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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O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 cegueira』 정영목 옮김, 해냄, 2008(개정판 35쇄) 어느 날, 원인 모를 실명(失明)이 전염병이 되어 세상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각장애인들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까? "시각장애인들처럼"? 사치스런 소리라고 할 텐데요? 일부가 실명한 세상과 전부가 실명한 세상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우리가 두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즉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354) 집에나 가겠습니까? 운전은커녕 전철, 버스도 다 정지되었습니다. 보호받을 만한 시스템이 전혀 없습니다. 즉시 떠돌이가 되겠지요. 용변은 어떻게 합니까? 냄새가.. 2016. 3. 11.
독서 실패기 Ⅰ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얼마만큼 빠져들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너무나 미흡합니다. 무턱대고 읽었습니다.기억나는 게 거의 없는 책들을 보면 '뭘 읽었나?' 한심해지고 차라리 그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비로소 ― 굳이 작품해설 같은 걸 읽지 않아도 ― 그 책을 쓴 작가가 보이는 듯하고, 더러 그 작품해설이 잘못되었거나 부실한 점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에 깊이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Ⅱ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같으면 전에 읽을 때에는 한스가 책에 빠져드는 다음과 같은 장면1을 기이하게 느끼고 이건 작가가 너무 작위적으로 쓴 것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 2016. 3. 6.
가와바타 야스나리 《서정가抒情歌》 가와바타 야스나리 《서정가抒情歌》천상병 옮김, 살림 세계명작산책(1. 사랑의 여러 빛깔) 2014       Ⅰ  죽은 사람을 향해 말을 건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하겠습니다.하지만,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서 지녔던 모습으로 살아있는 줄로 안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생각됩니다.식물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과의 유사점을 느끼는 것이 모든 서정시(抒情詩)의 영원한 제목이다―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마저도 잃어버렸고, 그뒤에 계속되는 구절도 모르고 이 말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식물이란 다만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만이 그 뜻인지, 보다 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불교의 여러 경문(經文)을 비길 데 없이 귀중한 서정시라고 생각하는 요즈.. 2016. 3. 3.
이우환 공부 Ⅱ 미술가가 철학을 이야기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보다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우환 선생1의 글을 읽고 있으면 행복했습니다. 주제넘은 일은 분명합니다. 그의 작품을 단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 나오는 그에 관한 소개를 눈여겨보고 그가 낸 책을 읽어보는 데 힘썼습니다. 수필집 『시간의 여울』, 시집 『멈춰서서』는 감명깊게 읽었고, 대담집 『양의의 예술』도 어려운 부분이 좀 있긴 해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부분도 웬만큼 짐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독서의 속도가 워낙 느려빠져서 『여백의 예술』은 사다놓고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쑥스럽습니다. 좀 정신없은 짓일는지……) 그의 시에 '등장'하는 '도코노마(床の間)'가.. 2016. 2. 22.
최영미 『내가 사랑하는 시』 최영미 『내가 사랑하는 시』 해냄 2012(초판6쇄) 찻집 The Tea Shop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 정규웅 옮김 그 찻집의 소녀는 예전만큼은 예쁘지 않네. 8월이 그녀를 쇠진(衰盡)케 했지. 예전만큼 층계를 열심히 오르지도 않네. 그래, 그녀 또한 중년이 되겠지. 우리에게 과자*를 날라줄 때 풍겨주던 청춘의 빛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겠네. 그녀 또한 중년이 되겠지. 넘칠 듯한 찻잔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인을 뒤에서 지긋이 응시하는 중년 남자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국의 여느 다방에서 목격되듯이) 응큼하거나 추잡하지 않다. 번뜩이는 비유 없이도 성실한 상황묘사만으로 훌륭한 시가 되었다. 계단을 오르듯 하나 하나 언어를 쌓아올려 친근하.. 2016. 2. 19.
이우환 공부 Ⅰ 이우환1 공부 Ⅰ ― 『현대문학』 2016년 1월호(326~340), 「이우환과의 대화」(서면 인터뷰) 발췌 ― Q. 이우환 선생님의 약력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 서당 교육문화의 마지막 세대를 경험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교육문화가 어떤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독자들이 당시의 생활을 상상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미셀 앙리시2) A. (……) 어머니의 사랑과 예민한 감성이 없었다면 내가 예술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고달픈 노동에서도 어김없이 시간을 내어 옷을 갈아입고 반듯이 앉아 고전소설이며 시를 읽어주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름다운 문학소녀 같으면서도 고귀하고 준엄했습니다. 특히 문장을 독특한 리듬으로 소리 내어 읽는 어머니의 예쁜 목소리는 지금도 귓전에 아련합니다. 문장뿐 아니라 모.. 2016. 2. 16.
