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얼마만큼 빠져들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너무나 미흡합니다. 무턱대고 읽었습니다.
기억나는 게 거의 없는 책들을 보면 '뭘 읽었나?' 한심해지고 차라리 그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비로소 ― 굳이 작품해설 같은 걸 읽지 않아도 ― 그 책을 쓴 작가가 보이는 듯하고, 더러 그 작품해설이 잘못되었거나 부실한 점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에 깊이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Ⅱ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같으면 전에 읽을 때에는 한스가 책에 빠져드는 다음과 같은 장면1을 기이하게 느끼고 이건 작가가 너무 작위적으로 쓴 것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이번에 새로 읽을 때는 한스의 그 경험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김이섭 옮김, 민음사, 2009, 신장판 47쇄, 148~149).
(……) 한스는 이제 호머와 역사에만 관심을 가졌다. 어둠을 헤쳐나가는 듯한 기분으로 호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다가갔다. 역사 속에서 영웅들은 단순한 이름이나 숫자로 남기를 거부하며 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로 앞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살아 있는 붉은 입술과 얼굴, 그리고 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붉고 두툼하고 거친 손을, 또 어떤 이는 차분하고 차갑고 딱딱한 손을, 다른 이는 가늘고 뜨겁고 핏줄이 선명한 손을. 그리스어로 씌어진 복음서를 읽을 때에도 한스는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이 너무나 가깝고 분명하게 느껴진 나머지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기까지 했다. 마가복음 6장에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배에서 내리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그들은 예수를 곧 알아보고, 그리로 달려가니라.〉 이 대목에서 한스는 배에서 내리는 인간의 아들 예수를 보았다. 몸이나 얼굴에서가 아니라, 빛이 충만한 크고 빛나는 사람의 눈에서, 그리고 가볍게 흔드는 가냘프고 아름다운 갈색의 손에서 그를 알아보았다. 그의 손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영혼에 의해 만들어진 손, 바로 그 영혼이 살아 숨쉬는 손이었다. 그쪽으로 오라고 부르는 듯하기도 하고, 반갑게 반기는 듯하기도 했다. 파도가 일렁이는 호수의 가장자리와 무거워진 어선의 뱃머리가 잠시 한스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고는 겨울철에 연기처럼 내뿜어지는 입김과도 같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따금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책 속에서 동경과 갈망에 시무친 인물이나 역사의 한 부분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살아나 자신의 시선이 생동하는 눈망울에 맺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다. (……) 이런 귀중한 순간들은 예기치 않게 다가왔다가 하소연할 틈도 없이 얼른 사라져버렸다. 낯설고 거룩한 그 무엇이 감도는 순례자나 친근한 손님처럼, 이들에게 말을 걸거나 억지로 머물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Ⅲ
생각이 바뀌지 않은 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독서에 대한 교육자들의 한심한 견해입니다. 그들은 독서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독서를 학습(진학) 저해 요인으로 간주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저 『수레바퀴 아래서』에도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옵니다. 한스의 성적이 떨어지는 걸 안타까워하는 교장이 한스를 불러 그 원인을 추궁하고 있습니다(그 책 145).
「(……) 왜 갑자기 자네 학구열이 식어버렸는지 궁금하기만 하네. 자네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냐?」 「아니오.」
「그럼 두통이 있나? 썩 건강해 보이질 않아.」
「예, 가끔 머리가 아프긴 해요.」
「하루 일과가 좀 벅찬가?」
「아니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자네 혹시 개인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닌가? 솔직히 말해 보게나!」
「아녜요. 책은 거의 읽질 않아요, 교장 선생님.」
「그렇다면 난 정말이지 짐작할 수가 없네. 어딘가에 문제가 있긴 있을 텐데 말야. 자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주겠나?」
Ⅳ
한스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그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책들은 그림자처럼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흥미를 느끼는 공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위에서 본 것처럼 구체적인 관조(觀照)의 순간들이 나타나는 경험을 합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안에 서술된 사물들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물보다도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치고 현실에 가깝게 느껴지게 됩니다(그 책 161).
아무래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 다 읽겠나?', '읽었던 책만 해도 언제 다 새로 읽겠나?', '새로 나오는 책들은 또 언제 읽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하긴 합니다.
Ⅴ
그래서 한 가지 생각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곧 저승에 가게 되면 묻지 않겠습니까? '이승'(저승에서는 우리의 이 이승을 '저승'이라고 부를까요?)에 있을 때 뭘 했는지…….
그러면 책을 읽다가 왔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 얼마만큼 읽었는지 물으면 읽다가 말았다고, 열심히 읽으려고 했지만 헛일을 했다고, 실패했다고, 제대로 읽은 건 몇 권 되지도 않는다고, 그래서 되돌아가 조금만 더 읽었으면 싶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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