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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르 클레지오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Frida Kahlo & Diego Rivera』

by 답설재 2015. 9. 20.

르 클레지오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Frida Kahlo & Diego Rivera

백선희 옮김, 다빈치, 2011 완전 개정판

 

 

 

프리다 칼로 <우주, 지구, 나, 디에고, 그리고 솔로틀이 벌이는 사랑의 포옹> 1949

캔버스에 유채 70×60.5cm

 

 

1949년에 그린 가장 복잡한 그림 중 하나인 <우주, 지구, 나, 디에고, 그리고 솔로틀이 벌이는 사랑의 포옹>에서 프리다는 자신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을 재창조한다. 식물의 몸을 한 인디오 유모, 음과 양의 힘, 아즈텍의 야성 신, 이마에 지혜의 눈을 달고 양손에 불타는 심장을 움켜쥔 채 테우아나의 품에 안긴 남녀 양성 아기 디에고, 여주인의 발 아래 웅크린 애견 세뇨르 솔로틀, 옛 멕시코 신화에 따르면 언젠가 솔로틀이 태양의 집에 도달하게끔 죽음의 강을 건너는 걸 도울 카카오 색의 개.(이 책 259쪽의 설명)

 

 

 

 

 

 

 

프리다 칼로전에서 자화상들도 보고, 이 책도 읽고, 주로 신문에서지만 문화예술인들의 글도 읽으며 여름내내 프리다 칼로를 생각했습니다.

 

프리다 칼로라면―그만큼의 어려움을 가진 인간이라면―그렇게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좌절하지 않겠다면―좌절하고 말겠다면 그만이겠지만―평범하게 살아갈 수는 없었던 사람,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고는 다른 길이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집념으로 자신의 삶을 '소진'해 나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소진(消盡)!

적극적으로 자신을 불태워 재만 남게 한 화가였다."

 

여름이 끝나고 프리다 칼로전이 막을 내리게 되었을 때, 무슨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한 것처럼, 어디에 제출할 글을 쓰려고 궁리했던 것처럼 그런 '결론'을 내려봤습니다.

"왜 하필이면 디에고 리베라, 그런 식인귀, '여자에 탐닉하는 입담 센 식인귀'(187쪽)와 결혼하고, 주로 자화상을 그렸는가?" 하고 묻는 것은 이 화가를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은 무책임한, 어리석은 질문이 될 것입니다.

 

 

 

르 클레지오는 이 전기(傳記)를 처음부터 고음(高音)으로 시작했고 끝날 때까지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그 고음이 줄곧 이어지는 걸 보고 처음에는 좀 실망했고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전기라 해도 그렇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기승전결(起承轉結)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나?'

 

그러다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처음부터 그렇게 살았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끝낸 삶이었습니다. 르 클레지오는 그걸 이야기하고자 한 것 같았습니다.

몇 군데 옮겨적었습니다.

 

디에고와 프리다의 이야기, 혁명 신념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 사랑 이야기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는 건, 그것이 멕시코라는 독특한 빛과, 일상의 소음과, 거리와 장터에서 나는 온갖 냄새와, 먼지를 뒤집어쓴 누옥들 속의 어린아이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향수 어린 우수와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낡은 기념물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들 너머로 지는 석양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물게 만드는 향수 어린 우수.(17)

 

사고의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프리다를 검사한 의사들 대부분이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녀의 척추는 허리 부분에서 세 군데가 부러졌다. 대퇴골 경부가 끊어졌고 갈비뼈도 부러졌다. 왼쪽 다리에는 골절이 열한 군데나 있었고 오른쪽 발은 탈구되고 으스러졌다. 왼쪽 어깨는 빠졌고 골반뼈는 세 동강이 났다. 버스에 철제 난간이 그녀의 배를 관통했는데, 왼쪽 옆구리로 들어가 질로 빠져나온 것이다.(71)

 

(…) 다리가 너무 아파 걸을 수도 없고, 책을 읽으면 피곤해져. 어쨌든 읽고 싶은 흥미로운 것도 없어. 우는 것 외에 달리 할 게 없어. 때로는 울 힘조차 없어… 내 방의 네 벽이 얼마나 나를 절망에 빠뜨리는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 그만! 내 절망에 대해 더는 말할 수가 없어…(74)1

 

