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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미셸 투르니에·에두아르 부바(사진)『뒷모습』

by 답설재 2014. 11. 22.

미셸 투르니에 지음·에두아르 부바 사진

『뒷모습』

현대문학, 2009(초판 9쇄)

 

 

 

이 책의 원전은, 1993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왔답니다.

 

 

 

 

나를 찾아온 사람(손님)을 잘 배웅하려고 합니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봅니다.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지켜본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 풍습 혹은 예절을 꼭 지키고 싶습니다.

 

뒤돌아보는 사람도 있고 줄곧 그냥 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기쯤에서 뒤돌아볼 때는 서로 손을 들어 추가적으로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손아랫사람인 그쪽에서 목례를 하는 경우에는 손을 흔들어줍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줄곧 그냥 가는 사람 중에는, 내가 지켜보고 있는 줄을 아는 것 같은 사람도 있고 모르는 것이 분명한 사람도 있습니다. 모르는 게 분명하다 싶은 사람의 경우에는 '만약 내가 저 사람을 찾아갔다가 돌아나올 경우라면 저 사람은 헤어지는 순간 나를 잊고 말겠구나' 싶어서 좀 섭섭하기도 합니다. 매정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또 다른 느낌도 있습니다. 훌훌이 돌아서서 바삐 걸어가는 사람은 벌써 나를 잊고 다음 일정을 생각하며 저렇게 가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돌아서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대부분 섭섭하고 쓸쓸하고 아쉬운 정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어깨에 일부러 힘을 주고 걸어가는 게 다 드러나서 좀 미울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허전하고 쓸쓸하기 마련입니다. 가는 것이니까, 돌아가는 것……

 

이번에 그렇게 헤어져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살아봐야 하지 그걸 미리 생각하느냐?"면서 좀 엉뚱하다고 할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이승에서의 작별(作別) 인사를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뒤쪽이 진실"이라고 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동성애자들은

멋진 인조유방을 만들어 붙일 수 있지만

견갑골은 그들이 남자임을 숨기지 못한다.

…(후략)…

 

 

소녀, 농부, 여인, 뱃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 모델, 정원사, 연인들, 남녀, 천사의 날개를 만들어 붙인 어린 '천사', 노인, 석상, 두 친구, 사내, 아이들, 사람들, 벌거벗은 소녀, 벌거벗은 모델……

여러 가지 사진 중에서 연인 혹은 남녀의 뒷모습을 설명한 페이지를 골랐습니다.

 

 

 

 

 

 

이 연인들을 미셸 투르니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 남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틀림없다!

부자들이라면 아예 수영을 한다.

수영하는 데 필요한 팬티도 수영복도

다 갖춰놓았다. 수영복의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하는 법. 때문에

아주 큰 부자들은 아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물론 수영을 할 줄 알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수줍다.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본다. 남자는 양말을 신은 채, 여자는 치마를 약간

걷어올리고. 그러나 이 즐거움과 정다움이 이 한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놓는다.

 

 

 

 

 

 

이 남녀의 관계는 이렇답니다.

 

 

…… 아주 얌전한 듯한 이 처녀는

겉으로 눈앞의 아름다운 바다에만

마음을 쏟고 있는 것 같지만 청년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도킹, 즉 부두에 배 대기, 뱃전에

접근하기―어원 그대로―는 그러니까

옆에서 옆을 갖다 대는 측면

접근이다. 청년은 뭐라고 말하는

것일까? 처녀와 떨어져 있는

거리가 상당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다지 위태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는 듯.

어쩌면 남자와 여자가 다 같이 응시하는,

그래서 그들을 한데 맺어주는

저 아름다운 바다의 정경에 대하여

말하고 있겠지. 잠시 후면 그 거리도

좁혀지겠지. 아마 접촉도

이루어지겠지. 우리와 당신과

나에 대하여 말하게 되겠지. 아니,

심지어 둘 다 입 다물고 말이 없겠지.

가장 은밀한 이심전심인 그 침묵.

 

 

저 표지 사진 속의 여인(일본)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물론 젖가슴은 참하고 팔은 통통하고

흘러내리는 등의 선은

조화롭다. 그러나 이 초상에서 눈을 끄는 것은

단연, 목이다.

 

 

이 설명은 또 이렇게 이어집니다. "앙드레 지드는 전쟁 전에 독일을 여행하면서 당시 유행에 따라 드러내놓은 사내아이들의 목을 보고 '외설스럽다'고 평한 바 있다. ……"

 

 

 

 

미셸 투르니에의 사진 설명은 하나하나가 다 고급스러웠습니다. 그가 설명해 줄 수 있다면, 나의 정지된 뒷모습은 어떤 설명으로 남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책 속의 사진 중에는 작위적인 것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작위적이든 아니든, 사진 속의 모습들은 그 순간들을 성실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으로 등장하게 된다면, 그 어떤 모습이어도 좋고, 또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이들이 어색한 표정이나 서투른 몸짓으로 찍힌 사진은 그럼에도 아름답거나 자연스럽지만 내가 그렇게 찍힌 사진은 두 번 보기도 싫은데 이젠 그렇게 꼴보기 싫어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게 뒷모습이라면 싫어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