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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퐁스 도데 『별』

by 답설재 2014. 11. 18.

알퐁스 도데 

최복현 옮김, 인디북 2011

 

 

 

 

 

 

 

 

꼭 보고 싶은 책들이 있습니다. 서장에도 여러 권 있어서 이러다가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초조해질 때는 "눈요기만 해도 좋은 것"이라는 블로거 '노루'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고 그런 표현을 고마워합니다.

이 책도 그런 책이었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위가 산만한 전철에서도 그렇고, 일전에는 파주의 어느 학교로 교과서 활용에 관한 강의('교사와 교과서')를 하러 갔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버려서 차 안에서 두어 편을 읽기도 했습니다. 전철에서도 그렇지만, 자투리 시간에 무슨 심각한 책을 읽기는 어렵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쯤의 이유를 댈 수 있습니다. 우선 문장이 쉽고, 유연하고, 시적(詩的) 혹은 감성적이고, 흐름이 순조로웠습니다. 오죽하면 그 중 한 편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그대로 나왔겠습니까?

 

교과서에서 본 소설들이 들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문제풀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 '해체(解體), 해부(解部)!'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는 편안함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아! 이건 얼마나 은밀하고, 값진 일인지! 이제와서 나에게 수능고사를 치루어야 하게 되었다는 통지가 날아오거나 무슨 일제고사를 봐야 한다고 강제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마지막 수업」은 예전에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국어책에 나왔는데, 그때 나는 제대로 가르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아쉽습니다. 작가도 아니면서 '나도 이런 글을 한 편 써야 할 텐데……' 지금 생각하면 참 덧없는 욕심을 부리기도 했었습니다.

어려울 것은 뻔하지만 어쩌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닌데…… 다 끝난 일이어서 마음은 가볍지만, 군데군데 그날들의 추억이 묻어 있는 '눈물겹고' '아름다운' 단편입니다.

 

내가 이 모든 것에 놀라고 있는 동안 아멜 선생님은 교단 위로 올라가시더니, 나를 맞이했을 떄와 같이 부드럽고 근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오늘이 여러분과 수업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베를린으로부터 알자스와 로렌 지방의 학교에서는 앞으로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32)

 

"프란츠, 너를 꾸짖진 않겠다. 너는 벌을 받을 만큼 충분히 받은 셈이니까. 그건 바로 이런 것이란다. 날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겠지. '까짓 것!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내일 외우지 뭐.'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네가 보는 대로다. 아! 교육을 뒤로 미룬 것은 우리 알자스의 커다란 불행이었다. 이젠 그들(프러시아인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너희들이 프랑스인이라고 우겼지. 그런데도 너희들은 너희 나라말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단 말이냐!'라고 한들 뭐라고 답하겠니? 가엾은 프란츠, 하지만 제일 큰 죄를 지은 것은 너뿐만이 아니란다.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해야 할 비난의 몫을 갖고 있는 거야."(34)

 

그는 칠판을 향해 몸을 돌리고, 백묵을 쥐고는 온 힘을 다해 될 수 있는 한 크게 쓰는 것이었어요.

"프랑스 만세!"

그러고 나서 그는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어요.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우리에게 지시했어요.

'이제 끝났으니…… 돌아가도록.'(38)

 

'고향'(프로방스), '애국'(우리말, 우리글), 그런 얘기는 아이들과 다 헤어진 지금에 와서 구태여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별」은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렸던 단편이었을 것입니다. 「소나기」(황순원)였는지, 이 소설이었는지, 아니면 두 편 다 였는지…….

 

시작 부분을 읽으며, 지명이나 인명 때문에라도 느껴지는 이국적인 정취에 이끌려서 신비로움을 느꼈던 일, '이런 작품을 시험에 어떻게 출제하려고 교과서에 실었을까?' 혹은 '이런 작품을 가지고도 시험문제를 내려나?' 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런 주제넘은 생각이나 하느라고 공부가 영 시원찮아서 결국은 입시에 실패했지만, 이럴 경우, 시험은 공부의 장애물이 분명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몇 주일씩이나 사람의 그림자조차 구경하지 못한 채, 나는 홀로 푸른 풀밭에서 사냥개 라브리와 양들과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몽 드뤼르의 약초 캐는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피에몽 주위에서 숯 굽는 사람들의 거무튀튀한 얼굴을 만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는 소박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산 아랫마을이나 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2주일마다 보름치의 식량을 싣고 산길을 올라오는 우리 농장 노새의 방울 소리가 들릴 때라든가, 어린 머슴 미아로의 명랑한 얼굴이나 늙은 노라드 아주머니의 붉은 모자가 언덕 위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아랫마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누가 영세를 받았다든지, 누가 결혼을 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우리 주인집 따님인 스테파네트 아가씨에 관한 얘기를 듣는 일이었습니다.(52~53)