(...) 바로 이것이 프리다가 자신의 비극에서 빠져나오면서 사랑하게 된 남자의 모습이다. 그에게 다가간 모든 이가 그가 작업에서 보이는 힘과 열정에 매료되었다. 오로스코와 시케이로스와 더불어 공산당 집행위원회에 선출된 그는 항구적인 혁명의 나라, 멕시코를 구현했다.2 그는 선동가로 소요를 일으키고, 거짓말쟁이에다 난폭하고, 복수심 강하고, 올메크Olmec 전사 같은 얼굴에 일본 스모 선수 같은 체격을 가진, 참으로 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인생의 비극적 경험, 유럽에서 겪은 시련, 에스파냐,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미술관들을 돌아보며 축적한 엄청난 작업 역량, 이 모든 것이 그를 모두가 상상하고 희망하는 멕시코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는 불랙 유머를 구사하고 지식인들의 자기도취를 조롱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리다는 오래 전부터 그를 흠모했다. 몰래 숨어 그가 예비학교에서 볼리바르 대강당의 벽화를 그리는 걸 지켜보던 때부터였다. 그를 위해, 그를 유혹하고 그를 더 잘 사랑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도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끔찍한 사고가 그녀를 망가뜨렸을 때 그림 그리는 행위에서 그녀는 절망에 버티는 힘을 발견했다. 그녀에게나 디에고에게나 그림 그리는 일은 곧 삶을 의미했다.(92)

 

식인귀에 거짓말쟁이에 현대 미술의 거장 (…) 혁명과 전쟁을 보았고, 피카소와 로댕과 모딜리아니를 만난 그가 코요아칸의 생활과 예비학교 이외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주변의 친구와 침대 천장에 걸린 거울 속 자기 이미지밖에 그려 본 적 없는 어린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98)

 

멕시코시티와 몽파르나스의 식인귀, 여자에 탐닉하는 입담 센 식인귀가 다시 활동을 개시했다. 그러자 프라다는 더욱 고독을 느꼈고, 자신의 고통 속에 틀어박혔다. 그녀는 자기 내면에 침잠하는 순간과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순간을 번갈아가며 시련에 용감하게 맞섰다. 그녀는 고독을, 대도시에 갇힌 삶을 그렸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전망, 마천루, 미로 같은 거리들, 그녀는 향수를, 결혼 생활의 실패를, 자신에 대해 느끼는 증오를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하던 석고 패널 위에 그렸다.(187)

 

디에고에게 여성의 몸에 대한 탐닉은 본질적인 것이었다. 고갱이나 마티스처럼 그도 여성과의 유쾌한 합일이, 지속적인 육체적 접촉이 필요했다. 여체의 아름다움, 모델의 아름다움은 삶의 창조적 폭력성을 상징하고, 지성의 온갖 이념들과 무력함에 맞서는 생명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의 그림 전체가 남성의 전쟁과 죽음 본능에 맞서 쾌락과 생명의 힘과 여체의 아름다운 광채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표현하고 있다.(198)

 

그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쓴다.

 

모든 것의 시작인 디에고

건설자, 디에고

나의 아이, 디에고

나의 약혼자, 디에고

화가, 디에고

나의 남편, 디에고

나의 친구, 디에고

나의 어머니, 디에고

나의 아버지, 디에고

나의 아들, 디에고

나, 디에고

우주, 디에고

합일 속의 다양성

그런데 왜 나는 나의 디에고라고 하는 걸까?

그는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그 자신에 속할 뿐이다.(242)

 

디에고에게 그녀가 보내지 않은 시에서(프리다가 죽은 지 3년 뒤, 그가 죽기 며칠 전에 테레사 프로엔사에서 받게 될 편지에서) 그녀는 말한다.

 

침 속에

종이 속에

공백 속에

모든 선 속에

모든 색채 속에

모든 항아리 속에

내 가슴 속에

밖에, 안에

잉크병 속에 글 쓰는 어려움 속에 내 눈의 경이로움 속에 태양의 마지막 달 속에(그러나 태양에는 달이 없어) 모든 것 속에 모든 것은 어리석고도 멋지다고 말하는 것 속에 내 오줌 속에 디에고 내 입 속에 디에고 내 마음 속에 내 광기 속에 내 꿈속에 압지 속에 펜 끝에 연필 속에 풍경 속에 음식 속에 금속 속에 상상 속에 병 속에 진열장 속에 그의 술책 속에 그의 눈 속에 그의 입 속에 그의 거짓말 속에(256~257)

 

카를로스 펠리세르의 작별의 말도 들린다. " (…) 넌 하늘 없는 밤이 짓밟은 정원 같았어. 넌 태풍이 후려친 창문 같았어. 넌 핏속에 나뒹구는 손수건 같았어. 눈물 잔뜩 머금은 나비 같았고, 짓밟히고 부러진 하루 같았고, 눈물의 바다 위에 떨어진 눈물 같았지. 의기양양 노래하는 삼나무 같았고, 모든 사람의 길 위로 비추는 햇빛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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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7.4.25. 그녀의 첫사랑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2. 프리다는 1928년(21세), 이탈리아 사진작가 티나 모도티의 소개로 공산당 조직에 가담하고, 1929년 디에고가 공산당에서 제명당하자 프리다도 탈퇴하지만, 이후에도 가령 1937년 레온 트로츠키와 그의 부인 나탈리아 세도바의 피신처를 코요아칸의 자신의 집에 마련해주고 트로츠키와 교제하는 등 공산당과의 인연이 지속된 것에 대해서는 공산당의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분명한 설명이 없어서 아무래도 좀 의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