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책의 우주』

by 답설재 2015. 8. 26.

『책의 우주

 움베르트 에코1, 장클로드 카리에르2 대담

 장 필리프 드 토낙 사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1

 

 

 

 

 

 

 

에코 기억은 (…) 그 기능이 이중적입니다. 한 기능은 어떤 데이터들을 보존하는 것이고, 다른 한 기능은 우리에게 필요 없으며 우리의 두뇌를 쓸데없이 어지럽히기만 할 뿐일 정보들을 망각에 잠겨 들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카이사르의 마지막 아내 칼푸르니아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그녀가 흉몽을 꾸고서 카이사르에게 원로원에 가는 것을 만류했지만 결국 그가 암살당했던 날인 3월 15일까지는 말입니다.

카이사르가 죽은 후에는, 우리는 그녀에 대해 더 이상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그녀에 대한 정보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문화란 바로 이런 선별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화는 매일 그리고 매분, 인터넷을 통하여 지구상의 모든 칼푸르니아들에 대한 세부적 정보들을 우리에게 쏟아 붓습니다. (…)

 

(…)

 

카이에르 (…) 우리의 모든 질문들에, 심지어는 우리가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질문들에까지 대답해 줄 수 있는 전자 하인이 우리 옆에 있는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으로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우리의 보철물이 모든 것을, 그야말로 완전히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가요?

 

에코 종합의 기술이죠.

 

카이에르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배우는 행위 자체를 배워야 해요. 왜냐하면 배움의 올바른 방식도 배움을 통해 얻어지는 거니까요.

 

에코 그렇습니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어떤 정보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교사들의 딜레마가 있어요. (…) 나는 교사들에게 충고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낼 때 다음과 같은 조사를 시키라고요. 즉 제시된 주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열 개의 다른 출처를 찾아내어 그것들을 서로 비교해 보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학생은 인터넷에 대한 비판 감각을 훈련함으로써, 아무 정보나 덥석덥석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워털루 전투 참전자들의 이름을 모두 대기'라는 제목의 대담에서 교육에 관한 부분을 발췌했습니다.3 '닭들이 도로를 건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한 세기가 필요했다'는 제목의 대담에는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4

 

에코 과거에 우리는 긴 수련 기간을 마감하는 최종 시험을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이탈리아의 <학력 성숙도 고사>, 독일의 아비투어, 프랑스 바칼로레아 등이 그것이죠. 이 단계 후에는 대학에 갈 사람들 외에는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었어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아니 당신의 자녀가 죽을 때까지 유효했으니까요. 열여덟, 혹은 스무 살의 나이에 사람들은 인식론적으로는 은퇴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회사 직원들은 끊임없이 지식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지요. 학업을 마감하는 이런 큰 시험들이 상징하던 통과 의식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어요.

 

카리에르 (…) 우리는 『벚꽃 동산』5의 트로피모프처럼 영원히 학생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원시적>이라고 부르는 세계에서는 노인네들이 권력을 지녔습니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수했으니까요. 하지만 격변을 계속하는 세계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전자학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은 또 무엇을 가르쳐 주게 될까요?

 

 

'책의 우주'?

이렇게 많이 알고 있는 '꾼'들의 대담이라면 '책의 세계' '책의 세상'이라고 해도 충분하겠고, 아예 '책의 우주'라고 해도 괜찮겠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물론 책 예찬을 기본으로 하는 얘기들입니다.

 

에코 (…) 인쇄술의 발명은 분명히 하나의 진정한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쇄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종교 개혁도 성서의 보급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죠.

(...)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 이 책만큼 효율적인 발명품은 아직 없었습니다. 수백 기가바이트 용량의 컴퓨터라 할지라도 반드시 전원에 연결되어야만 하지요. 하지만 책에는 이런 문제점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책은 바퀴와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이상의 발전이 불필요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어요.6

 

책에 대해 들어볼 만한 모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제목에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라고 덧붙였을 것입니다. 다음은 이 책의 차례입니다.

 

책은 죽지 않는다

영구적인 저장 매체? 그것만큼 일시적인 것도 없다

닭들이 도로를 건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한 세기가 필요했다

워털루 전투 참전자들의 이름을 모두 대기

여과된 것들의 복수

오늘날 출판되는 모든 책은 포스트-인큐내뷸러7이다

기어코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려 하는 책들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천치들, 멍청이들, 혹은 우리의 적들이 준 것이다

그 무엇도 허영을 막을 수는 없다

바보 짓에 대한 예찬

인터넷, 혹은 <담나티오 메모리아이>8의 불가능성

불에 의한 검열

우리가 읽지 않은 모든 책들

제단 위의 책, <지옥>의 책

죽고 나서 자신의 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담을 하는 사람들로서는 잘 아는 내용이고 그걸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독자에 따라서는 답답하게 들린다는 걸 모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좀 생소한 화제일 때에는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잠깐만 참으면 곧 흥미롭고 쉽게 읽혀지는 부분으로 이어져서 전체적으로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습니다.

 

'찾아보기'는 이 대담에서 인용된 책, 예로 든 책의 목록으로 되어 있는데 무려 150권이었습니다.

 

 

 

.................................................................

1. 움베르트 에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없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사람. 저명한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적 촉수가 닿지 않는 분야는 없다. 이 지독한 '공부벌레'는 '언어의 천재'이기도 하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한다. 1932년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블로냐 대학 교수이다.(책 날개에서 옮김)
2. 장클로드 카리에르 1931년 프랑스 출생으로 소설가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다. 루이스 부뉴엘과 다수의 영화 작업을 했고, '양철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 약 80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을 비룻해 30여 명의 유명 저자들과 30년 이상 작업을 같이했다.(책 날개에서 옮김)
3. 68~73쪽에서 발췌.

4. 66~67쪽에서 발췌.
5.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희곡(1903) : 67쪽의 주.
6. '오늘날 출판되는 모든 책은 포스트-인큐내블러이다' 중에서(138~139쪽에서 발췌).
7. 인큐내뷸러 :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1450년에서 1500년까지 유럽에서 활자로 인쇄된 서적(19쪽의 주).
8. damnatio memoriae. 직역하면 '기억을 지옥으로 보내기'라는 뜻으로서, 어떤 정치가가 중죄를 범했을 때, 그의 사후에 그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깡그리 없애 버리는 형벌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기억말살형', '기록 말살' 등으로 번역된다.(255쪽의 주) : 트로츠키 등 여러 사람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