 

그리운 '스테파네트'야 어디 프랑스 프로방스에만 있겠습니까?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염한 여인 때문에 죽어가는 아들, 세상 일이 다 마음대로 되는 줄 알면서 죽어가는 왕자…… 이렇게 나열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더 많고, 이루지 못한 꿈을 지닌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 보기에는 화려한 사람도 알고보면 그렇지도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초연의 저녁」은 자신이 애써서 만든 연극에 대한 비평이 두려워 공연을 지켜보지도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온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가스등이 어두워지고 카페는 문을 닫습니다.

"벌써? 대체 몇 시쯤 된 걸까?"

큰길은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연극이 끝난 것입니다. 틀림없이 나는 내 연극을 본 사람들과 스쳐 지났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을 붙잡아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이것저것 알고도 싶었지만 서둘러 그들을 지나쳤습니다. 사실 나는 거리 한복판에서 그들의 비평을 듣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연극을 만들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177)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황님이 돌아가셨다」는 임대 보트 타기에 혼이 빠진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어디 갔다 오는 거냐, 응?"

어린 내 머릿속에는 얼마나 무서운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나 급히 왔기 때문에 아무런 이야기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신앙심이 깊고 로마 부인처럼 열렬한 가톨릭 교도임을 알고 있었던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아! 어머니, 큰일났어요."

"왜 무슨 일인데? 또 무슨 일이 일어났니?"

"교황님이 돌아가셨어요!"

"교황님이 돌아가셨다고?"

가엾게도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벽에 몸을 기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생각보다 일이 잘되어 가고, 너무 큰 거짓말을 한 것에 겁이 나서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습니다.(220~221)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기는 어렵습니다. 스물세 편이고 다 읽어볼 만한데…… 왜 읽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이야기나 한 편 더 전하겠습니다. 선녀가 없어진 이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실제로 어느 늙어빠진 선녀가 살아 남아 하필이면 선녀에 관한 사건의 피고로 불려나가 재판장에게 호소하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철도라는 것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터널을 만들고, 작은 호수를 메우고, 얼마나 많은 나무를 베어 냈던지, 결국 우리는 편히 쉴 곳조차 찾지 못할 지경이 되었지요.

농부들은 점점 우리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어요. 저녁때가 되어 우리가 창문을 두드리면 로뱅은 "바람이 부는군." 하고 말하고는 이내 잠자리에 들고 마는 거예요.

여자들은 우리가 사는 샘으로 와서 빨래를 하게 되었어요. 그 후로 우리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거죠.

우리는 사람들이 믿어야만 살 수 있거든요. 만약 그들이 믿음을 잃게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은 거나 다름없어요. 우리의 채찍이 지녔던 마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여왕처럼 권세를 누렸던 우리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심술쟁이 주름투성이의 할멈이 되어 버리고 마는 거에요.

더군다나 먹을 것을 구해야 되는데, 우리는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한동안 사람들은 숲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짊어지거나, 길가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산지기는 냉정했어요. 거기다가 농부들은 돌팔매질까지 하는 거예요. 그래요, 우리는 이미 고향 땅에서 살아갈 방법을 잃은 빈민처럼, 대도시로 나가 일을 해야만 했어요.

우리 중에는 제사 공장에 들어간 선녀도 있었지요. ……(114~116, 「프랑스의 선녀」)

 

「귀신은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랬습니다. 무턱대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니 뭐니 할 게 아니라고. 선녀들 중에는 제사 공장에 취직했던 경우도 있었다니, 아마 우리는 보통 사람들과 선녀들이 섞여 있는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 그때 그 귀신 이야기를 확인하러 가는 길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448