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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가와바타 야스나리 『서정가抒情歌』

by 답설재 2016. 3. 3.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천상병 옮김*

『서정가抒情歌

 

 

 

 

 

 

 

 

죽은 사람을 향해 말을 건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서 지녔던 모습으로 살아있는 줄로 안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식물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과의 유사점을 느끼는 것이 모든 서정시(抒情詩)의 영원한 제목이다―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마저도 잃어버렸고, 그뒤에 계속되는 구절도 모르고 이 말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식물이란 다만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만이 그 뜻인지, 보다 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불교의 여러 경문(經文)을 비길 데 없이 귀중한 서정시라고 생각하는 요즈음의 저는, 지금 이렇게 해서 고인(故人)이 된 당신에게 말을 건다 하더라도, 저승에서도 역시 이승에서의 모습을 하고 계신 당신보다, 차라리 당신이 철을 서둘러서 봉오리가 달린 홍매(紅梅)로 변해서 재생했다는 상상(想像)을 꾸며내어, 지금 제 눈앞의 도꼬노마(床の間, 방 한쪽에 바닥을 조금 높게 하고 벽에는 서화[書畵], 바닥에는 꽃병 등으로 장식한 곳 :역주)에 놓여 있는 홍매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편이 얼마나 더 즐거운지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눈앞에 놓인, 제가 그 이름을 아는 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프랑스 같은 먼 나라의, 이름 모를 산의, 한 번도 본 일 없는 꽃으로 당신이 부활했다고 상상하여, 그 꽃을 향해서 말을 건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이나 지금도 여전히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정말로 먼 나라를 바라보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이 방의 향기가 납니다.(348~349)

 

서정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지막하게, 이슬비 내리는, 아니면 눈 내리는 저녁의 그리움 같은…… 열정적이고 집요한 사랑 이야기……

 

 

 

 

다쓰에는 어려서부터 영적(靈的) 능력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그 다쓰에가 사랑으로부터 버림받고, 고인(故人)이 된 연인에게 보낸 연서(戀書)입니다.

다쓰에는 가본 적도 없는 연인의 집 응접실, 방의 모습을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일어날 일까지 예측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 사이에 사랑의 증명들이 너무 꽉 차 있어 자신이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가 된 두 사람이니까 어떠한 힘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고 믿으며 안심하고 어머니의 장례식에 간 사이에 연인이 다쓰에 대신 심부름을 하게 된 아야꼬와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해버립니다. 다쓰에는 멀리서도 그들의 신방에 뿌려진 짙은 향수 냄새에 정신을 잃고 그 순간 영적 능력마저 상실합니다. 그래서 연인이 다른 여인과 결혼해버린 사실과 연인의 죽음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다쓰에는 그 슬픔으로 세상의 온갖 '영계통신'을 읽었습니다.

 

유마경(維摩經) 중향(衆香)의 나라 이야기,

전서구(傳書鳩)를 사랑의 사자(使者)로 이용한 연인 이야기,

대시인 단테의 『신곡(神曲)』이나 대심령학자 스웨덴보르그의 천국과 지옥 이야기에 비하면 젖먹이 말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참말 같은 동화로서 즐거움을 주는 레이먼드의 영계 이야기,

단테나 스웨덴보르그가 매우 현실적이고 약소하고 비속하게 여겨질 정도로 환상적인 불전(佛典)의 부처님 세계……("불교 경문의 전세와 내세의 환상곡을 다시 없이 고마운 서정시로 생각하는 오늘의 저입니다." 359),

『섬자경』과 『우란분경(盂蘭盆經)』 이야기, "아름다운 소꿉장난"인 정령제 이야기,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풍족한 꿈을 짜넣은 동화는 있을 수 없는 윤회전생(輪廻轉生)의 가르침,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인 석가모니의 가르침……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다쓰에는 이렇게 말합니다.(364)

 

"이 세상에서 형태를 잃는 것들의 향기가 저 세상의 물질을 만든다는 것도 과학사상의 상징의 노래에 지나지 않습니다."

"혼이란 천지만물을 흐르는 힘의 형용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또 "영혼은 불멸이라는 사고방식은 살아있는 사람의 생명에의 집착과 죽은 사람에 대한 애착의 발로일 것"이므로 자신은 죽어서 하얀 유령세계의 주민 같은 것이 되기보다 한 마리의 비둘기라든가, 한 포기의 아네모네 꽃이 되고 싶어 합니다.

