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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눈먼 자들의 도시』

by 답설재 2016. 3. 11.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O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 cegueira

정영목 옮김, 해냄, 2008(개정판 35쇄)




어느 날, 원인 모를 실명(失明)이 전염병이 되어 세상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각장애인들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까?

 

"시각장애인들처럼"? 사치스런 소리라고 할 텐데요? 일부가 실명한 세상과 전부가 실명한 세상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우리가 두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즉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354)

 

집에나 가겠습니까? 운전은커녕 전철, 버스도 다 정지되었습니다. 보호받을 만한 시스템이 전혀 없습니다. 즉시 떠돌이가 되겠지요.

용변은 어떻게 합니까? 냄새가 진동하는 옷을 입고 얼마나 견디겠습니까?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소설은 그런 상황을 보여줍니다.

 

 

 

 

 

 

한 남자가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멀어 시야가 하얗게 변합니다. 이 현상은 전염이 되어 급속히 퍼져나가고 도시가 공포에 휩싸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므로 당국에서도 군인들을 동원하여 실명자와 보균자(눈먼 자를 가까이한 사람들)를 격리시키는 일 외에는 할 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 조치도 사실상 거의 속수무책에 지나지 않습니다.(66, 279)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규칙을 준수해 주기를 바란다. 하나, 전등은 항상 켜둔다. 스위치를 조작하려 해보았자 소용없다. 어차피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둘, 허가 없이 건물을 나가지 말라. 그 즉시 사살당할 것이다. 셋, 각 병실에는 전화가 있는데 그것은 위생과 청결을 목적으로 외부로부터 새로운 보급품을 요구할 때만 사용할 수 있다. 넷, 자기 옷은 자기 손으로 빨래해야 한다. 다섯, 병실 대표를 선임할 것을 권고한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권고다. 재소자들은 앞서 말한 규칙과 앞으로 말할 규칙에 순응한다는 전제하에, 적당한 방법으로 조직을 결성하도록 하라. 여섯, 하루 세 번 식량을 담은 상자들이 현관문 오른쪽과 왼쪽에 놓일 것이다. 오른쪽 것은 환자들에게 가는 것이고, 왼쪽 것은 보균자들에게 가는 것이다. 일곱, 남은 음식은 반드시 태워야 한다. 여기에는 음식만이 아니라 상자도 포함된다. 접시와 숟가락도 다 연소 가능한 물질로 제작되었다. 여덟, 소각은 건물의 안마당 또는 운동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홉, 이 소각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피해에 대해서는 재소자들이 책임져야 한다. 열, 우연히 또는 고의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소방대는 투입되지 않는다. 열하나, 마찬가지로 병, 무질서, 폭력이 발생한다 해도 재소자들은 외부의 개입을 요청할 수 없다. 열둘, 어떠한 이유에서든 사망자가 생길 경우 재소자들은 형식적 절차 없이 시체를 마당에 묻어야 한다. 열셋, 환자와 보균자 사이의 접촉은 중앙 현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열넷, 보균자가 갑자기 실명할 경우 즉시 혼자 병동으로 이동해야 한다. 열다섯, 이상의 규칙은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매일 같은 시간에 낭독할 것이다. 정부와 국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상.

 

 

 

 

상황은 갈수록 악화됩니다.

자신들도 감염될까봐 극도로 냉소적인 태도로 여차하면 총을 쏘아버리는 군인들, 눈먼 사람들 간의 이기주의, 눈이 먼 채로 무기를 소지한 자들이 저지르는 강간과 절도, 시체, 쓰레기…… 추악한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드디어 수용소를 지키던 군인들도 모두 실명하게 되자 재소자들이 탈출을 감행하고 도시의 기능은 전체적으로 마비됩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두려운 사건은 재소자들 중 무기를 가진 집단이 저지르는 범죄입니다. 음식을 가로채고, 집단으로 강간을 하고, 폭력을 휘두릅니다. 폭력에 의한 주종관계가 이루어지고, 도덕은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단계에서 기적을 보게 됩니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안과의사의 아내'가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자신도 눈이 먼 것처럼 꾸며 남편과 함께 수용소에 들어간 그녀는 수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다음은 마침내 더 이상 자신도 눈이 먼 체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남편과 나누는 대화의 일부입니다. 책에는 구분해 놓지 않았지만 의사가 하는 말과 그의 아내가 하는 말을 '줄을 바꾸어' 구분해 놓았습니다.

