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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프랑수아즈 사강 『어떤 미소』

by 답설재 2016. 3. 30.

프랑수아즈 사강

《어떤 미소 Un Certain Sourire》

정봉구 역, 범우사, 2004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다가 헤어진 이야기입니다.

 

여대생 도미니크는 애인 베르트랑의 외삼촌 뤽크와 사랑에 빠집니다. 뤽크는 아름답고 교양미 넘치는 아내 프랑스와즈와 행복하게 지내는 중년입니다.

그들은 여름 휴가에 바닷가 호텔에서 일주일, 일주일은 너무 아쉬워서 일주일 더 지냈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 뤽크는 아내 프랑스와즈에게로 돌아갔고, 뤽크로부터 헤어날 수 없고 죽을 것 같았던 도미니크는, 실연이라는 건 흔한 일이어서인지 그 상처가 회복됩니다.

 

그 러브 스토리에서 마음의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1. 시작

 

 

"(……) 당신과 한번 연애를 할 수 있다면 참 근사하겠는데" 하고 뤽크 씨가 말했다.

나는 바보처럼 웃어댔다. 나는 내가 반응을 나타낼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38~39)

 

"마셔 봤자 나는 끄떡도 없을 거예요" 하고 나는 기분이 상해서 대꾸했다.

"내가 질투를 일으킬까 봐 하는 소리지" 하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 말야. 네가 나하고 함께 있을 때 말고는 취하거나 바보 같은 소리를 하거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구."

"그러면 함께 있을 때가 아닌 그 외 시간엔 어떻게 하고 있으란 거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라구. 아까 저녁 식사 때처럼."(63)

 

 

 

2. 코트 다쥐르의 호텔

 

 

나는 물방울 무늬의 평상복 차림으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정말 선량한 여자일까요? 나는 남의 남편하고 이 호화로운 호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창녀 같은 옷차림을 하고서요? 나는 딴 일을 생각하면서 남의 부부 살림을 파괴하는 저 생 제르맹 데 프레 지역의 탈선 소녀들의 전형적인 타입이 아닌가요?"

"그렇지." 그는 풀이 죽어가지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남편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모범적이었지. 그런데 방향을 잃은 비둘기가 됐단 말야. 가련한 비둘기가 됐단 말야…… 이리 와 줘……."(122)

 

아주 미남인 청년이 지나갔다. 나는 그가 놀랄 만큼 무심하게 그를 약간 뜯어보았을 뿐이다. (……) 뤼크 씨는 다른 남자들의 존재를 지워 버렸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그에게 다른 여자들의 존재를 지워버리지 못했다. 그는 곧잘 아무 말 없이 다른 여자들을 즐겁게 바라보는 것이었다.(125)

 

우리들은 전야에 우리들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다. 단지 밤중에 나는 여러 차례 잠에서 깨었다. 일종의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는 뤽크 씨의 이마를 손으로 찾았다. 서로 잠자리를 나누는 이 다정한 짝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마치 이 두려움을 대기하고 있기나 했던 것처럼, 또 그의 잠이 가벼워지기나 한 것처럼 그는 나를 자기 팔에 안고 손을 목에 감으면서 짐승을 달래는 것처럼 이상한 목소리로 "자, 자아"하고 중얼거렸다.(132)

 

우리는 밤늦게 파리에 도착했다. 뽀르트 디탈리에서 약간 지친 얼굴의 뤽크 씨를 보았다. 나는 우리가 이 조그만 아방튀르를 잘 해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른들이고 문화적이고 또 사리를 잘 알아차린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에게서 일종의 노여움과 함께 지독한 굴욕감을 느꼈다.(135)

 

 

 

3. 끝

 

 

"난 이제 가야 되겠다. 다섯 시 오분 전인데! 너무 늦었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렇군요." 내가 말했다. "프랑스와즈, 집에 있어요?"

"프랑스와즈한테는 벨기에 인들하고 몽마르트르에 간다고 했어. 그런데 카바레는 지금쯤 닫혔을 거야."(163)

 

밤들은 한정 없었으며, 또 멋없었다.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낮들은 이따금 제법 빨리 지나갔다. 독서로 메워지는 때였다. 나는 '나와 뤽크 씨'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치 하나의 문제와 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저 견딜 수 없는 순간들, 나를 거리에서 멈추어 세우게 하고, 나를 혐오와 분노로 가득 채우며, 내 내부에서 하강하는 것, 그것을 막지 못했다.(184)

 

아파트 건물의 홀 안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거울 속을 보았다. 나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나는 막연히 내가 중병으로 빠져서 뤽크 씨가 흐느끼며 내 임종의 자리에 와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머리는 흠뻑 젖었고 쫓기는 사람의 몰골이었다.(187)

 

15일째 되던 날, 나는 인심 좋은 한 이웃 사람의 라디오에서 높은 소리로 방송되는 음악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것은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안단테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과 죽음과, 어떤 종류의 미소를 나에게 불러일으켰다. 나는 침대 속에서 꼼짝을 않고 오래도록 그것을 듣고 있었다. 나는 꽤 행복했다. (……)

내가 홀로라는 것은, 나는 이 말을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다. 홀로, 홀로 그러나 대체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나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한 여자였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였다. 점잖은 얼굴을 할 것도 없는 것이다.(195~197, 끝)

 

 

 

사랑은 흔하고 그러니까 사랑의 이야기도 그만큼 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사랑의 이야기는 다 쓴 것인가, 하면 그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구니스」라는 단편소설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봤습니다. 이런 맥락은 아니어서 그 소설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여기에 이렇게 옮겨놓고 싶었습니다.

 

나는 정작 중요한 것은 쓰지 않는다. (……) 나는 쓰지 않는다. 결코 쓰지 않는다(이영훈 단편소설 「구니스」 『현대문학』 201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