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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우환 공부 Ⅱ

by 답설재 2016. 2. 22.

미술가가 철학을 이야기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보다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우환 선생1의 글을 읽고 있으면 행복했습니다.

 

주제넘은 일은 분명합니다. 그의 작품을 단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 나오는 그에 관한 소개를 눈여겨보고 그가 낸 책을 읽어보는 데 힘썼습니다.

 

수필집 『시간의 여울』, 시집 『멈춰서서』는 감명깊게 읽었고, 대담집 『양의의 예술』도 어려운 부분이 좀 있긴 해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부분도 웬만큼 짐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독서의 속도가 워낙 느려빠져서 『여백의 예술』은 사다놓고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쑥스럽습니다. 좀 정신없은 짓일는지……) 그의 시에 '등장'하는 '도코노마(床の間)'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다른 핑계를 대어 일부러 일본의 '스미야 키호얀'이라는 한적하고 멋진 여관을 찾아가 그것(도코노마)을 '실컷'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10년만의 해외여행이었습니다.

 

『현대문학』은 이우환의 네 가지 저서를 출판했고, 때때로 이 화백에 관한 글을 실어서 고마운 월간지입니다.

이번의 대담록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나는 한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핑퐁 공의 입장이었으며 유럽을 오가면서 이 입장은 더욱 심화되어 세계 어느 곳에도 완전 귀속할 곳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2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그래서였을까요?

 

"회화든 조각이든 나는 작품을 제시하면서 그 대상성을 넘어서려고 합니다.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 열리는 주변의, 아니 다른 차원의 공간을 보게 하고자 함입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미술의 정체를 뒤집는 일입니다. 어리석고 무모한 도전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똑똑히 보십시오. 모든 대상주의가 무너지고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는 오늘날, 나의 예술적 시도가 어찌 허망일 수 있겠습니까. 종을 치면 공간이 울리듯 나의 작품은 공간을 열 것입니다."

 

앞으로도 잘 찾아 읽고 읽은 글들도 다시 읽을 작정입니다. 다시 읽는 시간도 행복한 것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우환 공부 Ⅱ

― 『현대문학』 2016년 1월호(341~363), 「이우환과의 대화」(서면 인터뷰) 발췌 ―

 

 

 

                                                           조선일보, 2016.2.2.

 

 

Q.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작품을 향한 한국적 특질(요소)이 있다고 느끼십니까? 초기 회화 작품들은 서법을 반영하고 있는지요? (Babara Rose3)

 

A. 한국이나 일본의 비평가 중에는 내가 서법을 사용한다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물론 나는 어릴 적에 서예를 배웠고 그 영향이 작용하는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작품은 시스테마틱하며 공간적이지 서예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프랙티스는 뉴트럴하고 최소화되고 훈련된 신체의 행위를 통해 고도한 표현이 됩니다. 이것은 표현에 있어 이념이나 일반성보다는 개인성, 신체성을 중요시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붓은 다른 소재와 더불어 도구가 아니며 나의 동반자입니다.

 

Q. 선생님께서는 '미니멀리스트'로 불려왔습니다. 그러한 설명에 동의하십니까? (바바라 로즈)

 

A. (……) 나는 작품을 아무리 철저히 단순화시켜도 바로 그것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개념을 대변할 수 없으며 언제나 어긋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보는 자도 늘 변하는 존재이며 작품 또한 공간이나 시간과의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이 세상에 바로 그것이기는 불가능합니다. (……) 내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철저히 절제하는 일이 작품의 단순화이며 그 단순화의 뉴트럴한 추상성은 외부와의 고도한 관계를 암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작품은 살아 숨 쉬는 세계의 파편입니다. 그래서 나의 경우 작품이 미니멀하게 될수록 공간이나 시간과의 긴장관계가 작동하여 나를 넘어선 세계가 느껴지게 됩니다. 작품은 대상성을 넘어서 주변 공간과 바이브레이션을 일으키는 관계성, 가변성의 존재입니다.

 

Q. 선생님은 단색화를 '수줍음의 예술'이라고 묘사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색화가 갖는 최소의 표현, 내지는 표현의 절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선생님의 조각작품이나 회화 모두에서 이러한 의미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표현이 적다, 많다가 예술작품의 미학적 품위나 문맥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생 동안 절제의 예술을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은 예술가의 체질과도 연관성이 있을 것입니다. 단색화에 나타난 숙명과도 같은 표현의 절제가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하십니까?(이용우4)

 

