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런 베커 《머나먼 여행》
웅진씽크빅 2015
글자라고는 표지의 저 제목뿐입니다.
첫 페이지에는 세상의 수많은 소녀처럼 외로운 한 소녀가 보이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저렇게 소녀의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소년과 함께 아름다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아,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까 노인이 된 나도 당장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달리며 만나게 될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글이 없어서 스토리는 책을 보는 사람이 다 지어내야 합니다.
모험심이 강한 사람 같으면 우리의 일생도 이와 같다고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일생도 우리가 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할 사람, 이래저래 바쁜 사람, 이야기 같은 걸 지어내라고 하면 그런 걸 제일 싫어하고 귀찮아할 사람은 난처할 것입니다.
아하!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책에 쓰인 내용을 잘 읽고 암기하라는 말을 잘 하는 어른 같으면 단 한 푼도 아까울 책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래 봬도' 전에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전체를 책임지던 사람으로서 하는 말인데, 그처럼 중요한 교과서 중에 딱 한 권만 마음대로 지어내도 좋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이런 교과서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다시 다른 책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하루 종일 그런 이야기만 하고 싶어 하고, 이런 교과서를 더 만들어달라고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엉뚱한 상상을 즐기는 소년소녀들이 "이 교과서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만나서 사인을 받아두고 싶다!"고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미 이른이 넘었지만 다시 전적으로 교과서 만드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이미 고물이 되었으니까 그만두게 된 사람에게는 이 『머나먼 여행』만큼 꿈같은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학생'이란 이제 '머나먼 여행'을 떠나게 된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이런 교과서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한때 스토리텔링형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들 야단이더니 이제 그만두고 또 다른 무슨 교과서를 만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모름지기 교과서란 모두,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까지 단 한 권도 빠짐없이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식의 머나먼 여행', 그게 공부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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