰ 퇴임 직후에 정장(正裝)을 다 내다버렸습니다. 41년을 입었으니까 그만 입어도 좋을 것이었습니다. 벌거벗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허술하지만 편안한 옷들입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렇게 입고 다니면서 백화점이나 식당, 온갖 가게, 하다못해 택시기사나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홀대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같잖은 것들……' 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때로는 울컥 화가 치솟으면서 자신도 결국 '같잖은 인간'이라는 걸 나타냅니다. "저―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 있습니까?" 전철 환승역 책 가게를 지나다가 가게 주인인 듯한, 노트북에 눈을 박고 있는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대답은 미루고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역겹다는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하안국이 싫어요오?".. 2015. 10. 27.
『마리 바슈키르체프의 일기』 …(전략)… 요즘 마리 바슈키르체프(러시아의 요절한 천재 여류 화가: 옮긴이)의 일기를 읽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으세요? 한번 들어 보세요. 지난밤 나는 절망에 사로잡혀 신음 소리를 토해 내다 결국 식당에 있는 벽시계를 바닷속으로 집어 던지고야 말았다. 이 대목을 읽으니 제가 천재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덜더군요. 천재들은 주위 사람을 지치게 하고, 가구나 마구 부수는 그런 사람이 틀림없을 테니까요. 세상에, 비가 계속 퍼붓네요! 오늘 밤엔 교회까지 헤엄쳐서 가야 할까 봐요. 아저씨의 영원한 주디 올림 동화『키다리 아저씨Daddy Long Legs』(진 웹스터)에 나오는 장면입니다(김양미 옮김, 인디고, 2014, 120). 마리 바슈키르체프의 그 일기를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책이 번역되진.. 2015. 10. 23.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1, 『뉴스의 시대 The News-A User's Manual』 문학동네, 2014 ♣ 모든 뉴스를 (30쪽짜리 신문과 30분짜리 방송을 통해) 한꺼번에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를 공급할 책임을 진 매체들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277) "정말 그래!" 싶긴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30쪽짜리 신문, 30분짜리 방송을 통해 뉴스를 봤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알랭 드 보통은 마치 옛일처럼 저렇게 썼습니다. 그게 참 통쾌하고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써놓고는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내면 탐구에 반대.. 2015. 10. 19.
마츠다 미히로『그만두는 힘 Quit to Begin』- 옛 소녀 엘라에게 - 마츠다 미히로 지음·김의경 옮김 『그만두는 힘 Quit to Begin』(위너스북, 2010) - 옛 소녀 엘라에게 - Ⅰ 정년퇴임을 한 그해 여름쯤, 선물 받은 책입니다. 시집 선물을 취미처럼 여겼다는,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아름답게' 보낸, 아직도 그 취향을 그대로 지닌 소녀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 '소녀'로부터는 몇 권의 책을 더 받았지만, 모든 걸 내려 놓아야 하는 퇴임과 함께 심장병까지 찾아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은 것 같았던 그 시기에,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가슴에 와 닿아서, 그 '소녀'가 모든 것을 그만두어야 하는 심정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였는지 표지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 이제 겨우 살펴봤습니다. '뭐야! 다 그만두라는 것도 아니잖아!' '그만둘.. 2015. 10. 11.
알프레드 아들러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알프레드 아들러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오구라 히로시 해설/박미정 옮김, 미래엔, 2015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는 오스트리아 심리학자로,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과 함께 현대 심리학의 거장이었다고 이 책의 표지에도 저렇게 나타나 있다. 책의 표지나 판권 페이지에는 앞프레드 아들러가 짓고 오구라 히로시가 해설한 책이라고 되어 있지만, 책을 읽어보기로는 해설을 이렇게 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의아했고,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에 따라 오구라 히로시가 직접 사례를 들며 설명한 것이므로 자기계발에 관한 오구라 히로시의 저서가 분명했다.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열 가지 주제를 설정하고 각 주제를 다시 몇 가지의 소주제로 나.. 2015. 10. 8.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압록강은 흐른다』 범우사, 2004 독일에서 살다 간 이미륵1이 1946년에 출간한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70년 전에 초판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것은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1973년 가을이었습니다. 황해도 해주에서 보낸 소년 시절 이야기2와 서울에서의 유학 생활,3 독일을 찾아가는 여정4을 그렸으므로 자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스물네 편의 일화를 엮는 작품으로도 보였습니다. 불과 오십여 년, 산업화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간 모든 것들이 영롱하게 빛나면서 다 잊고 만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일제의 침략과 신구 문화가 교차하는 시기의 사회상도 새삼스럽게 다가오고, 상하이에서 독일까지 여객선 폴르카 호와 기차를 타고 가며 보고 느낀 것들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 2015. 10. 3.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Being Mortal』 김희정 옮김, 부키, 2015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의사 아툴 가완디가 죽는 방법에 관하여 자신의 가족까지 등장하는 실감 나는 '드라마'를 보여주며 설명하였습니다. 다만 전문적인 소설가처럼 '기승전결'로 구성하지는 않고 죽음의 과정에 따라 '독립적인 삶―무너짐―의존―도움―더 나은 삶―내려놓기―어려운 대화―용기'로 나누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나 내용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풀어 놓았습니다. 다음은 각 장이 시작되는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본문의 일부를 모은 것입니다. 1. 독립적인 삶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현대화는 사람들에게―젊은이와 노인 모두에게―더 많은 자유와 통제력을 누리는.. 2015. 9. 29.