A. 내가 단색화를 '수줍음의 예술'이라고 한 것은, 에고의 절제에서, 나타냄과 동시에 숨김이 곁들여지니 양의의 미학이라는 뜻입니다. 근대주의가 자기를 앞세우는 표현이라면, 현대미술은 외부와 관계하는 표현입니다. 단색화는 자기 이미지나 형상을 드러내지 않고 단순한 물감과 캔버스, 뉴트럴한 행위에 의한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표현입니다. 물감이나 행위나 캔버스의 어우러짐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작가의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게 되어 그것이 수줍음으로 비춰지는 터입니다. 또한 이 수줍음이 그 양의성으로 하여 보다 큰 보편성을 띠게 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작가들의 체질이나 전통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주어진 시대와 상황의 특징이 역으로 그들로 하여금 절제의 미학을 성취시키게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의 경우 회화든 조각이든, 콘셉트, 소재, 행위를 단순화하고 제한하고, 그것들의 연관이나 외부와의 관계를 중시함으로써, 나를 넘어선 더 큰 세계를 열어 보이려 하였습니다. 나를 절제하는 것은 나의 윤리적인 정비이며 외부와의 크고 높은 차원을 열기 위한 태도입니다.

 

Q. 이우환의 예술에는 기가 넘친다고 합니다. 그 에너지는 읽는 자에 따라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동양인들은 '절제된 에너지'라고 하고 서양인들은 '집약의 힘'이라고 표현합니다. 두 개를 합치면 "절제되고 집약된 에너지"가 됩니다. 만약 선생님의 작업이 설명적이고 산문적이었다면 전혀 다른 미학적 묘사들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저는 절제되고 집약된 에너지를 설명하는 내막이 이우환 예술의 핵심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내뱉고 싶지만 말하지 않고 돌아서는 '은닉된 힘'과 같은 것……. 예술은 익어갈수록 안응로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은닉의 힘과 기술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이용우).

 

A. 당신은 나의 예술의 특징을 '절제되고 집약된 에너지'로 잘 짚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체를 통하지 않고는 '절제와 집약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작가의 훈련된 신체와 집중력과 호흡이 작품에 결정적이란 뜻입니다. 작품이 긴장감과 해방의 모순된 양상으로 밀도를 높이고 생동감 넘치게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신체의 경이적인 기능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이것 자체가 시적이고 초월적인 행위입니다. 이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신체는 나의 신체임과 동시에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고 우주의 파편에 속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신체는 나의 도구가 아니라 주변의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뿜어냈다 하는 살아 있는 기관이고 이것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나는 작품도 살아 있는 신체이기를 바랍니다. 작품의 도구나 기호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생명력을 느끼게 하지 못한다면 보는 자에게 감동을 주기가 어렵습니다. 절제와 집약의 에너지가 시적으로 작동하고 캔버스에 바이브레이션을 일으킬 때 공간과 보는 자를 울렁이게 만듭니다.

 

Q. 선생님의 조각작품은 소재가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돌과 쇠가 전부입니다. 돌은 자연 소재의 대표이며, 쇠는 문명사회를 일군 산업 소재의 상징입니다. 이 두 가지의 연결도 표현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관계relatum'라는 제목으로 연상작용을 유도합니다. 이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자연과 문명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사회적, 정치적 관계항들이 개진되어 있는 것입니까?(이용우)

 

A. 나는 1960년대말 1970년대 중반까지는 산업사회나 자연에서 다양한 소재를 차용했습니다. 그것이 차츰 정리가 되면서, 지금은 돌과 철판으로 수렴된 셈이고(예외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돌로만 혹은 철로만 작품이 성립될 때도 있습니다. 기본 소재가 돌과 철판으로 수렴된 데에는 돌이 자연의 대표 격이고 철판이 산업사회의 대표 격인 데다 원래는 같은 성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산업사회의 대화를 꾀하는 셈입니다.

나는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조각에서도 자꾸만 정리하고 제한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주의를 비판하고 덜 만드는 쪽으로 다시 말하면 만들지 않는 것들로 하여금 얘기를 하게 하고자 하다 보니 표현의 최소화에 달한 것 같습니다. 나는 단순하고 뉴트럴한 소재를 차용하지만, 그것들의 관계나 그것들과 공간과의 관계를 환기시켜 좀 더 열린 표현의 장을 마련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소재들의 관계 지움에서 그 장소의 울림을 자아내게 하는 방법입니다. 어느 소재도 중속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로 작용하게 배려합니다. 서로 마주 보게 한다거나 세우고 눕힌다거나 접촉시키거나 떨어뜨려놓는 등의 관계를 연출하면서 그것들이 고도한 추상적인 차원을 암시하게 합니다. 이런 광경은 다분히 문명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역학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Q. 저는 동양 미술의 뿌리 가운데 가장 할 말이 많은 장르가 수묵화적 전통이라고 봅니다. 수묵화의 부활을 논의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먹이 갖는 엄청난 상상력과 종이의 발명이 가져온 시각예술의 바탕이 이른바 역사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킵니다. 수묵은 서예이자 회화이며, 철학이자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점으로부터」「선으로부터」「바람으로부터」 시리즈를 보면 일종의 수묵화적 감수성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디지털 기술에 의한 스펙터클의 미학들이 폭력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현상에서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한국의 단색화도 이러한 수묵적 전통에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이용우)