 

이 끔찍하고 지저분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난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계속 눈이 안 보이는 척하지는 못하겠어요.

그 결과를 생각해 봐. 이 사람들이 당신을 노예로 만들려고 할 게 분명해. 당신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거라고. 누구든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사람이 되는 거란 말이야. 사람들은 당신한테 먹여 달라고 할 거고, 씻겨 달라고 할 거고, 침대에 눕혀 달라고 할 거고, 아침에 깨워 달라고 할 거고, 여기저기로 데려다 달라고 할 거고, 코를 풀어 달라고 할 거고, 눈물을 닦아 달라고 할 거야. 당신이 자고 있을 때도 부를 거고, 기다리게 한다고 욕을 할 거야.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나더러 계속 이 비참한 꼴을 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냥 이 사람들을 놔두라고 할 수 있어요. 이들을 돕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이미 많은 일을 했어.

내 가장 큰 관심사는 내가 볼 수 있다는 것을 발각당하지 않으려는 건데, 그러면서 무슨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당신을 미워할 거야. 우리가 눈이 멀어서 더 착해졌다고 생각하지는 마.

더 악해진 것도 없잖아요.

하지만 악의 길로 가는 중이야. 음식을 나누어 줄 시간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바로 그거예요. 볼 수 있는 사람이 음식 분배를 감독해야 해요. 여기 있는 모두에게 상식을 가지고 공평하게 나누어줄 수 있도록, 그러면 더 이상 불평도 없을 거예요. 그 끝도 없이 계속되는 말다툼 때문에 나는 돌아버릴 것 같은데, 그것도 사라질 것 아니예요. 눈먼 두 사람이 싸우는 꼴이 어떤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싸움이란 건 언제나 실명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지.

이건 달라요.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해. 하지만 우리가 눈이 먼 채로, 완전히 눈이 먼 채로 여기 있다는 것만 잊지 마. 우리는 따뜻한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동정심도 없는 장님들이야. 그림책에 나오는, 눈이 먼 어린 고아들의 세계는 끝이 났어. 우리는 지금 냉혹하고, 잔인하고, 준엄한 장님들의 왕국에 들어와 있는 거야.

내가 봐야만 하는 걸 당신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차라리 눈이 머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예요.

당신 말이 옳겠지.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난 이미 눈이 멀었으니까.

미안해요, 여보. 하지만 당신이 이걸 알기만 한다면.

알아, 안다고, 난 평생 사람들 눈을 들여다보며 살았어. 사람 몸에서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눈일 거야, 그런데 그 눈을 잃은 사람들이니.

내일 사람들에게 눈이 보인다고 말할 거예요.

후회할 일이 아니기를 빕시다.

내일 이야기할 거예요.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그때까지도 내가 아직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있지 않다면 말이에요.(188~190)


이 안과의사의 아내가 고통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게 하고, 서로 돕게 하면서, 인간관계의 유지와 회복에 헌신한 결과가 눈먼 사람들의 인간애가 되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행동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눈이 멀쩡한 그녀가 눈이 먼 사람들과 고난을 함께했다는 사실이 '사랑의 길'이었다는 사실을 함께 깨닫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이 멀었던 의사와 의사의 아내가 이렇게 대화합니다. 위에서처럼 그 대화를 '줄을 바꾸어' 구분했습니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461)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지칭됩니다. "운전을 하고 가던 남자" "그 남자의 차를 갖고 간 남자" "그 남자의 눈을 진찰한 의사"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 "첫 번쨰로 눈이 먼 남자의 아내"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소년" "의사의 아내" "경찰" "택시기사" "군인" "눈물을 핥아주는 개"……

그것은, 눈이 머는 것은 세상의 누구에게나 해당할 수 있고, 세상의 누구라도 저 '의사의 아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