르 클레지오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Frida Kahlo & Diego Rivera』 르 클레지오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Frida Kahlo & Diego Rivera』 백선희 옮김, 다빈치, 2011 완전 개정판 프리다 칼로 1949 캔버스에 유채 70×60.5cm 1949년에 그린 가장 복잡한 그림 중 하나인 에서 프리다는 자신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을 재창조한다. 식물의 몸을 한 인디오 유모, 음과 양의 힘, 아즈텍의 야성 신, 이마에 지혜의 눈을 달고 양손에 불타는 심장을 움켜쥔 채 테우아나의 품에 안긴 남녀 양성 아기 디에고, 여주인의 발 아래 웅크린 애견 세뇨르 솔로틀, 옛 멕시코 신화에 따르면 언젠가 솔로틀이 태양의 집에 도달하게끔 죽음의 강을 건너는 걸 도울 카카오 색의 개.(이 책 259쪽의 설명) Ⅰ 프리다 칼로전에서 자화상들도 보고, 이 책도 읽고, 주로 신.. 2015. 9. 20.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Rue des boutiques obscures』 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Rue des boutiques obscures』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2015 기억 상실자 기 롤랑(페드로 맥케부아)이 바스라진 과거를 복원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불확실하고 모호함을 쓸쓸하고 아름답게 엮어갑니다. 그의 '과거찾기 여행'에 따라나선 것처럼 읽혔습니다. 추측해보고, 확신하고, 실망하고, 아득함, 호기심, 두려움 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기 롤랑이라니, 프랑스 인이고, 분명히 초면(初面)인데, 이 작가의 다른 소설 『도라 브루더』에서 만난 낯익은 사이 같았습니다. 47개 장(章) 중에는 몇 페이지 짜리도 있지만 때로는 딱 한 줄일 때도 있어서 불안, 초조,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옮긴이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에 대해 ".. 2015. 9. 10.
『책의 우주』 『책의 우주』 움베르트 에코1, 장클로드 카리에르2 대담 장 필리프 드 토낙 사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1 에코 기억은 (…) 그 기능이 이중적입니다. 한 기능은 어떤 데이터들을 보존하는 것이고, 다른 한 기능은 우리에게 필요 없으며 우리의 두뇌를 쓸데없이 어지럽히기만 할 뿐일 정보들을 망각에 잠겨 들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카이사르의 마지막 아내 칼푸르니아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그녀가 흉몽을 꾸고서 카이사르에게 원로원에 가는 것을 만류했지만 결국 그가 암살당했던 날인 3월 15일까지는 말입니다. 카이사르가 죽은 후에는, 우리는 그녀에 대해 더 이상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그녀에 대한 정보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 2015. 8. 26.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TELLING TALES 』 나딘 고디머 엮음, 이소영·정혜연 옮김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TELLING TALES 』 민음사, 2010 Ⅰ 맨 앞의 「블도그」(아서 밀러)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강아지를 무릎에 둔 채 초록색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여인이 곁에 앉아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머리숱이 아주 많아 분명치는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떻게 해야 할지 점점 더 난감해졌다. 그러자 여인은 물을 마시겠느냐고 물었고 그러겠다고 하자 개수대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동안 소년은 일어나서 강아지를 다시 상자 안에 넣을 수 있었다. 유리잔을 들고 여인이 돌아왔다. 소년이 잔을 받자 그녀는 가운을 살짝 열어젖혀 공기가 반쯤 찬 풍선 같은 가슴을 내보이며 소년이 열세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2015. 8. 9.
코린 마이에르 『프로이트 FREUD』 글 코린 마이에르|그림 안 시몽『프로이트 FREUD』거북이북스 2014   "프로이트(SIGMUND FREUD)"라면 많이 들었다.이 만화책을 발견한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잘 됐다. 코린 마이에르? 우선 어떻게 요약할까 고민했을 테니까 개요 파악에는 요긴하겠지?''이 만화책 한 권으로 프로이트는 대충 졸업하기로 하자.'       재미있게 봤다.다만, 생각했던 '졸업'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걸 노린 책인지 알 수는 없지만 프로이트는 본격적으로 좀 알아볼 필요가 있는 학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마지막 페이지는 만화가 아니었고,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프로이트의 주요 저서꿈의 해석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정신분석 입문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늑대인간정신병리학의 문제들토템과 터부무의식에 관하여창조적인 작가와.. 2015.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