 

예수의 승천, 레이먼드의 천국, 불법의 윤회전생은 다 이 세상의 윤리의 상징 같고, 모두 이 세상의 행위의 인과응보에 대한 가르침이므로 그것은 "고마웠던 서정시의 오점(汚點)"이라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옛 이집트의 유명한 서정시와 전생(轉生)의 노래는 좀더 솔직했고, 희랍신화의 이리스의 무지개옷은 더욱 맑은 빛이었으며, 아네모네의 전생은 더욱 명랑한 기쁨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데이지꽃이 된 헤리데스, 월계수가 된 폰, 복수초(福壽草)로 되살아난 소년 아로니스, 히야신스 꽃이 된 아폴로의 애인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연서의 서두에도 있었지만, 다쓰에는 도꼬노마에 놓인 홍매(紅梅)를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건넨들 상관없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자신을 버린 연인에 대한 원망과, 연인을 뺏아간 아야꼬에 대한 질투의 괴로움으로 불쌍한 여자로 있기보다는 아예 아네모네 꽃 같이 되는 게 더 행복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눈물 한 방울과 같은 상징서정시(象徵抒情詩)로 이 세상에 태어난 여자"인 자신은 "잃은 연인보다도 잃은 사랑의 마음"을 슬퍼했으며 그래서 읽은 것이 "불교의 윤회전생의 서정시"였다고 고백합니다.

 

그 구절의 가르침으로 저는 금수초목 속에서 당신을 보았고 저를 보았고, 그리고 차차 천지만물을 너그럽게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깨달은 서정시는 너무나 속된 애욕이 낳은 슬픔의 마지막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토록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당신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던 시절의 습성을 따라서 지금도 저는 봉오리 진 홍매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고, 제 혼이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도나 흐름인 양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죽은 당신에게 흘러가도록 굳게 빌고 있습니다.(369)

 

 

 

 

다쓰에의 연서는 다음과 같이 끝납니다.(381~382)

서두에서 이미 그 애절한 소원을 보았지만 긴 연서의 마지막 부분도 그렇습니다. 죽어 저승에 가서 서로 만난다는 걸 믿기보다는 부디 지금 홍매 한 송이로 피어나 주면 더 좋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저는 영계에서 당신의 사랑의 증거를 듣는다든가, 명토(冥土)나 내세에서 당신의 연인이 되느니보다, 당신이나 제가 홍매나 협죽도의 꽃이 되어 꽃가루를 나르는 나비에 의해 결혼하게 되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의 슬픈 습성에 따라 이렇게 죽은 사람에게 말을 해야 하는 일도 없을 터인데.

 

 

출처 : 옛 친구의 블로그 '소나무와 별'

 

 

 

추신 1

 

이 연서를 읽는 동안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생각나지도 않았습니다. 정말로 다쓰에라는 실연한 여성이 쓴 연서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사랑을 잃은 한 여인의 애절한, 저승에 가서 만나는 건 싫으니까, 우선 저승에 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으니까, 그런 동화는 집어치우고 이승에서 한 떨기 꽃이 되게 해달라는 한 여인을 그리며 읽었던 것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雪國)』이 아니라 이 연서로써 노벨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혹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질투를 느껴서 그랬는지(하기야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자살을 했지만), 자살을 해버린 미시마 유키오가 남긴 다음과 같은 평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메이지(明治)시대 여인의 단정한 의상을 연상케 하는 문체에 의해 묘사된 대낮의 신비세계는 가와바다 씨의 절묘한 동화(童話)이며, 동화란 또한 가장 순수한 고백인 것이다.(385)**

 

 

추신 2

 

이 연서를 세 번 읽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35면밖에 되지 않는 연서를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했습니다. 아예 전문(全文)을 옮길까 싶기도 했고, 이 글을 더 줄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또 읽고 싶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작품을 읽지도 않고 지냈다니, 한심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 채 뭐라고 이야기하며 지냈다는 것이 우습구나 싶었습니다.

어느 출판사 편집인이 이 소설을 소개했습니다(クモモ).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1. 사랑의 여러 빛깔』은 그의 문명(文名)을 이용한 편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경솔한 짐작이었습니다. 이 연서는 열 편의 사랑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F. R. 샤토브리앙 『르네』

테오도르 슈트롬 『호수』

안톤 체홉 『귀여운 여인』

윌리엄 포크너 『에밀리를 위한 장미』

토마스 하디 『환상을 좇는 여인』

바실리 아크쇼노프 『달로 가는 도중에』

알퐁스 도데 『별』

아르투르 슈니츨러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가와바다 야스나리 『서정가』

스탕달 『바니나 바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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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사랑의 여러 빛깔』 中 (살림, 2014, 개정판8쇄), 347~385.

** 이문열(작품해설) 「곱고 애절한 사랑의 만사(輓詞)」에서 옮겨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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