『다시, 봄』 장영희 쓰고 김점선 그림 『다시, 봄』 샘터, 2014 장영희 교수가 29편의 영미시(英美詩)를 열두 달로 나누어 싣고 해설했습니다. 백과사전의 소개는 이렇습니다. 장영희(張英姬, 1952~2009) 영문학자, 수필가, 번역가. 소아마비 장애와 세 차례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따뜻한 글로 희망을 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이 있다. 봉급을 받게 되어 마음대로 책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구입한 책 중에는 흔히 영문학자 장왕록 교수가 번역한 책이 있었는데, 장영희 교수는 그분의 따님이라는 걸 나중에 알고 두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소아마비가 심해서 어릴 때는 누워서 살았답니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업고 다녔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 2016. 2. 14.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어사연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궁리 2009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서문이 꼭 다시 한 번 읽겠다고 생각한 책 『만남, 죽음과의 만남』을 쓴 정진홍 교수의 글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神仙)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습니다. 그쯤 나이가 들면 사람들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것도 까만 옛일이 되고, 내 생각이나 결정만이 옳다고 여겨 고집 부리던 일도 우스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부럽고, 아쉽고, 그래서 시샘도 하고, 다툼도 하고, 체념도 하고, 부끄러운 변명을 하기도 했던 일도 '그것 참!' 하는 한마디 혼잣말로 다 치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후회도, 안타까움도.. 2016. 2. 11.
『늘 꿈꾸는 코끼리』 김지연 글·그림 『늘 꿈꾸는 코끼리』 현북스, 2015 서커스단에서 공연하는 코끼리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 초원을 꿈꾼다는 이야기책입니다. 코에 링을 걸고 돌리면서 초원에서 새를 코 위에 앉히고 대화하는 날을 생각하는 코끼리, 우리 안에 혼자 있을 땐 그 초원에서.. 2016. 2. 2.
바바라 리만 『나의 빨강책 THE RED BOOK』 바바라 리만 Barbara Lehman 《나의 빨강책 THE RED BOOK》 미래엔 2009 단 하나의 글자도 없는 책입니다. 심지어 페이지 표시도 없습니다. '나의 빨강책', 빨강책일 뿐입니다. 오늘은 이 책으로 아이와 놀아보자, 생각했습니다. 교사로 태어나 교사로 살았고, 마지막에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지냈습니다. 더구나 초·중·고 교과서 정책, 교과서 개발·심사·관리·연구에도 오랫동안 깊이 참여한 것 등, 교육에 관한 책으로 말하자면 제법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책으로써 아이와 놀아주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습니까? 다음은 첫 페이지, 둘째 페이지입니다. 한 아이가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도심지를 걸어가고 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식은 죽 먹기'라는 .. 2016. 1. 31.
엘렌 심 『Nancy the cat 고양이 낸시』 엘렌 심 『Nancy the cat 고양이 낸시』 북폴리오 2015 생쥐 지미와 아빠 더거씨가 버려진 아기 고양이 낸시를 데려왔습니다. 낸시는 지미네 가족과 함께 자신이 고양이인 줄도 모르고 생활합니다. 다른 아이들(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양이 낸시를 모양이 좀 다른 친구쯤으로 여겼습니다. 온갖 에피소드가 있을 수밖에 없고 아슬아슬하고 재미있는 하루하루가 펼쳐집니다. 낸시가 아무래도 '고양이'인 것 같다거나 '분명히' 고양이라는 걸 눈치챈 쥐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양이를 키워서 나중에 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왜 위험한 짓을 하느냐고 대어드는 사람(쥐)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낸시는 더거씨의 사랑스러운 막내 딸 낸시, 지미의 소중한 동생 낸시, 친구들을 배려하는 낸시, 여러 사람(쥐)이 .. 2016. 1. 20.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교수가 제자들에게 주는 쓴소리』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교수가 제자들에게 주는 쓴소리》 전선영 옮김, 갤리온 2005 1. 독해져라. 지금은 그래야만 하는 시기다 정해진 틀이 있는 스펙은 마음 편히 쫓아갈 수 있다 (……) 뛰어야 할 트랙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경주마로 자란 청년들은 트랙 없이 자유롭게 질주하는 것보다 경쟁이 치열해도 트랙 위를 달리는 편을 선호한다. 그래서 너도 나도 일단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19~20) "왜 지도 교수는 나를 가르치지 않지?" 그러자 그 학생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가만히 있는데 왜 그가 널 가르쳐야 하지? 네가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싶은지 먼저 요구해야지. 교수가 어떻게 알고 그걸 네게 가르쳐 주니?"(21) 무슨 일이든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언제.. 2016.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