 

A. 나는 수묵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자체의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통 종이의 연약함이나 스피드 표현의 곤란, 저항 없이 스며드는 점 등이 농경생활이나 공동체의 조화를 떠올리게 하여, 오늘날의 유동적, 초도시적 잡종적 대결적인 상황에서 종래의 수묵화가 그대로 재생되기는 힘든 것이죠. 그러나 수묵화의 밑바닥에 흐르는 우주적인 이데아나 기운이 생동하는 필력 또는 그로 인한 여백 현상은 나로 하여금 회화의 새로운 차원의 암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색화가들을 단락적으로 수묵화와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화면에서 필력이나 생동감이나 여백을 느끼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단색화는 단색화의 문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회화든 조각이든 나는 작품을 제시하면서 그 대상성을 넘어서려고 합니다.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 열리는 주변의, 아니 다른 차원의 공간을 보게 하고자 함입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미술의 정체를 뒤집는 일입니다. 어리석고 무모한 도전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똑똑히 보십시오. 모든 대상주의가 무너지고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는 오늘날, 나의 예술적 시도가 어찌 허망일 수 있겠습니까. 종을 치면 공간이 울리듯 나의 작품은 공간을 열 것입니다. (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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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우환 1936년 경남 함안 출생.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미술가. 서울대 미대 중퇴 후 1956년 도일. 니혼대학 철학과 졸업. 일본 전위예술운동인 '모노하'를 이끌었음. 2010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우환미술관이 나오시마에 세워졌고, 2011년 백남준 이후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형 회고전이 열린 바 있음.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베르사유궁 전시회의 2014년 초대작가로 선정됨. 에콜 데 보자르 초빙교수. 다마미술대학 교수 등 역임. 2013년 '금관문화훈장' 수훈. 저서 '시간의 여울' '여백의 예술' '양의의 예술'. 시집 '멈춰서서' 등. 일본, 프랑스, 한국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 ('현대문학' 2016년 1월호, 362쪽).
2. '이우환 공부' 1 참조.
3. 바바라 로즈 1938년생. 미국의 미술사가 겸 미술평론가. 스미스칼리지, 바나드칼리지, 콜럼비아대에서 수학. 콜럼비아에서는 마이어 샤피로Meyer Shapiro를 사사. 예술비평가이자 예술사학자 마이클 프라이드Michael Fried의 격려 속에 미술평론가의 길로 접어들어 1963년 '아트인터내셔널Art International'에 '뉴욕 레터'라는 평론을 매월 기고. 1965년 10월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에 미니멀 아트의 근본적 특성에 대해 설명하는 에세이 'ABC아트ABC Art' 발표. 이 에세이 발표 후, 미국대학미술협회The College Art Association of America의 '우수미술평론가상' 수상(1966, 1969). '저널 오브 아트Journal of Art'의 편집장(1988-1991) 역임. 저서 '1990년 이후의 미국 미술' 등.('현대문학' 2016년 1월호, 363쪽).
4. 이용우 1952년 충남 당진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옥스퍼드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 미술사가이자 미술평론가 겸 큐레이터. 30여 년 간 미술과 기술, 그리고 정보를 서로 이어주는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시각문화 담론을 재조명하고 그에 관한 전시회를 큐레이팅해옴. 광주비엔날레가 창설된 1995년부터 이 행사의 감독으로 활동.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2004),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직(2008-2014) 역임. 고려대 교수로 미술사 및 시각문화 강의. 뉴미디어 아트를 위한 뉴욕센터 상임이사로도 활동. 제5회 광주비엔날레, 영국현대미술전(토탈미술관),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5월의 꽃'전,. '호랑이 꼬리Tiger's Tail'전(팔라조 벤드라민 베니스), '아시아나Asiana'전(팔라조 벤드라민 베니스), '전자 단풍나무Electronic Maple'전(뉴미디어 아트를 위한 뉴욕센터), '백남준 회고전'(국림현대미술관), '휘트니 바이에니얼 서울'전(국립현대미술관) 등 수많은 전시회의 큐레이팅 담당. '백남준' '비디오 예술론' '정보와 현실' '대중, 문화 큐레이터' 등 뉴미디어 아트와 청중 연구에 대한 여러 권의 저서 발간. 현재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상임이사 및 국제바니에니얼협회IBA 대표('현대문학, 2016년 1월호, 3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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