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실패기
그림의 출처 : 不明
Ⅰ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얼마만큼 빠져들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너무나 미흡합니다. 무턱대고 읽었습니다.
기억나는 게 거의 없는 책들을 보면 '뭘 읽었나?' 한심해지고 차라리 그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비로소 ― 굳이 작품해설 같은 걸 읽지 않아도 ― 그 책을 쓴 작가가 보이는 듯하고, 더러 그 작품해설이 잘못되었거나 부실한 점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에 깊이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Ⅱ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같으면 전에 읽을 때에는 한스가 책에 빠져드는 다음과 같은 장면1을 기이하게 느끼고 이건 작가가 너무 작위적으로 쓴 것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이번에 새로 읽을 때는 한스의 그 경험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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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생각이 바뀌지 않은 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독서에 대한 교육자들의 한심한 견해입니다. 그들은 독서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독서를 학습(진학) 저해 요인으로 간주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저 『수레바퀴 아래서』에도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옵니다. 한스의 성적이 떨어지는 걸 안타까워하는 교장이 한스를 불러 그 원인을 추궁하고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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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한스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그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책들은 그림자처럼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흥미를 느끼는 공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위에서 본 것처럼 구체적인 관조(觀照)의 순간들이 나타나는 경험을 합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안에 서술된 사물들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물보다도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치고 현실에 가깝게 느껴지게 됩니다.3
아무래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 다 읽겠나?', '읽었던 책만 해도 언제 다 새로 읽겠나?', '새로 나오는 책들은 또 언제 읽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하긴 합니다.
Ⅴ
그래서 한 가지 생각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곧 저승에 가게 되면 묻지 않겠습니까? '이승'(저승에서는 우리의 이 이승을 '저승'이라고 부를까요?)에 있을 때 뭘 했는지…….
그러면 책을 읽다가 왔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 얼마만큼 읽었는지 물으면 읽다가 말았다고, 열심히 읽으려고 했지만 헛일을 했다고, 실패했다고, 제대로 읽은 건 몇 권 되지도 않는다고, 그래서 되돌아가 조금만 더 읽었으면 싶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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